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6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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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 임원단이 문익환목사에게 보내는 서신]
등록번호 : 00829945
날짜 : 1984.03.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제14회 명동성당 청년회 월례강좌 연사로 문익환목사를 모시고 싶다는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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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대단식농성 제안 호소문[수신:범국민대책회의, 전대협, 발신:범국민대책위 명동성당 ...
등록번호 : 00869637
날짜 : 1991.05.1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지선
요약설명 : 1.기간 농성 선봉대 상황 보고 2.제안-명동성당 농성투쟁 참가에 대한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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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의 예비자 교육부문 사목활동 보고서 외]
등록번호 : 00885823
날짜 : 1983.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분기별 예비자 교육 인원 연령층 입교동기 등 천주교 신자들에 관한 조사분석과 청년...
사진사료 84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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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단속으로 명동성당에서 노점상들의 시위와 농성으로 출동한 경찰들 사진]
등록번호 : 00833836
날짜 : 1989.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가운데 명동성당에서는 1천5백여명의 노점상들이 8일째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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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열사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명동성당구국단식농성지지 결의대회]
등록번호 : 00833935
날짜 : 1989.05.31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이철규 열사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명동성당 구국단식농성지지 결의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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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 종교 성직자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대한 경찰투입에 항의 침묵 거리행진]
등록번호 : 00834002
날짜 : 1995.06.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오후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대한 경찰투입에 항의하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중구...
영상사료 2건
더 보기박물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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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열사 살인은폐조작규탄 및 6월민중항쟁계승 실천대회
등록번호 : 00040106
날짜 : 1989.06.1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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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앨범 9[90년 10월]
등록번호 : 00952059
날짜 : 1990.10.2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박용수가 90년 10월에 찍은 문익환 목사의 사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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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앨범 2[85년 10월~87년 7월]
등록번호 : 00952066
날짜 : 1985.10.27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박용수가 85년 10월부터 87년 7월까지 찍은 문익환 목사의 사진 앨범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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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사건
요약설명 : ‘국민평화대행진’ 33건‘, 4.13조치’와 관련하여 84건, ‘6월항쟁’과 관련하여 137건, ‘국민운동본부’와 관련하여 342건, ‘6.10국민대회’ 15건, ‘6.29선언’ 14건이 검색되었다. 4.13호헌조치와 관련하여 김대중의 성명서[정부는 4.13조치를 철회하고 평화적 집회의 봉쇄나 최루탄 발사등 일체의 폭력적 탄압행위를 지양할 것] (등록번호 : 00855815), 6월항쟁과 관련한 성명서 모음(등록번호 : 429721),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사료 <상공회의소 국기하강식 애국가 방송을 신호로 시작된 6월항쟁>(등록번호: 701102)가 다수 소장되어 있으며, 국민운동본부의 각종 성명서(등록번호 : 151233 외)와 <조직실태와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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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의문사 사건
요약설명 : : 77813)는 이철규의 죽음과 관련한 의학적 소견과 해석을 밝히고 있다. 명동성당의 집단 단식농성과 관련하여 <모이자! 명동으로! 이철규열사 살인은폐조작 규탄 및 6월민중항쟁 계승 실천대회>(등록번호 : 169868), <이철규열사의 사인진상 규명을 촉구한다- 명동성당에서 단식투쟁중인 학생들을 지지하며>(등록번호 : 202576)와 <성명서-민주학생 이철규의 고문살인 진상규명을 위한 명동성당 단식철야농성을 적극 지지하며>(등록번호 : 207086)를 볼 수 있다. 이철규의 죽음에 대한 범국민적 진상규명투쟁은 이렇다할 결과를 보지 못하고 178일 만인 1989년 11월 4일 장례식을 치루게 된다. 이와 관련한 사료로...
사료 콘텐츠 3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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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는 명동성당이 있다
요약설명 : 그럴까? 명동에는 명동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직 젊었던 날, 그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추억? 그래, 추억이라고 말해 놓고 보니 괜히 쑥스러워진다. 하지만 지난 것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가 추억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그곳에선 눈물 나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추억... 최루탄 연기 냄새 자욱한 추억...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인자한 모습을 비롯하여 아름다웠던 이들과 함께 했던 추억... 마악 넝쿨장미가 꽃을 환히 피우기 시작하는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초 언저리. 정확히 말하자면 1987년 6월 10일, 6.10국민대회가 열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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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농성의 재미있는 기록
요약설명 : 명동성당 농성 상황일지 1987년 6월 10일부터 15일까지 5박 6일간의 명동성당 농성투쟁과 명동 인근 시민들(일명 넥타이 부대)의 지지 시위는 1987년 6월 10일 열린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약칭 6.10 국민대회)가 6․10민주항쟁으로 진전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으로, 32985호 사료는 명동성당 내외부의 농성투쟁 현황, 부상자 현황, 지원물품 현황 등을 정리한 상황일지, 명동성당에 반입된 유인물, 각 대학 및 시내 상황, 시위 상황에 대한 보도 내용 정리, 시민들의 지지 발언 소개 등 74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성 경위와 내용 뜻밖의 농성투쟁이 시작되자, 서울 명동성당 청년단체가 사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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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상계동 철거민투쟁
요약설명 : 세대는 명동성당으로 몰려갔다. 성당 한쪽 구석에 텐트를 치고 장기 농성전에 들어갔다. 성당 벽에는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우리는 쫓겨났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 전투경찰과 백골단, 용역 깡패들, 그리고 그들의 주인인 전두환 정권은 상계동 철거민들을 짓밟고 버렸다. 하지만 성당은,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사제와 신자들이 믿는 하느님은 철거민들을 버리지 않고 보듬어 주었다. 상계동 철거민들이 추운 겨울과 봄을 연이어 맞이할 때 거리의 시위도 격화되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물결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소공동과 회현동으로 밀물져왔고, 급기야 명동성당에까지 파도처럼 휩쓸려왔다.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구술 컬렉션 25건
더 보기일지사료 7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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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한미경제협정 반대 학생투쟁위원회, 서울에서 한미경제협정 반대 성토대회 개최
일자 : 1961.2.21
분류 : 2.8한미경제협정 및 2대악법 반대운동
요약설명 : 반대 성토대회가 서울시내 명동성당 앞에서 열렸다. 이날 성토대회는 시공관에서 열린 한미경제협정 검토 강연회가 끝나는 시각에 맞추어 시작되었으며, 1천여 학생 및 시민들이 참가하였다. 이날 집회에서 대학생들은 한미경제협정문을 비판하는 호소문을 낭독한 후 주권사수를 주장하였다. 이어 “한미경제협정 결사반대”, “민족자주 없이 민족통일 없다”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시위행진에 나선 학생들은 “대한민국은 미국의 조차지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의 경제적 예속화 정책을 버리고 한국인의 감정을 다치지 말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편 교통정리를 이유로 출동한 수명의 경찰관과 학생들 간에 시비가 벌어져 서로 충돌하는 소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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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일소전학생투위, 조기방학 거부 성명
일자 : 1967.7.6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6일 오전 8시 전국대학학생회장단과 부정부패일소학생투위대표 10명은 명동성당 정원에서 모임을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이들은 “정부와 여당은 부정과 부패를 질서와 안정이란 미명아래 합리화하고 국민을 기만, 우롱했다”고 전제하고 학원의 조기방학은 명백한 주권 침해이므로 이를 거부한다, 부상학생을 낸 책임자를 인책, 엄단하라는 등 4개 사항을 주장했다.『동아일보』 1967.7.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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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생 5명 연행
일자 : 1971.10.17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17일 낮 11시 반쯤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대한가톨릭 서울지구 대학생연합회 회장 김성동 군 등 5명의 학생이 부정부패 일소하자는 내용의 취지문을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신도들에게 나누어주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밤 10시경 이들을 모두 훈방했다.『동아일보』 1971.10.18. 7면; 『중앙일보』 1971.10.18.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