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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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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황승수
면담자
정호기, 이명진
구술일자
2021.6.18.
구술장소
광주시 광산구 비정규직지원센터 회의실
구술시간
196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8 전북 고창군 출생

1974 전주농업고등학교 입학. 재학 중 교외 모임 농촌문화연구회 참여

1977 전주농업고등학교 졸업

1978.1경 EYC 농어민선교교육 이수

1980-1981 군 복무

1982.3.18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출범. 서기로 선임

1982-1986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 홍보위원회 위원, 조직교육위원회 위원

1983.4.19 고창군기독교농민회 창립. 총무(1983.-1986.)

1987.3.25 고창군농민회 창립. 총무(1989.-1990.)

1987.8-9 삼양사소작답반환운동 : 삼양사 본사 검거 농성

1992.11.21 고창군 아산면 나락 적재 투쟁에서 연행

2009.12.1 고창군 지역혁신협의회 위원

2010 전라북도 지방의회 선거 출마

구술내용 요약

황승수는 1958년 전북 고창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의 가족에는 6‧25전쟁의 상흔이 담겨있다. 그로 인해 2남 5녀 가운데 다섯째로 출생했는데, 터울이 매우 컸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의 권유로 1974년에 전주농림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친구인 고영조의 소개로 전주가톨릭센터에 자리하고 있던 ‘농촌문화연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임수진을 만났고, 지도를 받았다. 1977년 2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귀향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1978년 1월경 EYC 농어민선교교육을 받았다. 이 교육은 김기영과 이정옥이 중심이 되어 지도했다. 전북기독교농민회 결성을 준비하던 모임에 참가했다가 당국에 연행되어 폭력을 동반한 조사를 받았다. 

1980년에는 군복무를 했다. 제대 이후,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1982년 3월 18일 한국기농민회총연합회 출범 과정에 참여했고, 출범식에서 서기로 역할했다. 1983년 4월 19일 고창군기독교농민회 창립에 헌신했고, 이 단체가 해산할 때까지 총무를 맡았다. 가톨릭농민회가 아닌 기독교농민회를 창립했던 이유, 그러나 실제로는 종교와 무관했던 이유 등을 밝혔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까지 전라북도와 고창군에서 활동했던 주요 농민운동가들에 대해 설명했다. 농민운동 교육을 받은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1987년 3월 25일 고창군기독교농민회가 고창군농민회로 전환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고창군농민회 총무를 맡았다. 이 기간 동안 많은 활동이 있었는데, 특히 중요한 활동은 삼양사소작답양도투쟁이었다. 이 투쟁은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달리 내적으로 상당한 갈등과 고통이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을 겪으면서 농민회는 급성장했으나, 운동의 방향과 진정성을 상실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가 적지 않았다. 고심하던 끝에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출범하고 몇 년 뒤에 농민운동을 중단했다. 여기에는 많은 사건과 사연들이 연계되어 있다. 고창군 여성농민운동가들의 인적 특성을 설명했다. 1994년 유럽의 농업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진 뒤 낙농업으로 전환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농민운동의 활성화와 참여자의 증가, 농민운동의 애환과 어머니에 대한 회한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