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8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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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악 날치기는 12월 24일, 30분 만에,
등록번호 : 00983888
날짜 : 1997.04.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연세대학교
요약설명 : 김영삼 정권의 안기부법과 노동법 개악 날치기를 이승만 정권의 국가보안법 개악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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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정권의 성립
등록번호 : 00176750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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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제1공화국(1948~1960)-이승만정권
등록번호 : 00200666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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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노인들
등록번호 : 00700159
날짜 : 1960.04.2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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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를 이루어 투표소에 강제 투입된 시민들
등록번호 : 00700010
날짜 : 1960.03.15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정권은 선량한 시민들을 3인조, 5인조를 이루어 투표장에 투입하는 등 이승만 이기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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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마 지지 데모를 하는 군중에게 해산을 요청하는 이승만 대통령
등록번호 : 00717782
날짜 : 1956.03.1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이승만 정권은 어용단체나 국민들을 동원하여 이승만의 재출마 요구를 표출하는...
박물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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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당원증
등록번호 : 00850359
날짜 : 1958.11.1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1960년 이승만정권의 독재와 부정의 뒷받침이 되었던 자유당 관련. 자유당 당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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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당원증
등록번호 : 00850361
날짜 : 1959.10.01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1960년 이승만정권의 독재와 부정의 뒷받침이 되었던 자유당 관련. 자유당 당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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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 기념 문예작품 현상모집 상장
등록번호 : 00850499
날짜 : 1960.09.1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1960년 이승만정권의 독재와 부정에 항거한 4.19 민주화 운동 관련 4월혁명 기념...
사료 콘텐츠 3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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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회복의 교육을 詩로 노래하다_ 성래운
요약설명 : 낭송은 독재정권을 향한 투쟁의 나팔이 되었고, 또 오랜 싸움 끝에 만나는 잔잔한 재충전의 휴식이었다.”고 했다. 늘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원래 경성사범대학을 나온 교육학자였다. 그러나 ‘권력의 도구이기를 거부하고 진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이승만과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산산이 부서진 지 오래였다. 엄혹했던 유신 시대. 박정희 정권은 독재 권력을 강화하고, 남북 분단을 핑계로 온 국토를 병영화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교육이 있었고, 그 기초는 이미 1968년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에 나와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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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 여기가 어딘 줄 알아?"_ 무법자의 폭력이 춤추던 보안사 서빙고 분실
요약설명 : 정권의 야수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어떻게 그런 괴물 같은 곳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곳은 일제 강점기에서 막 벗어났던 해방정국부터 시작되었다. 해방이 되자 이승만 정권은 민족주의자와 독립운동가들을 딛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친일 경찰과 친일 헌병대 출신으로 구성된 이른바 ‘특무부대’를 만들었다. 방첩을 표방했지만 사실은 이승만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사찰하고 탄압하기 위한 일종의 친위부대였던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친일 행각으로 해방 조국의 무서운 심판을 기다리던 자들에게 하늘에서 내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독립운동가를 잡아 고문하던 고등 경찰과 헌병대 출신들이 일약 반공을 표방한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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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역시 이승만 독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서 그대로 내려온 관리들이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있었다. 민족 사상가로서, 또 민주주의를 바라는 열렬한 행동가로서 함석헌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58년 당시 장준하가 발행하던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처음 실었다.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고 항거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구류 20일의 처분을 받았다. 해방 조국에서 맞은 첫 번째 고난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등장하자 그의 붓끝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조선일보에 통렬한 직설적 기고문을 실었다. “박정희님. 내가 당신을 국가재건최고회의...
구술 컬렉션 4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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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6.9.27./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교수 은퇴 이후 근황 및 배경, 후진국문제연구회, 낙산사회과학연구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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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인
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1차) 2023.7.17. (2차) 2023. 7.18. / 송기인 자택
요약설명 :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서울에서 기자 생활 도중에 4‧19를 맞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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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현
면담자 : 김선출
일자/장소: 2002. 11. 21./광주대학교 기숙사 영빈관
요약설명 : 시 미군역할, 이승만정권 당시 미 문화공보원 역할, 윤보선과 장면 정권, 박정희의 5....
일지사료 19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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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이재학·임철호 부의장, 정·부통령선거 동일티켓제 개헌에 부정적
일자 : 1959.12.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것 이었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국회가 야당 일색이 되자 이승만은 국회의 대통령선출권을 박탈하고 국민 직선제를 주장하였다. 두 번째 개헌은 ‘사사오입개헌’으로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임기의 제한을 없애 이승만의 영구 집권을 가능하게 제도를 정비한 것이었다. 이처럼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불어 닥친 세 번째 개헌 논쟁도 자유당의 정권 유지를 위한 연장선상에 있었다. 1956년 정·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에 이승만(자유당), 부통령에 장면(민주당)이 선출되자 자유당은 1960년 선거에서만큼은 대통령 궐위시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는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동일티켓제 개헌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1958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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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기필코 정·부통령에 이승만·이기붕 당선되도록 노력한다는 결의안 채택
일자 : 1959.12.2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이날 회의에서 이승만 총재는 선거와 관련하여 “법에 넘치는 일이 없이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승만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지금 모든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느니만치 앞으로 더욱 화동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다 같이 나가야 되는 것이며,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와서 잘 해 나오는 것을 치하 하는 동시에 법에 넘치거나 또는 남이 보고 좋은 뜻을 가지지 않아서 손실이 되는 일이 없도록 잘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만한 처지에 있으니 앞으로 더욱 더 잘 해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더 좋아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복스러운 당이 될 것이니 이 방면으로 더욱 힘써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서울신문』195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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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입후보 예상자의 선거 전망과 포부
일자 : 1960.1.1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대체할 인물이 없으며 자유당에 대한 국민의 신망이 전보다 두터워졌다. 무엇보다도 자유당 자체의 성장과 조직 강화가 이루어졌다. 조병옥(민주당) 1956년 보다 현재 자유당의 부패는 더욱 심해졌고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은 더욱 굳어졌다. 그러나 자유당의 부정선거 기술은 더욱 발달되었다. 난립 여부는 미지수이나 난립하지 않을 경우 자유당의 총공격이 민주당에 집중될 것이다. 선거에 지더라도 그 차이는 미미할 것이다. 자유당이 아무리 부정선거를 해도 표차이는 그 정도에 그치고 말 것이다. 승산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모르겠으나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매우높다. 김준연(통일당) 1956년 선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