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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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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박순희
면담자
이영재
구술일자
2018. 8. 6
구술장소
4.9통일평화재단
구술시간
146분

구술컬렉션 > 노동운동 > 70년대 민주노조와 정화조치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71. 가톨릭노동청년회(JOC)남부연합회 회장

1975. 원풍모방 노동조합 부지부장

1976. 여성해방 노동자기수회 회장

1980. 사회정화조치로 해고, 수배

1982. 쟁의조정법 제3자 개입으로 구속 

1983. 가톨릭 노동사목 전국협의회 회장

1988. 전국노동단체협의회 공동대표

1990.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지도위원

민주노총 총연맹 지도위원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연합 상임대표

구술내용 요약

박순희는 1947년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출생했으며, 성장기까지 이 일대에서 생활했다. 중학교 졸업 후 더 진학을 하지 않고 이웃에 거주하는 학성모직 상무의 급사로 취업해 현장 기술을 익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열심히 다니던 성당에서 소속감을 상실하면서 냉담자가 된다. 학성모직에서 배운 직포 기술을 바탕으로 1965년 대한모방에 취업한다. 

대한모방에서 만난 동료의 주선으로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소모임 잔다크에서 활동하며 투사선서를 하고, 가톨릭노동청년회 서기를 거쳐, 남부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4개 사업장을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 무렵 수녀가 되기 위해 준비를 했다가 수해를 당하는 것과 도요안 신부의 설득으로 수녀의 길을 포기하고 노동사목의 길을 걷게 된다.  

가톨릭노동청년회 남부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사업장의 민주노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던 중 원퐁모방의 전신인 한국모방의 지부장 지동진이 사내 문제로 입원하자 병문안을 갔다가 노조원으로 입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공동체와의 상의 끝에 간부를 맡지 않는 조건으로 입사하게 된다. 입사 후 곧 대의원에 선출되고, 방용석 지부장의 구속으로 부지부장의 역할을 맡아 원풍모방 민주노조의 간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조장과 반장의 순환보직을 실시하는 등 부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원풍모방에 민주노조의 토대를 다지고, 왕언니로 불리며 조합원들과 연대적 관계를 형성한다. 방용석 지부장의 석방투쟁 등 수차례 원풍노조의 투쟁을 주도하고,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을 받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부지부장에서 현장으로 복귀 한다.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서울의 봄이 다가오면서 노조 상근 부지부장으로 다시 돌아와 활동하던 중 5.17 비상계엄 상황에서 수배되고, 광주모금운동 등을 전개한 것으로 이유로 정화조치 대상자로 지목되어 다른 노조간부들과 함께 해고 된다. 유니온 샾의 특성상 해고 후 제3자 개입금지 대상자가 되어 수배생활을 한다. 지학순 주교의 주선으로 출두를 하게 되고 출두를 한 이후 조사과정에서 공안당국의 협박과 회유를 경험한다. 원풍모방 노동조합은 정화조치의 과정에서도 노조가 와해되지 않는 유일한 사업장이었지만 노조간부 중 4명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고, 다수가 구속되는 피해를 입는다. 출소 후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에서 원풍모방과 원풍타이어의 통합시도가 있었으나 이를 잘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조합비를 노조원들에게 분배하고, 재모금하는 과정을 거쳐 나중에 원풍집을 마련하게 된다. 모금액을 지학순 주교에게 맡여 두었다가 도곡동 아파트를 구입해 노조지도부가 도피생활을 하던 중 아지트가 노출되고, 전원 연행되어 구속된다. 출소 후에도 이리 노동사목 활동을 하는 등 가톨릭노동청년회 활동을 지속한다. 

1차 구술을 마친 후 구술자는 중요한 이야기를 빠뜨렸다고 다시 추가 구술을 요청하였다. 구술자가 미리 요청한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 당시 조사를 받게 된 과정과 조사내용, 공안당국의 위협에 대한 내용과 동일방직, 반도상사, YH와 원풍모방 노조원들의 최초 연대투쟁 과정을 중심으로 2차 구술을 진행했다. 구술자는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과 관련하여 교육을 받은 민주노조 간부들 중 유일하게 연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퇴근하면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공안당국의 협박과 회유가 계속되었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구술되었다. 

구술자는 정화조치로 해직된 후 노조원의 지위를 상실해 제3자개입금지로 구속되었으며, 조사과정에서 최근까지 트라우마의 피해가 이어지는 경험을 했고, 당시 조사하는 분위기, 조사받던 방의 구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술했다. 최근 경험한 트라우마의 원인이 당시의 조사과정에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있는 것과 초보적 단계나마 치유가 시작되었고 성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이야기 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노동계 정화조치로 원풍모방 해고와 수배를 당한 이야기.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