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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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명동 민주구국선언및 성직자 구속사건 관련 성명서]
등록번호 : 00018121
날짜 : 1977.03.2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요약설명 : 3·1 민주선언/윤보선외 60명 3·1 성직자 구속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한국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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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1974년 7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선포된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적극 지지한...
등록번호 : 00836142
날짜 : 1974.08.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7월 23일 명동성당에서 선포된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적극 지지한다 등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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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조요청서-정치수배자 선언에 대한 지지선언을 부탁드립니다.[발신:국가보안법 관련 정치수배 ...
등록번호 : 00478524
날짜 : 2001.03.2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사진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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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선언 이후 양심수 전원석방을 촉구하는 시위. 명동성당
등록번호 : 00957834
날짜 : 1987.07.1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민주화추진협의회
요약설명 : 명동성당 뒷마당에서 발족식을 갖고 6.29선언 이후 선별석방에 항의하며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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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마당에서 개최된 민주실천 국민선언발표 기자회견 전경
등록번호 : 00708110
날짜 : 1989.06.0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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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에서 거행된 6월항쟁계승 반노태우투쟁선언대회 참가자들
등록번호 : 00708153
날짜 : 1988.06.1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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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민주구국선언 사건(명동 사건)
요약설명 : : 059754), <명동사건 항소심 공판내용>(등록번호 : 48403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인권위원회의 대법원 확정판결에 대한 입장 성명서>(등록번호 : 419778), <출옥인사들의 출옥성명서>(등록번호 : 105732), <3·1민주구국선언사건 피고들의 김대중씨 석방요구 성명서>(등록번호 : 444414) 등이 있다. 일명 제2명동사건과 관련하여 <3·1절 기도회사건에 대한 결의문>(등록번호 : 527450)이 있다. 특히 3.1민주구국선언사건 가족들은 정권의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재판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박용길 장로께서 당시 활동에 사용한 보라색 옷(등록번호 : 033709), 시위에 둘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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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실천문인협의회문학인 101선언
요약설명 : 479617) 정도다. 자실의 활동은 70년대 후반에도 왕성한데, <自由實踐文人協議會 第三宣言> (등록번호 : 86474), <77' 인권선언> (등록번호 : 512205), <국제펜클럽 시드니大會를 지켜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긴급성명> (등록번호 : 484908), <성명서-1978년도 '민족文學의 밤' 직후 백기완, 고은 씨 연행에 대한 성명서> (등록번호 : 985309), <1979년 문학인선언> (등록번호 : 109745)등과,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백범사상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1978년 제1회 민족문학의 밤> (등록번호 : 66108) 등이 있다. 사진사료는 의외로 적다.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명동위장결혼 불법집회 사건 관련 첫...
사료 콘텐츠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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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민주구국선언-유신반대운동의 불꽃
요약설명 : 이 선언문을 발표할 수 있겠습니까?” 명동성당에서 발표가 가능한지 의사 타진을 하는 문익환의 얼굴은 무척 진지했다. 함 신부는 선언문 발표를 쾌히 응낙했다. 유신체제는 박정희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만인의 불행이었다. 1975년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선포된 뒤부터 감시와 미행이 일상화되었다. 순서지에는 선언문 발표라는 말조차 넣을 수가 없어 ‘개신교 목사님 기도’라고 표기했다. 문익환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벗 윤동주와 함께 성장했던 것을 일생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또한 독립군으로 활약한 벗 장준하와 한 하늘을 이고 있는 것을 무한한 자부심으로 삼고 있었다. 그는 그 무렵 공동성서 번역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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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전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민주구국선언문’을 작성하고 서명하고 지지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분이 있었다. 하얀 수염에 흰 두루마기를 입은 훤칠한 이마의 노인. 바로 함석헌 선생이었다. “피고들은 3·1절 기념미사가 거행된 명동성당에서 민주회복이라는 명목 아래, 소위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하여 청중을 선동하여 시위를 촉발시킴으로써 민중 봉기를 확산하고, 나아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이를 이용하여 현 정부를 전복, 정권을 탈취할 것을 획책하였다.” 판에 박힌 검사의 논고와 또한 판에 박힌 판사의 결심. 팔순을 바라보는 사상가이자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은 다른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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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독재타도!”를 외치는 물결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소공동과 회현동으로 밀물져왔고, 급기야 명동성당에까지 파도처럼 휩쓸려왔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이한열 피격 을 거치면서 6월민주항쟁은 강고한 적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 후, 명동성당을 나온 상계동 철거민들은 남양주의 배 밭이나 부천의 고강동으로 쫓겨났다. 공무원들은 고강동으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간다는 구실을 붙여 뼈대만 세운 가건물 마저 철거해 버렸다. 철거민들이 땅굴을 파고 살게 된 어느 날, 올림픽 성화가 5분 만에 그곳을 지나갔다. 군사독재 시절의 끝자락에 벌어진 비정한 소극(笑劇)이었다. 글 박선욱(시인, 평전작가) 1959년 나주 출생. 1982년 시 〈누이야〉외...
구술 컬렉션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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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환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3.7.31./전교조 대구지부 회의실
요약설명 :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했다. 1987년 전교협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구지역 활동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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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곤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3.6.26./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교육민주화선언의 준비와 실행, 교육민주화선언 이후의 후폭풍 - 부당전출에 대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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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1차) 2023.7.10. (2차) 2023.7.11. (3차)2023.7.12. /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사무실
요약설명 : 선언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결성하는데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해직 교사가...
일지사료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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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 한일굴욕외교반대학생총연합회 주최로 열려
일자 : 1964.5.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문리대 교정에서 학생 3,000여 명과 시민 1,000여 명동아일보에는 예상보다 훨씬 적은 1,5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했다고 보도(『동아일보』 1964.5.20 석1면)이 모인 가운데 거행되었다. 학생 측은 이날 아침 결의문, 격문, 선언문, 조사 등을 프린트해서 각 대학에 돌린 후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성토대회를 서둘렀다. 주동 학생들은 학교 구내 ‘새세대’사 안에서 민족적 민주주의를 상징한다는 검은 관과 죽장, 유인물들을 만들었다. 대회장에는 “축 민족적 민주주의 사망”이라는 조기 1개가 서고, 수개 대학에서 보내온 플래카드들이 있었다. 장례식은 검은 양복에 건을 쓴 4명의 학생들이 죽장을 짚고 검은 관을 어깨에 메고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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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2개 대학생 대표들,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 개최
일자 : 1964.5.25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동아일보를 참고했다. 경향신문에서는 수도의대를 포함하여 33개교에서 선언문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경향신문』 1964.5.25 석1면)▶동국대 25일, 낮 1시 40분부터 동국대 학생 1,000여 명동아일보에는 500여 명으로 보도되었다.(『동아일보』 1964.5.25 석7면)은 동교 중앙강당에 모여 민주주의 및 민권수호 궐기대회를 열고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날 상오 동교 총학생회장 김실이 종로서에 연행되자 성토대회를 열기로 결정, 강당입구에 “잡아다 어쩔 텐가, 어서 석방하라”, “정부는 폭력을 즉시 중지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회를 열었다. 대회가 끝나고 학생들은 모두 해산했다.『동대신문』 1964.5.29 1면동국대 선언문1. 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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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궐기대회 이틀째, 고교생들도 참가
일자 : 1964.5.2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11시, 한양대생 1,000여 명동아일보에는 800여 명으로 보도되었다.(『동아일보』 1964.5.26 석3면)은 노천강당에서 난국타개 총궐기대회를 열고,“1주일 동안의 냉각기에 정부가 우리의 주장을 받아들일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어떠한 극한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 11시 40분쯤 대회를 마쳤다. 이날 모인 한양대생들은 특히 여·야정치인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 “집권의식에 분망하여 악랄한 수단과 방법도 불사하는 소아병적 관습으로 국민을 누르고 국민을 우롱하려는 비인도적, 비국민적인 정치인들은 각성하라”고 경고했다. ▶동덕여대 26일 상오 11시 20분, 동덕여대생 100여 명은 교내에서 ‘난국타개 학생총궐기대회’를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