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9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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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피해보상 청구에 대한 답변[수신:허정,발신:이상수]
등록번호 : 00419868
날짜 : 2000.10.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이상수 토지주에게 황기를 모두캐서 다 받친적이 있다에 대하여 4.농사지은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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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탄원서]
등록번호 : 00971480
날짜 : 1994.07.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
요약설명 : 동생인 이상수가 이상철의 재심과 가석방 등을 요구하는 내용의 문서로 탄원내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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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일 충무경찰서 변호인접견실에서 이전오변호사에게 이상수변호사가 건네준 사건 경위서
등록번호 : 00162517
날짜 : 1987.08.3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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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장례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이소선, 이상수 변호사
등록번호 : 00701880
날짜 : 1987.08.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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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석규 열사 민주국민장 문제를 논의하는 이소선, 이상수
등록번호 : 00701898
날짜 : 1987.08.24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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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석규 열사 장례문제대책 회의실에서 김우중 회장이 다녀간 후 장례위원의 입장을 발표하는...
등록번호 : 00701901
날짜 : 1987.08.27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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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노조결성과 이석규 장례투쟁
요약설명 : 필사본으로 된 초안으로, “이석규 열사의 죽음이 오늘날 우리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노동자와 기업가 그리고 정부와 사회일반의 자세를 정확하게 나타내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진단하였다. 이석규 시신탈취와 폭력, 민주인사들의 구속사태에 대해 <[부산에서의 경찰 만행 폭로와 이석규 열사 추모행렬에 폭력을 가한 경찰 처벌 관련 성명서]>(사료번호 : 527487), <성명서[이석규 열사 장례를 둘러싸고 민주인사들에 대한 구속사태 관련]>(사료번호 : 162224), <조사보고서[대우조선근로자 이석규씨의 장례와 관련하여 구속된 이상수 변호사 사건 진상 조사]>(사료번호 : 15735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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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ㆍ8월 노동자 대투쟁
요약설명 : 건, ‘이석규’ 조건으로 총 168 건, ‘권용목’ 조건 중 7,8월 노동자대투쟁 관련 총 13 건, ‘마산창원지역조건 중 7,8월노동자대투쟁 관련 총 6건이 검색되었다. 상황일지(등록번호 : 639664)와 자료집(등록번호 : 537947), 이상수 변호사가 작성한 <이석규 열사 사건 진상보고서>(등록번호 : 151030)를 비롯하여 <고 이석규 열사를 추모하며 조문하는 노동자들>(등록번호 : 701877) 등 박용수씨가 생산한 각종 사진사료와 <이석규 씨 운구행렬 차량 옆에 모인 사람들>(등록번호 : 739276) 등 경향신문사의 사진사료 및 국민운동본부(등록번호 : 43602 등), 민통련(등록번호 : 95164), 노조(등록번호 : 126914) 등의 각종...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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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촛불을 지켜라!”
요약설명 : 등 박정희 시대부터 민주인사들을 무료로 변론해온 원로급 변호사들부터 박원순, 이상수, 노무현 등 젊은 변호사들로 구성된 단체로 부천서성고문사건, 구로동맹파업 등 잇단 시국사건 재판에 헌신적으로 뛰고 있었다. 석방된 후에도 그는 여러 해 더 노동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1987년 대파업 이후 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성장하면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운동을 이끌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은 이론적 지도자가 아니라 노무사, 법무사,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었다. 열정적으로 노동운동을 해오던 대다수 지식인 출신들이 현장을 떠나게 되었다. 한동안 갈등하던 그도 보다 전문적 능력으로 노동자를 돕는 길을 택했다. 변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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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요약설명 : 명을 지휘부로 두고 조영래 이상수 김상철 박원순 등을 실무 변호사로 구성했다. 이튿날인 7월 2일, 조영래는 선배인 홍성우 변호사와 더불어 권인숙을 면담했다. “문귀동은 저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권인숙은 수치스러움을 무릅쓰고 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조영래는 그 용기에 감탄하면서도 민주화운동의 의지를 꺾기 위해 신성해야 할 성마저 고문의 도구로 사용하는 독재정권의 추악함에 들끓는 분노를 느꼈다. 다음날 조영래는 문귀동 경장을 강제추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10월 3일 첫 공판이 열렸다. 조영래는 재판 당일 새벽녘까지 심혈을 기울여 썼던 변론요지서를 작성했다. “권양-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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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사건
요약설명 : 1987년 4월 29일에 열린 3차 공판에서 ‘보도지침을 널리 알리는 게 국민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느냐’는 이상수 변호사의 질문에 <말>지 편집인 김태홍은 당당히 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범죄 집단인 현 정권이 저지른 비행의 뒷면을 밝혀 줄 이 자료를 알리는 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꼭 한 달 후, 전국은 6월민주항쟁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글 안재성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대표작으로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연안행>,등의 장편소설과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 등의 인물평전이 있다.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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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려대학교 교수회의, 데모 주동학생 16명 징계
일자 : 1969.7.30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4년, 총학생회장) 무기정학= 이원보(경제과 4년 총학생회 총무)·이상수(법학과 3년, 호박회 회장)·윤준하(정외과 3년, 한국민족사상연구회회장) 6개월 정학= 선병덕(행정과 3년, 법대 학생회장)·김민환(신문방송학과 4년, 정경대 학생회장)·이관영(정외과 3년)·곽승진(정외과 3년, 호골단 단장)·김종필(경제과 2년, 전교양학부 학생회장)·함상근(법학과 2년)·신승식(법학과 2년) 견책= 조성준(법학과 3년)·정우성(법학과 3년)·송인성(정외과 3년)·김건중(경제과 3년) 재입학 불허= 이문수(철학과 3년)『경향신문』 1969.7.30. 7면, 『동아일보』 1969.7.30. 3면, 『매일신문』 1969.8.0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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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 3선개헌반대시위 주도학생 2명에게 입영 3일 전 입영영장 발송
일자 : 1969.8.28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3선개헌반대 학생데모를 주동한 것으로 알려진 고려대 법학과 3년 이상수 군(23, 호박회 회장)과 성균관대학 정치학과 3년 이철위 군(25) 등 2명에게 입영기일 사흘을 앞둔 입영영장이 전남 병무청으로부터 서울 현주소로 속달등기로 28일 우송됐다. 고향이 여수인 이들 두 학생들에게 발송된 25일자의 이 영장은 전남 병무청장의 관인이 찍혀 있으며 여수시장 명의로 발송, 두 학생이 오는 30일 오전 8시까지 전남 광주시에 있는 보병 제 OO사단으로 입영하도록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고대 이상수 군은 데모학생 처벌 때 학교당국으로부터 무기정학처분을 받았으며 성대 이철위 군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었다.『동아일보』 1969.8.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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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국방부 합의 하에 데모 학생들 벼락 징집, 입영 3∼10일 전에 영장
일자 : 1969.8.30
분류 : 분류없음 > 정부·여당
요약설명 : 주동학생들에게 입영기일까지 3일 내지 10일 밖에 남지 않은 영장을 발부하고 있다. 고려대 법과 3년 이상수 군(23)과 성균관대 정치학과 3년 이철위 군(25) 등에게는 입영기일 불과 3일을 앞두고 영장이 발부됐으며 무기정학처분을 받은 고려대 정경대 경제학과 4년 이원보 군과 서울대 교양과정부 1년 심모 군(24)에게도 지난 22일자로 30일 입영하라는 영장이 발부되었고 데모를 주동했다고 징계 처분을 받은 서울문리대 학생회장 박영은 군(22·사회사업과 3년)과 서원석 군(23), 정치학과 4년 등 4명에게도 지난 11일자로 갑자기 징집영장이 발부된 사실이 드러났다. 병역법 45조에 의하면 대학생들은 ▲ 휴학자나 정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