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7건
더 보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檄文]
등록번호 : 00578373
날짜 : 1964.05.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소위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사지내자! - 황소식 「민족적 민주주의」장례식 - 곳:...
-
弔 反民族的 非民主的 民族的民主主義 葬禮式(조 반민족적 반 민주적 민족적민주주의 장례식)
등록번호 : 00578390
날짜 : 1964.05.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김도현
요약설명 :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민주주의여! 썩고있던 네 주검의 악취는 사꾸라의 향기가...
-
고 윤기남선생 장례식 국가보안법 수사에 관한 항의문[수신:학술단체협의회,발신:민주주의민족통...
등록번호 : 00375405
날짜 : 1995.03.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학술단체협의회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민족적민주주의’ 장례식
요약설명 : ‘민족적 민주주의’ 조건으로 총 4,322건, ‘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 ’ 조건으로 총 19건, ‘김도현’ 조건으로 총 126건, ‘김중태’ 조건으로 총 10건이 검색되었다. 직접적인 시위 주동자였던 김도현이 기증한 한·일굴욕회담반대학생총연합회 명의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檄文> (등록번호 : 578373)과 <弔 反民族的 非民主的 民族的民主主義 葬禮式> (등록번호 : 578390), <五·一六을 聲討한다!> (등록번호 : 578392), 선언문 <굴욕적 한일회담의 즉시 중단을 엄숙히 요구한다> (등록번호 : 578391), 결의문 <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지하라!> (등록번호 : 578372),...
-
1964년 한일회담반대투쟁
요약설명 : ‘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 조건으로 총 19건이 검색되었다. 당시의 주요사료로는 당시 시위 참여자이자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의 김도현이 기증한 한일굴욕회담반대학생총연합회 명의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檄文> (등록번호 : 578373), <弔 反民族的 非民主的 民族的民主主義 葬禮式> (등록번호 : 578390) 와 생산자 미상의 결의문 <일본 예속으로 직행하는 매국적 한일굴욕회담을 전면 중지하라!> (등록번호 : 578372)가 있으며, 6.3동지회가 생산한 <6.3 포럼 창간호> (등록번호 : 161613) 등으로, 문서사료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해 사진사료는 비교적 풍부하며 주로 경향신문사 생산사료들이다....
사료 콘텐츠 2건
더 보기-
6.3한일회담반대운동
요약설명 : 반민족적·비민주적 민족적민주주의여! 썩고있던 네 주검의 악취는 사꾸라의 향기가 되어, 마침내는 우리들 학원의 잔잔한 후각이 가꾸고 사랑하는 늘 푸른 수풀속에 너와 일본의 이대잡종, 이른바 사꾸라를 심어 놓았다. (이하 생략) 박정희 정권과 학생운동의 첨예한 대결구도를 고착화한 결정적 계기는 5·20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 박정희 정권은 학생 시위가 단순히 한일회담 반대가 아닌 반정부 운동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정권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뒷날의 역사는 그 판단이 옳았음을 뒷받침한다. 당시로서는 학생운동이 노골적으로 반박(反朴) 노선을 천명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
6.3한일회담반대운동
요약설명 : 서울대에서 개최된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식,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그리고 전국으로 퍼진 6.3 한일회담반대운동
구술 컬렉션 15건
더 보기일지사료 21건
더 보기-
민족주의비교연구회 발족
일자 : 1963.10.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강의의 맹점을 탈피하고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민족주의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토대를 마련하여 민족사적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한국적 민족주의 관념을 모색, 정립한다”며, 첫째 가능한 한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학생운동의 기반을 넓히고, 둘째 연구발표회나 세미나를 통해 학술적 이념적 지표를 확립하며, 셋째 민정이양에 대비한 학생운동의 새 방향을 정립한다는 활동목표를 제시했다. 이날 초대회장에는 정치과 4학년 이종률이 선임되고 간부에는 박범진(총무부장), 김경재(연구부장), 김승의(기획부장), 권근술(차장급), 성래진(후일의 성유보) 등이 선출되었다.2대 회장은 김중태였고 3·24데모 직전에...
-
서울대생, YTP(청사회) 정체와 학원사찰의 진상 폭로
일자 : 1964.4.2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은 후 늦은 밤 중앙정보부로 납치되어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는 ‘장례식’을 주도했던 김중태 등 동료들의 피신처를 알아낼 목적과 함께 중앙정보부의 학원사찰을 폭로한 데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YTP는 MTP의 이름만 바꾼 것으로, 기본 성격은 동일했다. 따라서 MTP가 교육용 지침서로 발간한 『향지』를 통해 이 단체의 성격을 살펴볼 수 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성격, 조직 『향지』 제1권에 수록되어 있는 ‘문맹퇴치회 운영요강’에서 MTP는 비밀결사임을 밝히고, 입회할 때에는 KKP 시절과 마찬가지로 “① 회의 교육, 훈련활동 등 일체의 비밀은 생명으로...
-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 한일굴욕외교반대학생총연합회 주최로 열려
일자 : 1964.5.20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20일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70~473쪽.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은 1963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족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당선된 박정희 정권을 직접 겨냥했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이 장례식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투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몇몇 대학 총학생회장들은 이번 집회가 학생 총의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집회 참석 인원도 주최 측은 최대 3만 명까지 예상했으나, 실제 참가한 인원은 훨씬 적었다. 심지어 일부 학교에서는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규탄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민족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