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8건
더 보기-
[신문스크랩]2003년 3월 21일자 법률신문 기사 스크랩: “선고유예는 상고심 대상 아니...
등록번호 : 00924231
날짜 : 2003.03.21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선고유예 받은 이태근 고령군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
[신문스크랩]2003년 4월 14일자 법률신문 사설 스크랩: 선고유예가 영향인가
등록번호 : 00924234
날짜 : 2003.04.14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선고유예는 양형문제''이므로 대법원이 심판대상이 아니라고 한 소식을 전했음,...
-
[함석헌과 이우정의 집행유예 선고 신문스크랩]
등록번호 : 00979817
날짜 : 1977.03.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Suzanne Belden Rice,...
요약설명 :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지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내용과 당시의...
사진사료 34건
더 보기-
합동통신 유홍구 기자가 집행유예 3년 선고를 받는 모습
등록번호 : 00714862
날짜 : 1974.03.1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공보담당관실 주사 정종락에 대한 군사기밀 보호법위반 및 절도혐의로 집행유예 3년을...
-
홍성우 판사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고대생들
등록번호 : 00736579
날짜 : 1971.07.3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
홍성우 판사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듣고 있는 피고인 유정인, 김병수, 오광진
등록번호 : 00736580
날짜 : 1971.07.3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15건
더 보기-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_ 공포정치의 산실 중앙정보부
요약설명 : 그의 치명적(?)인 혐의였다. 그리고 온갖 고문이 가해졌다. 그렇게 반년 후 선고유예로 풀려났을 때, 그는 몸도 마음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다. 명동 다방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고 “여기가 뉴욕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그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는 독재자 박정희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쏜, 마지막 부장 김재규와 함께 막을 내렸다. 잠시 신군부의 출현과 함께 무소불위의 검은 권력인 '국군보안사'라는 이름으로 군인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권력자 전두환이 그 자리를 차지한 이후, 국가안전기획부라는 이름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한 어둠속의 권력기관으로 존재하였다. 그때,...
-
혁명 이념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전사 시인 김남주
요약설명 : 무기이다”〈진혼가 3〉와 같은 절창을 뽑아냈다. 1973년 12월 28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이강과 함께 석방된 김남주는 대학에서 제적된 뒤 낙향했다. 농사를 지으며 습작에 전념하던 그는 1974년 《창작과비평》지에 〈잿더미〉외 7편을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에 김남주는 부모님을 설득해 광주에서 서점 ‘카프카’를 열었다. 후배들의 교육을 위해 만든 이 장소는 민청에서 풀려나온 징역장이들이 모여들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김남주의 후배들과 박몽구, 이영진 등 장차 ‘5월시’ 동인의 모태가 되는 문인 그룹이 매일 드나들면서 먹고 자며 뒹굴던 이 서점은 한때 광주...
-
동백림사건을 딛고 우뚝 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요약설명 :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수자는 징역 5년에서 3년으로 감형되어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독일의 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윤이상 석방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듬해인 1968년 2월 5일, 심장 발작의 고통을 참아내는 사투 끝에 〈나비의 미망인〉 총보가 완성되었다. 3월 13일, 제2심에서 윤이상은 15년형으로 감형되었다. 간첩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중형이 선고되자 서독에서 대대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5월에는 독일 함부르크 예술원이 윤이상을 정식 회원으로 선출했다.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회원이 된다는 것은 음악인에게 주어지는 최상급의 영예였다. 국제 사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석방 압력을 더욱 높여 나갔다....
구술 컬렉션 5건
더 보기일지사료 116건
더 보기-
서울지법, 3.15 부정선거 원흉 판결공판 개정
일자 : 1960.10.8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발포명령 책임자로 유충렬에 사형, 백남규에 무기징역을 선고했을 뿐, 기타 각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법률상 제반 이유를 들어 유기징역 또는 무죄·공소기각·형 면제와 심지어 집행유예 등 각양각색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특히 발포명령사건에서는 홍진기·조인구·곽영주 등 최고책임자로 지목된 자들이 모두 무죄로 되었다. 반면 정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론을 적용하지 않고 유죄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48명의 피고인들을 일일이 사건 별로 판결 이유를 분류하여 약 2시간 반에 걸쳐 판결 이유의 요지를 낭독하였다. 이날의 판결은 일반의 기대와 동떨어진 것으로, 재판부의 판결이 발표되자 피고인 가족들이...
-
경찰, 10.8판결 석방자 거처 탐지
일자 : 1960.10.11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11일 오전, 서울시경에서는 전 수사진을 동원하여 8일 6대사건 판결공판에서 무죄 또는 집행유예를 언도받고 출감한 조인구·이상국 등 11명에 대한 범죄사실을 철저히 수사하여 재수감토록 명령하였다. 한편 밤 10시 이후 서울시 관내 각 경찰서에서는 10.8판결에서 무죄 혹은 집행유예 등을 선고 받고 석방된 자들의 행방을 탐지하여 보호 내지 감시하기 위해 비상 출동하였다.『경향신문』 1960. 10. 12 조3면 ; 『조선일보』 1960. 10. 12 조3면
-
검찰, 10.8판결 석방자 감시 지시
일자 : 1960.10.12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12일, 검찰은 10.8판결에서 무죄·면소·공소기각·집행유예 등을 선고받아 석방된 11명을 재구속할 수 있도록 경찰에 감시하라고 지시하였다. 한편 시경 수사과장은 이날 정오 현재까지 3-4명 정도의 거처밖에 확인하지 못했으며 나머지는 주소지에 없어 행적을 탐문 중이라고 밝혔다.『경향신문』 1960. 10. 12 석3면 ; 『조선일보』 1960. 10. 12 석3면 ; 10. 13 조3면. 『조선일보』에서 탐문한 바에 따르면 석방된 11명의 소재는 불명확했다. 조인구·신언한 등 대부분의 피고는 핑계를 대거나 아예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행적을 감췄다. 그나마 소재가 드러난 것은 병보석으로 출감하여 적십자 병원에 입원한 이순구 전 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