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71건
더 보기사진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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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집시법 철폐, 1989년 박종철 추도식 등 관련 영상
등록번호 : 00055016
날짜 : 1988.09.0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김춘옥
요약설명 : 집시법>철폐 12월21일문부식 석방 1989년 1월14일 <박종철>추도식 1월21일 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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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집시법 등의 폐지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민가협 회원들의 모습
등록번호 : 00707795
날짜 : 1988.07.1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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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앞 사건과 관련하여 집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이민우, 박찬동, 조순형
등록번호 : 00735680
날짜 : 1985.12.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2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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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규 선생의 삶과 기록
요약설명 : 벌여 집시법 및 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또다시 구속되었다. 5·10 ‘교육민주화선언’에서 선생을 비롯한 교사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요원의 불길로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기는 역사의 필연이며 각 부문의 민주화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야 할 교육부문의 민주화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교육의 민주화는 사회 민주화의 토대이며 완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까지의 무기력한 말단 관료, 역사 속의 방관자의 위치를 탈피, 새로운 교사로서 참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교육의 주체로서 국민의 교육적 요구를 올바르게 실천할 막중한 책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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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맹파업-“노동운동, 정치투쟁의 장을 열다”
요약설명 : 멀리 창원의 통일중공업 노조도 지원투쟁에 나섰다. 구속자 석방 외에도 노동법 개정, 집시법과 언론기준법 폐지, 노동부 장관 퇴진 등 정치구호도 내세웠다. 민주화 이후에는 단위 사업장 투쟁에서조차 정권퇴진 요구가 마음대로 나오지만,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정치구호를 내세운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3. 구사대 폭력의 원조 대학생 18명이 합류하면서 대우어패럴 농성에 대한 강제해산은 급물살을 탔다. 진압은 경찰에 앞서 회사 측에 의해 시작되었다. 날이 밝으면서 회사 관리자들과 경비들, 돈을 주고 산 용역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경찰은 회사 주변을 완전히 봉쇄하고 그들만 안으로 들여보내 무력진압을 엄호했다. 아침 아홉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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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사진기록
요약설명 : 이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재판을 받기 위해 포승줄에 묶인 채 손에는 수갑을 차고 호송버스에서 내려 법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재판을 방청하러 온 재야인사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이고 있다. 구글검색에 나타난 김병곤의 사진은 모두 박용수의 민주화운동 기록이다. 오픈아카이브에서 유료로 서비스하는 사진사료 중 박용수의 사진은 유료 이용률이 낮은 편이다. 그렇다면 유료 이용률이 높아야 가치가 큰 것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위의 사례처럼 어떤 미디어도 접근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던 역사의 현장과 순간을 박용수 컬렉션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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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기
면담자 : 송철원
일자/장소: 2016.8.28./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국선도사범 등 근황 및 배경, 3선개헌반대투쟁, 경북대 이념서클인 정사회와 정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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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규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3./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인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경북대는 제적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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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충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2.9.15./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하숙생 현승일이 이완용과 이케다 허수아비 만들어 3.24시위를 주동하는 과정을...
일지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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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태 등 공소장 내용 발표 정부전복기도내란죄를 적용
일자 : 1964.6.1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당국은 최고 15년의 중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에 의해 번번이 묵살됐다. 결국 내란죄 부분은 삭제되고, ‘소요 및 집시법’ 위반 부분만 적용되었다. 결국 이들은 구속 140여 일 만인 1964년 10월 28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런데 1차 민비연 사건은 민비연의 조직 사건이 아니라 6·3항쟁 이후 다수의 투쟁 주도 학생들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비연 학생들이 포함된 것이었다. ‘2차 민비연 사건’과 완전히 조작된 ‘3차 민비연 사건’은 민비연이 조직 차원에서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화운동사 1』, 돌베개, 2008, 417·424·4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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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집시법위반혐의로 죄목 고쳐 구속 기소
일자 : 1965.10.2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정부·여당·군
요약설명 : 26일 오전, 서울지검 공안부 박종연 검사는 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진민자(22, 과학과 4년)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변경, 구속 기소했다. 진 양은 지난 6월 23일 한일협정비준무효화시위주동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는데, 앞서 중앙정보부는 진 양을 민비연내란음모사건관련혐의로 구속 송치했으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검찰은 구속영장을 경신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구속 기소한 것이다.『동아일보』 1965.10.26 석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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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모방, 단체협약 체결
일자 : 1972.10.27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기숙사생 500여 명이 회사를 나가 명동성당 저녁 미사에 참석한 후 농성에 들어갔고 회사가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노동자들은 복귀했다. 그러나 9월 4일 회사의 고발에 따라 경찰이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지부장 등 노조간부 14명을 연행하였다가 지부장 등 12명만 석방하고 교선부장 방용석, 총무부장 정상범 등 2명을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된 2명은 9월 16일 석방되었고, 조합원들은 태업을 벌이며 계속 투쟁을 전개하였다. 노동조합과 회사는 계속 대립하면서 임금인상률을 두고 맞붙었고 마침내 10월 27일 단체협약을 체결하여 타결을 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