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5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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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주교가 교구장을 맡고 있는 천주교원주교구성당
등록번호 : 00711439
날짜 : 1982.03.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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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식과 김은숙이 은신한 천주교 원주교구 교육원입구
등록번호 : 00711442
날짜 : 1982.04.02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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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환영 인파와 함께 성당으로 향하는 행진 앞에 선 지학순 주교와 시인 김지하
등록번호 : 00709995
날짜 : 1975.02.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원주에 도착, 신도와 시민 3천여명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지학순 주교는 천주교...
영상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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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요약설명 : 1974년 12월 1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과 한국정의평화위원회가 공동집전한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가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이날 저녁 서울 부산 인천 춘천 원주 대전 전주 광주 마산 제주 등 전국 13개 교구에서 6,500여 명의 교직자, 신도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서울 명동성당의 기도회는 저녁 6시에 2,500여 명의 신부 수녀 신도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열렸다. 이 기도회에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등이 참석했다. 김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정부여당이 유신체제만 살길이고 개헌주장은 좌시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이 시국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개헌을 주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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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탄생과 시국선언
요약설명 : 낭독되었다. 각 교구마다 돌아가며 개최된 기도회에는 기도회의 참여조차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억압적 상황 속에서 전국의 사제들이 교구를 초월하여 참여하였으며, 항상 몇백 명의 수도자가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함께 하였고 많은 평신도들이 성당 안과 마당을 가득 채웠다. 기도회는 긴급조치라는 살인적 탄압과 통제 속에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알리고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알리는 유일한 언로였고 교육장이었으며,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자세를 다지는 신앙 결단의 장소였다. 또한 그 곳은 전국에 흩어져 있었던 사제들이 한 뜻으로 만나고 의견을 교환하며 결집하는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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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
요약설명 : 해외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던 천주교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가 공항에서 납치되었다.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사건과 관련하여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사실은 이틀 뒤인 7월 8일에 확인될 수 있었다. 7월 9일 명동성당에서는 주교회의가 개최되었고, 이어 오후 6시 전국의 성직자 200여 명과 수도자 400여 명을 비롯한 1,500여 명이 명동성당에서' 정의 평화와 지학순 주교를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밤 10시경 지학순 주교는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나왔다. 지학순 주교의 주거는 명동에 있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으로 제한되었다. 7월 15일, 지학순 주교는 행방이 묘연하였으나, 오후 3시경 서울 후암동에 있는 동생 지학삼의 집으로 주거가...
구술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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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영주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17./강릉 한살림
요약설명 : 강릉의 천주교는 원주교구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그래서 목영주의 활동은 지학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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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철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18./원주시 무위당협동조합
요약설명 : 1976년 원주에서 군 복무를 하고, 1977년에 복학했다. 복학한 후에는 학교 인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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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식
면담자 : 한상봉
일자/장소: 2002. 8. 30.(1차), 10. 2.(2차), 10. 3.(3차)/원주 천사의집
요약설명 : 김지하와 천주교 원주교구, 명동 3.1구국기도회 사건, 1977년 4.19선언문 사건,...
일지사료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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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천주교회, 부정부패 규탄
일자 : 1971.10.5
분류 : 분류없음 > 재야·야당·지식인·종교인
요약설명 : 병역의 의무를 다할 때 외국으로 도망친 자는 누구의 아들들인가? 피땀 흘려 수출해서 벌어들인 값진 외화를 핑계 좋은 유람으로 탕진하는 자는 누구인가? 차관으로 외국에서 돈을 꾸어다 만든 공장이 문을 닫을 때마다 치부하고 돌아서버린 자는 누구인가? 자, 이제 더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너무나 확실히 보았고, 애절하게 견디어 왔다. 이제 국가공동체가 부정부패권력의 병마에서 존망의 위기에 놓였다. 권력만 믿고 민중과 정의를 모르는 그들에게 진리의 힘을 보여주자.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정의의 꽃을 피워보자! 우리 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회정의를 이룩하자.1971년 10월 5일 천주교 원주교구 부정부패 규탄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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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천주교도들의 규탄대회
일자 : 1971.10.7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천주교원주교구 신도 300여 명은 오후 2시 원주교구 성당에서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계속했다. 이들은 오후 5시 20분에 성당에서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사회정의를 위한 공동투쟁선언문을 채택하고 투쟁목표를 재확인했다. 선언문에서 그들은 현 정권이 민중을 기만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판하면서 부정부패 추방과 중앙정보부 해체, 그리고 반공법 폐기 등을 주장했다. 이들의 농성에 민주수호연맹청년협의회 회원 2명이 격려했고 서울대, 고려대, 이화여대 학생회장단 30여 명이 하룻밤을 같이 하기도 했다.『경향신문』 1971.10.7. 7면; 『동아일보』 1971.10.7. 7면; 『동아일보』 1971.1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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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순 주교, 근로자의 날의 맞아 노동자 인권 관련 강론
일자 : 1974.3.10
분류 : 민주화운동 > 재야·지식인·종교
요약설명 : 등 원주교구 내에서 조직된 각종 관련단체를 지원하였고, 교육회나 세미나 등지에 직접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천주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한국노총 원주지부가 주관이 된 노동강좌 등에도 참여하기도 하였고, 1973년 6월 노동자 교육문제를 다루는 신·구교 연합 한국노동교육협의회의 회장에 추대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교회에서 강론을 통하여 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신장을 강조하였다. 이번 강론에서 지주교는 첫째 어떤 형식으로든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노동운동에 관한 간행물을 만들어 배포할 것, 둘째 동자들의 학습과 연구를 돕기 위해 교재를 마련할 것, 셋째 지식인들과 크리스찬들이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