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5건
더 보기-
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남대전지역 4월혁명 - 충주, 공주, 대전
요약설명 : 1교시를 마치고 3학년을 선두로 “이승만 정권은 물러가라”, “3·15부정선거 원흉 처단하라”, “김주열 열사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학생들은 중동 사거리를 지나 시장을 관통해 제민천을 지나치고, 공주극장 옆길을 따라 공주경찰서까지 진출하였다. 한편 백사장에 모인 공주지역 고등학교 연합시위대는 뚝방길과 시장을 통과하여 공주경찰서 앞에서 공주고 시위대와 합류하였다. 시가지에 나온 시민들의 호응은 대단했고, 일부 시민들은 행진에 동참하여 경찰서 앞에 모였을 때는 700명 정도가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미 하야성명을 발표한 뒤라 경찰의 특별한 제재가 없었다. 이들은 경찰서장의 사과성 발언을...
-
병태의 그날, 1960년 4월 19일
요약설명 : 아, 용호야.” 병태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이 무저항 구호에 대한 대답이란 말인가? 다른 친구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같이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다시 중앙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일인 독재 물러가라!” 분노한 사람들의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독재자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누군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급기야 며칠 후 이승만 정권은 계엄령을 내리고 서울 한복판에 탱크를 진주시켰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
4.19혁명 - 4.25교수단시위에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발표까지
요약설명 : 시내 곳곳에 모인 시위군중들은 "선거 다시 하라",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고 외치며 국회의사당과 광화문 네거리로 모여들었다. 서울에서는 차량 통행금지가 선포되었다. 군중의 수가 점점 증가하면서 일부가 중앙청 쪽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대가 점점 불어났고 경무대로 향했다. 계엄군이 최루탄과 수백발의 공포탄을 발사했으나 시위대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시위가 한창 무르익어 점점 전 시가로 번져가고 있을 무렵 오전 9시 45분, 파고다 공원 안에 몰려든 수많은 시위대는 구호를 외치다가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쓰러뜨리기에 이르렀다. 파고다 공원 파출소에 경찰은 한 사람도 없었으나, 군인들은 이를 보고도 말리지...
구술 컬렉션 10건
더 보기-
최장집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3.10.12./경희궁의아침(종로)
요약설명 : 참여 경위, 6.2시위에서 ‘정권 하야’ 구호 사용한 의미, 한일협정 반대운동의...
-
김병길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2.9.3./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6.2 및 6.3 시위에서 ‘박정희 정권 하야’ 구호가 나오게 된 전말, 이등박문 망령...
-
오석보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백찬홍)
일자/장소: 2010년 10월 15일, 10월 27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가 자행되자 마산을 필두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진행...
일지사료 7건
더 보기-
동국대 학생들, 구국성토대회 후 단식투쟁 돌입
일자 : 1964.6.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김경남의 사회로 진행된 성토대회에서는 “한일회담반대”와 “박정희 정권 하야”가 울려 퍼졌으며, 교내 본관 앞에서 800여 명의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민과 대통령에 보내는 호소문과 선언문 등을 채택했다. 박희부(법 4)는 선언문을 통해 “최루탄의 폭력 앞에 좌절된 오늘 우리는 단식투쟁에 돌입한다”고 외쳤고, 학생들은 그들의 요구조건이 관철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여야 당쟁 말고 국민원성 들어보라”, “학원사찰 금지하고 YTP색출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후 6시가 되자 단식 인원은 40여 명으로 불어났다.『경향신문』 1964.6.2 석7면. 6·3동지회,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
대학생들 대규모 시위, 고려대·서울대 등 약 3,000명
일자 : 1964.6.2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박정권은 하야하라”, “배고파 못살겠다, 악덕재벌 잡아먹자”, “YTP색출”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이러한 내용의 행동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안암동 로터리에서 저지당하자 일대 공방전이 벌어져, 다수의 학생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30여 명이 연행되었다. 그사이에 1,000여 명의 학생은 신설동 로터리 안암동 쪽 길과 청량리 쪽 길에 몰려 경찰과 대치했다. 시위대는 3, 400명씩 분산하여 경찰의 최루탄 공세에 투석으로 응수했는데, 대광중고교생 500~600명이 교정 담 안에서 경찰에게 투석하기도 했다. 신설동 로터리까지 나왔다가 일단 분산했던 시위대는 하오 1시 50분쯤 종로3가에 약 300명당시 학생 수에...
-
학생데모 확대일로 시내 각 대학생 15,000여 명 “박정권 물러나라” 외치며 데모
일자 : 1964.6.3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박정권은 하야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면서 청와대를 향했다. 이들은 하오 12시 40분쯤 효제국민학교 앞에서 경찰과 충돌,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투석으로 응수했다. 이어 “빛 좋은 개살구야 박정희는 하야하라”, “경찰은 도둑이나 잡아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하오 1시 50분 종로5가 쪽으로 다시 밀고 나갔다. 학생 선두는 하오 2시 15분“학생만세!”라는 시민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박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세종로까지 진출했다. ▶고려대 3일, 고려대 학생 2,000여 명은 11시 30분 교정에서 구국궐기대회를 열고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 결의문, 행동강령을 채택하고 데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