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5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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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 평화의 파수꾼들 [아르헨티나 어머니회]
등록번호 : 00938389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
요약설명 : 어머니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의 광주항쟁과 6월항쟁 등을 지지하며 평화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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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노동자와 구속된 고 전태일 어머니를 위한 기도회
등록번호 : 00105255
날짜 : 1977.08.0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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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갈망하는 어머니의 편지
등록번호 : 00210520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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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에 참가한 송광영 열사 어머니
등록번호 : 00957042
날짜 : 1987.03.03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국민평화대행진'에 참여한 송광영 열사 어머니 이오순 여사가 십자가와 태극기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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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해 싸워온 5월광장어머니 환영회에서 울분을 터뜨리는 어머니 모습
등록번호 : 00748273
날짜 : 1994.00.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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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사용 반대 집회에서 최루탄 공장 사장 타도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
등록번호 : 00744328
날짜 : 1987.06.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평화적 집회를 보장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우리...
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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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요약설명 : “어머니, 저녁 여덟 시에 갑자기 전기가 나갔어요. 일하던 노동자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사장들과 경비들이 소리를 치고 다녔어요. 오늘은 일이 끝났으니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 소리가 꼭 꿈만 같아 너도나도 웅성거렸답니다... ”아, 나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어요...” 고작 여덟 시에 일이 끝났다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니, 소선은 여전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결심했다.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날까지 온몸을 바쳐 싸우겠노라고. 그것은 온몸에 화상을 입고 죽어가던 아들 태일의 뜻이기도 했다. 소선은 언제나 노동자들의 편이었고,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소선이 있었다. 1975년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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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_ 씨ᄋᆞᆯ의 소리 함석헌
요약설명 : 그때 일 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해방이 되자 함석헌은 어머니와 형제를 두고 단신으로 월남했다. 아버지가 한의사이자 지주라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쪽 역시 이승만 독재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일제 강점기에서 그대로 내려온 관리들이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고 있었다. 민족 사상가로서, 또 민주주의를 바라는 열렬한 행동가로서 함석헌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958년 당시 장준하가 발행하던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처음 실었다.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고 항거하는 내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구류 20일의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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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였다. 주먹으로 눈물을 쓱 닦은 사내는 자신이 쓴 시의 구절을 조용히 읊조렸다. “5월 영령들이시여!/ 이 못난 도망자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못난 놈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또 열심히 활동해서 살아남은 죄, 도망친 죄를 씻고/ 떳떳이 돌아올 수 있도록/ 보호하여 주시고 격려하여 주옵소서.” 의무실은 네 벽이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찜통 그 자체였다. 바깥쪽 연통에서 뿜어대는 열기는 사막보다 뜨거웠다. 팬티 바람으로 있어도 기포와 수포가 생길 정도였다. 그는 이곳에서 후배 김은경이 챙겨준 마른 멸치와 잣, 마른 새우만 먹으며 버티느라 뼈만 남은 몰골이 되어 갔다. 드디어, 35일간의...
구술 컬렉션 1건
더 보기일지사료 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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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아들 전태일의 장례식을 미루고 처우개선을 요구
일자 : 1970.11.14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근로조건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분신자살한 전 평화시장 재봉사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씨는 14일 평화시장의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서 요구조건이 이루어질 때까지 장례식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한국일보』 1970.11.1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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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어머니 이소선, 시체안치실에서 사흘째 농성
일자 : 1970.11.16
분류 : 분류없음 > 기층민중
요약설명 : 13일 서울평화시장일대의 피복제조 종업원들의 처우 개선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 씨의 어머니 이소선 씨(42)는 아들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아들의 시체 인도를 거부하겠다면서 연 사흘째 성모병원 시체안치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 씨는 전 씨가 숨을 거두며 남긴 “내 뜻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장례식을 치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시체인도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물질적 요구는 아니라고 말했다.『동아일보』 1970.11.16. 7면; 『경향신문』 1970.11.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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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신학대학에서 교인의 적극 사회참여 등을 결의
일자 : 1970.11.25
분류 : 분류없음 > 학생
요약설명 : 25일 오전 11시 감리교신학대학(서대문구 천연동) 학생 2백여 명은 전태일 씨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평화시장 노동조건개선 추진위원장 최종인 씨를 교내 학생회의실에 데려와 전 씨의 생애와 생활상을 들었다. 학생들은 또한 전 씨의 죽음에 대한 교인들의 냉담에 대해 교인으로서 울분을 금치 못한다고 주장, 교단은 노사문제 조사에 솔선수범할 것과 교인도 적극 사회참여를 하자는 등 3개 항목을 결의한 후 이날 오후 2시 24시간 기한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동아일보』 1970.11.25.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