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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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계 NGO 대회 Financing NGOs' 분과모임 참가단체 요청[수신:우리농촌살...
등록번호 : 00199831
날짜 : 1999.07.3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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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세계YMCA 건강,체육교육협의회 지원요청[수신: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장주호 사무차장...
등록번호 : 00554581
날짜 : 1988.07.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YMCA전국연맹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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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결기1주년 김대중씨에게 자유를
등록번호 : 00980518
날짜 : 1981.05.2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고다 사또루
요약설명 : 김대중의 석방을 요구하는 오사카 집회가 5월 21일 개최됨을 알리며, 이를 위한 후원...
사료 콘텐츠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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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요약설명 : 1974년 12월 1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과 한국정의평화위원회가 공동집전한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가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이날 저녁 서울 부산 인천 춘천 원주 대전 전주 광주 마산 제주 등 전국 13개 교구에서 6,500여 명의 교직자,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서울 명동성당의 기도회는 저녁 6시에 2,500여 명의 신부 수녀 신도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열렸다. 이 기도회에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등이 참석했다. 김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정부여당이 유신체제만 살길이고 개헌주장은 좌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 시국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개헌을 주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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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의 6월민주항쟁
요약설명 : 앞의 공원에서 열렸다. 그들은 조국의 민주화와 미국의 독재정권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거기엔 워싱턴을 비롯해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욕, 보스턴, 토론토 등지의 24개 단체가 주체가 되어 4백여 명이 참가했다. 6.10민주항쟁이 진행되자 20일 정의평화청년연합 등이 주축이 된 대규모 시위가 뉴욕의 유엔본부 앞 함마슐트 광장에서 2천여 명의 동포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그들은 주한 미 대사의 본국소환 등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다음날인 6월 21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으로 밀항한 윤한봉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재미한국청년연합(재미한청련)의 민족학교가 중심이 되어 로스엔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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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지킨 푸른 눈의 양심들, 월요모임
요약설명 : 위원회(또는 50인모임)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독재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면서 이들의 모임도 잦아지고 정례화 되었다. 매주 월요일 밤마다 개신교와 가톨릭 선교사들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모임을 가졌는데 보통 8명에서 10명 정도가, 어떨 땐 20명까지 모였다. 가톨릭 교도와 다양한 교파에 소속되어 있던 개신교인들인 그들은 미국, 캐나다, 호주, 독일 출신이었다. 한국의 극악한 인권상황을 앞에 두고 교파와 상관없이 모인 그들은 당시 국내언론에는 거의 나오지 않던 한국의 정치와 인권문제를 논의하고,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외국의 언론기사를 해외로부터 받아서 한국 내에 배포했다. 한편, 정치범과 고문에 대한 보고서를...
구술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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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청 앞 격전과 시위대의 해산
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결연하여 이들을 선도하고자 하는 청년운동. 1904년 미국 뉴욕에서 BBS 운동이 처음 시작된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펼쳐졌다.소속 빈민층 소년들은 휘발유와 현수막 천, 사이다병 등을 주워와 사제 수류탄을 만들기도 했다. 신포동에는 일본 등지에서 온 귀환동포와 품팔이 부두노동자, 구두닦이, 넝마주이, 홍등가의 여성들이 주로 거주하였는데, 이들도 시위에 적극 합류하였다.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7. 305-306쪽 시위대는 “이것이 공명선거인가? ”하고,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미 시위대의 동태를 파악하고 경비망을 폈다. 창원, 진해, 함안, 김해, 고성등 인근 경찰서로부터 지원병력이 속속 모여들었는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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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군법회의 검찰부, 민청학련 관련 이철 등 54명 구속 기소, 745명 훈방
일자 : 1974.5.27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교수, 민청사건 배후지원 혐의로 기소 및 첫 심리 -1974년 8월 15일 엠네스티 오스트리아 지부, ‘민청학련 관계자 재판’에 대해 한국정부에 공식 항의 -1974년 8월 29일 민청학련 관련 32명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의 증거 신청, 보충질문이 기각되자 항의계속, 재판장은 퇴장명령 -1974년 9월 6일 민청학련사건 주모자급 48명, 일본인 2명 등 50명 선고 공판, 27명 중 여정남 사형, 3명 무기, 23명 징역 20~12년, 자격정지 15~12년, 일본인 2명 징역 20년, 자격정지 15년 선고 -1974년 9월 19일~21일 세계교회협의회(WCC) 사절단 내한, 민청학련사건 조사하고 정부측과도 면담 -1974년 11월 11일 민청학련 구속자 가족 50여 명,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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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도권 선교자금’ 수사
일자 : 1975.4.3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7면; 『한겨레』 2009.07.27.(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8081.html)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선교자금 사건수도권 빈민선교사업에 대한 세계급식선교회(BFW: Brot fuer die Welt)의 지원은 1973년 김관석 목사가 독일을 방문해 세계급식선교회 아시아 담당 책임자 볼프강 슈미트(Wolfgang Schmidt) 목사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다. 슈미트 목사는 앞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목사 안내로 청계천 주변을 둘러본 뒤 빈민선교를 위한 원조를 약속했다. 그런데 1974년 9월 활빈교회 민병길 목사와 청계천교회 정진영 목사가 원조금 중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판자촌 주민을 동원해가며 농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