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임상호

  • 공유하기

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임상호
면담자
양라윤, 정호기
구술일자
2021.6.6.
구술장소
전남 강진군 구술자 자택
구술시간
105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30 전남 완도군에서 출생

1948 광주 숭일중학교 3학년 재학 후 고향의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1955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중 강진 금릉여중 교사 부임

1970 교직을 사임하고 포도 농사 시작

1973-1984 강진문화원 제2대 부원장

1975.1.7-1.11 크리스찬아카데미 제1차 교육 제2기

1976 1.22-1.28 크리스찬아카데미 제2차 교육 제1기. ‘호남농민가’ 작사

1981-1983 강진신용협동조합 부이사장(제1대)

1983-2006 강진신용협동조합 이사장(제2〜9대)

1983 강진기독교농민회 고문

구술내용 요약

임상호는 1930년 전남 완도군에서 출생했다. 섬에서 살았지만, 아버지는 어업은 하지 않고 농사만 지었다. 1남 5녀 중에서 유일한 아들이자 4대 독자로 귀하게 자랐다. 어렸을 때 몸이 허약했는데, 어머니가 기독교 신자인 어느 할머니를 찾아가라는 꿈을 꾸고 찾아갔고 교회를 다니기로 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학교 교장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지면 교회를 함께 다니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신지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광주 숭일중학교 편입시험을 봐서 입학했다. 숭일중학교, 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조선대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옥과농업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집안 형님의 주선으로 강진 금능여자중학교로 이직하면서 강진군과 인연이 시작됐다. 여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해 태권도를 배웠고, 그 인연으로 마원훈과 친분을 쌓게 된다. 1970년 교직을 사임하고 포도 농사를 시작했다. 마원훈의 추천으로 1975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제1차 교육에 참가했는데, 농업 기술 교육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갔다. 반정부적인 의식교육, 강연, 공연을 관람하였고, 강원룡 목사의 설교에 감응했다. 1976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제2차 교육에 참가했고, 마지막 날 호남팀 주제가로 만든 것이 ‘호남농민가’이다. 교육을 받으면서 농민, 횃불, 녹두장군 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어 어렵지 않게 작업했다. 이후 잊어버리고 살다가 몇 년 전 <강진신문>에 ‘호남농민가’ 작사가로 기사가 나면서 주변에 알려졌다.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 이수 후에는 지역의 농협 문제에 대해 발언했고, 친분이 있던 장영근에게 교육을 추천하기도 했다. 문화 활동을 좋아해서 강진군문화원 부원장으로 10년 정도 활동했으며, 1981년 강진신용협동조합 재건에 참여하여 열심히 활동했다. 신협운동은 경찰의 감시와 방해가 심해서 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현재 지역의 대표 금융기관으로 자리잡았다. 

1983년 3월 15일 강진기독교농민회가 결성되는데, 고문 역할을 맡았다. 이후 강진 농민단체나 농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어서 구체적인 사건, 활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다만, 강진의 농민운동이 매우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점과 강진읍교회가 이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평가되어야 한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호남농민가’ 작사 경위와 노래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