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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헌중
사업개요
- 1980년대 농민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4차년도 과제인 '1980년대 농민운동' 구술 채록은 2003년, 2004년, 2010년에 진행된 기존 농민운동 관련 채록 성과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구술 범위는 1980년대 농민운동의 환경, 주요 쟁점, 조직 구조, 교육 및 단체 운영 등을 중심으로 하되, 구술자의 생애적 특성에 따라 1970년대와 1990년대의 활동까지 포괄하여 기록했다. 이번 사업은 상대적으로 기록 정리가 미흡했던 기독교농민운동, 여성농민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에서 전환된 농민운동의 양상을 재조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농민운동이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점유하는 위상과 영향을 다각도로 규명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현재적·미래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1차 사료를 확보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허헌중
- 면담자
- 양라윤, 정호기
- 구술일자
- 2021.6.26.
- 구술장소
- 서울시 서초구 지역재단
- 구술시간
- 193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9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출생
1977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입학. 농업경제학회 활동. 1978. 정치학과 진학
1980 서울대 「반파쇼학우투쟁선언」 배포사건(일명 무림사건)으로 구속
1981 서울형사지방법원 항소1부, 징역 1년 6월 선고(1982. 7. 25. 출소)
1983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제2기 홍보간사(1986. 3. 사임)
1984 함평‧무안농민대회에서 참가했다가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
1987-1990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농업근대화연구회 후신) 사무국장
1987 「대중노선에 입각한 대중조직의 전개를 위하여」를 '전환'에 게재
1990 전국농민회총연맹 제1기 사무처 조사국장 겸 정책실 차장
1991 전국농민회총연맹 제2기 사무처 교육국장 겸 정책실 차장
1992 전국농민회총연맹 제3기 집행부 교육국장 겸 정책실장(서리)
1998-2002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2020-현재 지역재단 상임이사,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수산식품분과위원회 위원
- 구술내용 요약
-
허헌중은 1959년 대구시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은 일제강점기 오사카에서 결혼했으며, 광복 이후 귀환하여 고향인 경북 의령군에 정착했다. 할아버지가 오사카에서 운수업을 하셔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는데, 의령군에 정착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전쟁기에는 아버지의 부역 혐의와 외삼촌의 조총련 활동으로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입주 과외를 했다.
1977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선배인 김부겸의 추천으로 ‘농업경제학회’에 가입하고 서클활동을 했다. ‘농업경제학회’는 공식 등록은 했지만, 비합 활동을 했다. 장상환, 장시원, 김기영, 김병곤이 학회 선배들이며, 농민운동 각 분야에서 주요 활동가로 활동했다. 1979년부터 서클 회장과 학회 활동을 하면서 언더그룹 활동을 병행했다. 1980년 이른바 ‘무림사건’에서 절친 현무환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았고, 78언더 핵심으로 붙잡혀 구속되었다. 1982년 7월 25일 춘천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1983년 2월 1일부터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에서 홍보간사로 일했다. 배종렬 회장, 나상기 사무국장, 정광훈 교육부장이 활동하던 시기였으며, 《농사꾼타령》, 《농민가락 차차차》, 《농민신문》, 《마을 활동 길잡이》등 교육교재, 기관지, 홍보물을 제작했다. 1984년 함평‧무안농민대회에서 배종렬 회장을 보호하다가 곤봉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치료받았다. 1987년부터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농민대중조직을 위한 통일화 논의가 본격화되는데 참여했다. 1988년 기독교농민회와 가톨릭농민회가 통일되면서 전국농민운동연합이 결성되었고, 이후 전국농민운동연합, 전국농민협회, 자주농 3자가 간 대통합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여 전국농민회총연맹 강령 작성 작업에 참여하는 등 결성 과정에 함께했다. 1990〜1993년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처에서 조사국장, 교육국장, 정책실 차장을 역임하며 활동했다. 간부학교 등 교육프로그램과 정책자료 발간 작업에 매진하여 전국농민회총연맹 초창기 교육 및 정책분야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 내부의 노선 갈등과 분화로 1993년 현장 이전을 결심하고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나왔다. 이후 유기농식품 가공업, 우리밀대표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로컬푸드 및 지역사회운동 분야 활동가 네트워크 사무국 역할을 하는 지역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기독교농민운동 활동 계기, 전국농민회총연맹 통합 과정, 1980년대 말 농민운동 침체에 대한 안타까움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