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임순분

  • 공유하기

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임순분
면담자
양라윤, 정호기
구술일자
2021.9.2.
구술장소
경북 성주군 소성리마을회관
구술시간
135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4. 경상북도 의성군 출생, 의성초등학교 졸업

야간 중학교 재학하다 대구시 비산동 소재 직조공장에서 견습공 근무

1973. 이강석과 결혼하여 대구시에서 거주

1978. 이강석의 고향인 성주군으로 이주

1979. 여름 한국가톨릭농촌여성회 영남지구연합회 모임(대구시 남산동)에 참석

1981. 소성리에서 8부녀회 결성, 총무

1985. (함종호, 정동남 등과 함께) 한국가톨릭농민회 소성분회 결성과 참여

한국가톨릭농촌여성회 경남북 이사

1989. 12. 18. 경북여성농민위원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1990. - 1991. 경북여성농민위원회 위원장

1991. 전국여성농민위원회 부회장

1992. -1995. 2.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3, 4, 5기)

1996.3.21.-2000. (사)한국여성농민연구소 이사장

2016. - 현재 사드(THAAD) 배치 반대 운동. 소성리 부녀회장

구술내용 요약

임순분은 1954년 경북 의성군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수도여자중학교 입학에 예정할 예정이지만, 진학하지 못하고 대구로 이사한다. 외삼촌이 소개한 직조공장에 입사해 2년간 일했다. 외아들이었던 남편이 홀로 되신 아버지를 모시고 농사를 짓겠다고 성주군으로 내려갔고, 결국 몇 년 후 임순분도 성주군으로 이사했다. 농촌에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현실을 직시하며 생활해나갔다. 

1979년 마을주민 천광필의 소개로 대구에서 열린 가톨릭농촌여성회 영남지부연합회 교육 모임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여성들이 모여 회의를 하며 기록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잊고 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모임을 계기로 여성농민운동가로서 다시 태어난다. 마을의 젊은 새댁 을 모아 ‘8부녀회’를 조직하여 친목을 도모하면서 공동 모내기, 탁아소 운영을 하며 협업해나갔고, 농산물 제값받기 등 마을 이익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톨릭농촌여성회의 강의, 마을교육, 마을지원 사업이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임순분은 경북지역 여성농민운동가의 대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농민운동 조직의 외연 확장을 위해 농민회 분회 결성 및 조직화 사업에 매진했다. 소성분회를 시작으로 면 농민회, 군 농민회를 조직뿐만 아니라, 도 여성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농민운동이 확장되면 자연스럽게 여성농민회도 확장될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8부녀회’가 더 이상 활동하지 못했고, 남성농민회와 여성농민회, 세대 간의 소통도 어렵기만 했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다시 소성리로 돌아왔으나, 경제적, 심적 고통으로 외부와 단절하며 시간을 보냈다. 2016년 사드 문제가 발생하자 조심스럽게 다시 활동을 시작해서 현재는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고 있다. 임순분에게 여성농민운동은 시련이자 희망을 줬지만, 다시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에 후회는 없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여성농민운동을 하게 된 계기, 8부녀회 활동, 여성농민운동에 대한 회고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