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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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는 양심을 낳고, 양심은 정의로운 사회를 낳는다_ 부산 양서협동조합
요약설명 : 자리 잡은 계엄사(보안사) 부산분소. 일명 ‘삼일공사’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부마항쟁의 불꽃이 막 타오르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이 떨어졌고, 총검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도처에 깔렸다. 곧 공수부대가 투입될 거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계엄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산지역 사회운동의 중심이었던 <양서 협동조합>부터 쳤다. 그렇지 않아도 부산지역에서 평소에 이미 학생들과 의식화 분자들이 드나든다고 눈 찍어 둔 곳이었다. 그곳의 핵심적인 인물인 중부교회 최성묵 목사를 비롯해 김광일 변호사, 김형기, 박상도 등이 연달아 줄줄이 연행돼 계엄사로 끌려 왔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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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 이름 대신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 엮음으로 된 이 책은 출간 즉시 판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조영래는 이 책의 서두에 “전태일의 몸을 불사른 불꽃은 ‘인간 선언’의 불꽃이었다.”고 썼다. 나아가 “전태일 투쟁은 현실의 질곡 아래 짓눌려 인간다운 삶을 빼앗기고 있었던 모든 민중들, 특히 젊은 노동자들에게 비상한 충격을 주어 빈사상태에 있던 한국 노동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적었다. 다가올 시대의 변혁을 예언한 서문이었다. 시민공익법률사무소와 망원동수재사건 조영래는 대학원에 진학한 지 12년 만인 198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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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련과 분신정국 - 죽음의 굿판이었나, 희망의 몸부림이었나
요약설명 : 투쟁에 참여한 명지대 1학년 강경대 군이 백골단 소속 사복경찰의 쇠파이프에 구타당해 사망해버린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꽃다운 1학년. 풋내 가득한 새내기. 갓 입학하여 수강 신청한 과목들을 들으며 친구들과 좀 더 즐거운 캠퍼스의 낭만을 만끽할 새도 없이, 한 젊음이 야만적인 경찰의 폭력에 맞아죽은 것이다.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죽은 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해였다. 그리고 이 날부터 약 한 달간, 연이어 무려 13명의 꽃다운 목숨이 불꽃과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안동대에 다니던 김영균 군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김영균은 90학번, 전교조 1세대다. 고교 시절부터 학내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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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구 피학살자유족회 정식 발족
일자 : 1960.9.5
분류 : 과거사 진상규명운동
요약설명 : 비참했던 경주지구 양민대학살사건의 진상을 만천하에 읍소함으로써 통한과 ◯◯함이 천만년을 두고 울어주어도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이며 내 사랑하는 고향산천 조국 땅 위에서 천추에 원한을 남겨두고 무덤도 없이 백골이 된 내 부모 형제자매 남편 처자들의 남녀노유의 원혼이 구천에서나마 안심하고 눈감을 길 있기를 수만의 영혼들의 명복을 비는 동시에 이러한 민족적 비극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불꽃이 소생하는 신생 제2공화국에서는 검은 역사의 무덤을 만들지 않고 십유 년(十有 年) 사무친 원한도 분노도 모두 다 가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인간에게는 망각의 미덕이 있다는데 사무친 가지가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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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김정강학생데모 배후로 수배
일자 : 1964.7.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가입 활동한 혐의로 수배되자 도주, 김정강의 상부선으로 그를 배후에서 조종했다.『경향신문』 1964.7.7 석3면불꽃회 사건1964년 7월 6일 정부는 “학생 데모를 공산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 증거 문건을 압수하고, 도예종(당시 41세, 1975년 2차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과 김정강(서울대 정치학과 3년)을 국가보안법 위반 및 내란 소요 등의 혐의로 각각 현상금 10만 원씩 전국에 수배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7월 18일 내무부장관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집결체인 불꽃회가 학생 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며 김정강과 김정남 등 30여 명의 이름을 계보도와 함께 발표했다. ‘불꽃회 사건’이 터진 것은 김정강이 조직 구상을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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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령 받고 국가변란음모 지하조직” 중앙정보부, ‘인민혁명당’ 41명 구속
일자 : 1964.8.1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조치가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인민혁명당 사건’의 발단은 학생운동의 배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의 배후조직 중의 하나였던 불꽃회 대표 김정강의 일기에서 인민혁명당의 도예종과의 관련성이 드러남으로써 단서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에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1964년 8월 14일 세칭 ‘인혁당 사건’을 발표하여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열기를 꺾으려 하였다.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기자회견을 소집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적인 지하조직으로 국가를 변란하려던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16명은 전국에 수배 중에 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