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39건
더 보기-
성명서[안동가톨릭농민회를 인천사태의 배후조종 세력이라 지목한 당국의 모략과 탄압에 대하여]
등록번호 : 00522905
날짜 : 1986.05.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상철
요약설명 : 안동 가톨릭농민회를 지목하고 불순조종세력으로 조작하는 현 정권을 규탄하며 현...
-
한국 가톨릭 농민회 안동교구 연합회 1981년도 사업보고서
등록번호 : 00215589
날짜 : 1981.12.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는 농민조합 민주화, 외국양곡수입반대, 농지제도 개선 운동을 해왔다....
-
1997년 활동계획(안) 및 예산(안)[수신:사목국장,발신:한국가톨릭농민회안동교구농민회]
등록번호 : 00217114
날짜 : 1996.11.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가톨릭농민회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농민회 회장), 김학록(한국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농민회...
사진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더 보기-
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사건(오원춘사건)
요약설명 : 사건 초기부터 조사자료, 양심선언문, 각종성명서, 재판기 등 약 80여 건의 비교적 풍부한 사료가 있다. 주요 사료로는 사건 전후의 총괄적인 자료를 모은 <오원춘사건자료철>(등록번호 : 306919), <안동교구사태에관한보고서>(소위오원춘사건)(등록번호 : 305861), <양심선언>(오원춘)(등록번호 : 216448), <안동사태에대한김수환추기경강론>(등록번호 : 419569) 등 대다수가 보존되어있다.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결성
요약설명 : <한국앰네스티 30년 인권운동 30년-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30년 약사>(등록번호 : 165900), <앰네스티에서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보내는 편지>(등록번호 : 492094 외), <국제앰네스티가 박노해씨를 양심수로 선정한 것을 알리는 문건>(등록번호 : 473270), 국제앰네스티의 <장기수 석방 촉구 운동에 관한 편지>(등록번호: 492368>, 안동교구가톨릭농민회사건(오원춘사건)에 대한 국제앰네스티의 <안동 데모 사건 진상보고서>(등록번호 : 486690), <김삼석,김은주씨 남매의 간첩사건에 대해 벌이는 긴급구원활동 공문>(등록번호 : 481849), 리영희 교수의 구속과 관련하여 <국제사면위 독일지부가...
사료 콘텐츠 5건
더 보기-
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요약설명 : 불만이 쌓이고 쌓여있던 시점이었다. 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 안동가톨릭농민회 오원춘사건, 그리고 가발 수출업체인 YH무역 노조원 김경숙사건... 특히 YH무역의 김경숙이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하다 경찰이 강제진압을 하는 과정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 정권은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영삼 총재의 손발을 묶어놓기 위해 총재직 정지 가처분을 내렸고, 이어서 의원직 박탈이라는 철퇴를 휘둘렀다. 정적을 절대로 가만두고 보지 않는 박정희식의 초강수였다. 거기에다 ‘경제 안정화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일반 서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해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신발 공장과 합판공장...
-
권종대_농민운동사의 험로를 개척한 작은 거인
요약설명 : 권종대는 전국농업기술자대회에 참석하여 시야가 확 트이는 경험을 했다. 한국가톨릭농민회(가농) 교육부장 정연석이 ‘쌀 생산비 조사 보고’를 발표를 했는데 “과학적인 조사를 토대로 쌀 생산비를 보장하라는 대정부투쟁을 했다”는 사례들이 생생히 귀에 꽂혔다. 강연을 들을수록 그동안 일본에 건너가 양계기술을 배우는 등 선진농법 배우기에 매달렸던 여태까지의 노력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1977년 1월 11일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가농 경북지구연합회가 창립됨과 동시에 이사진이 구성되었다. 권종대는 이날 가농에 가입하자마자 이사로 선출되었다. 전국농업기술자대회에 참석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마흔두 살의 늦깎이로...
-
고구마 피해를 보상하라
요약설명 : 수 있다. 가톨릭농민회는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의 농촌청년부로 시작하여 1966년 ‘한국가톨릭농촌청년회(JAC)’로 발전하였으며, 1972년에 '한국가톨릭농민회'로 명칭을 바꾼 후 본격적으로 농민의 권익 향상을 위한 실천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중적인 농민운동 조직이 없었던 상황에서 가농의 조직과 활동은 농민운동의 발전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건천분교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 가톨릭농민회의 40여 년간의 활동에 관한 기록은 1960년 이후 한국 농민운동의 역사 전체를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자료들 중 주요한 농민운동 사건과 관련된 자료가 사업회에...
구술 컬렉션 6건
더 보기-
임순분
면담자 : 양라윤, 정호기
일자/장소: 2021.9.2. / 경북 성주군 소성리마을회관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와의 관계, 가톨릭농촌여성회의 교육과 지원, 소성리부녀회를...
-
김성순
면담자 : 정호기, 이명진
일자/장소: 2021.6.28. / 경북 김천시 덕천포도원
요약설명 : 인연, 한국가톨릭농민회 한마음분회, 1978년 함평고구마사건과 단식농성 참여와 해단...
-
전용구
면담자 : 함종호
일자/장소: 2017.6.2./안동가톨릭농민회 사무실
요약설명 : 안동문화회관과 선배님들, 본당 소재 지역운동의 활성화, 6.29조치와 민...
일지사료 21건
더 보기-
안동가톨릭농민회, 소값 피해 보상 운동(소몰이 시위)
일자 : 1978.7.21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안동가톨릭농민회는 원래 소와 경운기를 안계 우시장에 사전 집결하여 시위를 벌이고 안계성당서 미사를 지낼 계획이었으나, 하루 전날 경찰이 미리 알고 저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21일 당일, 오전 8시까지 다인 성당에 가능한 소와 경운기를 갖고 모든 회원이 집결하도록 하였다. 소를 태운 경운기를 앞세워 회원들은 "소값 피해 보상하라", "외국 농산물수입 중단하라", "농가부채 탕감하라" 등의 10여 개의 대형 깃발을 들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우시장에 도착하여 성명서를 낭독, 채택하고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면서 농민의 입장을 호소하고 전투경찰을 위로한 뒤, 오후 4시에 해산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협의회, 쌀 생산비 보장 서명운동 전개
일자 : 1978.9.1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협의회는 쌀 생산비에 대한 조사를 완료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약 1개월 동안 총 5만 2천 명의 서명을 받았다. 한국가톨릭농민회, 『한국 가톨릭농민회 50년사』 1, 한국가톨릭농민회, 2017, 135쪽.
-
오원춘, ‘청기감자피해보상대책위원회’ 결성
일자 : 1978.10.5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연합회 소속이었던 오원춘이 피해를 본 농민들을 규합해 ‘청기감자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후 한 달간의 피해실태 조사에 따르면, 34호 농가의 총 피해액이 780만 원으로 추산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박선욱, "오원춘사건 – 유신정권 붕괴를 예고한 조짐", (https://archives.kdemo.or.kr/contents/view/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