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21건
더 보기-
혈서 1960
등록번호 : 00849680
날짜 : 196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민주화 항쟁 관련 '언니들은 뜻을 잘 압니다' 라는 광신산업 김동권씨의 혈서.
-
[신문스크랩]正副統領에 李博士와 李議長을 孝子洞의 金氏가 血書로 嘆願
등록번호 : 00850158
날짜 : 1960.02.1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
[신문스크랩]愛國學徒 모욕이다 張氏의 煽動演說에 憤激 두 學生이 血書로 糾彈呼訴
등록번호 : 00850278
날짜 : 1960.02.1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사진사료 32건
더 보기-
['4.30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앞서 열린 집회에서 혈서를 쓰는 시위자들]
등록번호 : 00833872
날짜 : 1989.04.2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한겨레신문사
요약설명 : 가진 집회에서 학생들이 '노동자 총파업 백만학도 동맹휴학'이라는 혈서를 쓰고있다...
-
서울의 6월항쟁. 명동성당 농성 해산을 앞두고 혈서를 쓰는 사람들
등록번호 : 00957317
날짜 : 1987.06.15
구분 : 문서류 > 필름
기증자 : 정태원
요약설명 : 명동성당 농성자들이 해산을 앞두고 혈서를 쓰고 있다.
-
새 국가보안법 강제통과에 반대하여 "학생이여 상기하여 민주주의 살리자" 의 내용이 담긴 ...
등록번호 : 00734087
날짜 : 1958.12.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살리자'는 혈서와 '학생들에게 보내는 격문'을 경향신문에 전달했다. 격문에는 민주주...
박물사료 2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3건
더 보기-
동백림사건을 딛고 우뚝 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요약설명 : 나는 간첩이 아니다.” 혈서를 쓴 뒤, 그는 혼절하고 말았다. 한편, 이수자도 나흘 뒤 같은 방식으로 한국으로 납치돼 남산에 있는 중정 대공분실로 붙잡혀갔다. 이번에 끌려온 사람들이 약 2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1967년 7월 8일,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이 사건은 관련자인 임석진이 귀국하여 자수함으로써 밝혀졌다. 재독 음악가 윤이상과 재불 화가 이응로를 비롯해 해외에서 활약 중인 교수나 예술인, 의사와 공무원, 유학생과 광원 등 194명이 동베를린(동백림)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을 드나들면서 이적 활동을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북한에 들어가 조선노동당에...
-
어느 청년 재단사의 꿈
요약설명 : 쓴 혈서가 들려 있었다. 이에 분신을 목격한 후 작업장에 들어가지 않고 서성이던 젊은 노동자 수십 명도 합류해 동대문 쪽으로 함께 행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장 대기하고 있던 경찰의 곤봉과 구둣발에 무참히 짓밟혀 연행되고 말았다.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이 아들의 소식을 들은 것은 두 시 라디오뉴스를 통해서였다. 평소 어린 여공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며 어려운 노동법을 읽고 이상적인 공장을 꿈꾸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분신까지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 사십대 초반의 과부인 그녀에게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태일이 엄마, 설마 죽겠어요? 어서 병원에 가봐요.”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위로하고 있을 때,...
-
민주주의의 진인(眞人)으로 우뚝 선 계훈제
요약설명 : 단단히 한판 붙어야 한다는 각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만주의 일본 군관학교에 입학하고자 혈서를 썼고, 만주군 소위로서 일제에 충성했다. 그는 196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대일본 청구권을 무산시켰고 10월유신을 통해 장기집권의 초석을 깔았다. 이에 계훈제는 분연히 일어나 장준하와 더불어 개헌청원백만인서명운동에 동참했다. 박정희는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를 발동해 장준하와 백기완, 계훈제 등 민주인사를 구속시켰다.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 계곡에서 장준하가 사망하는 돌연한 일을 맞이한 계훈제는 “형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형을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할 것입니다.”라는...
구술 컬렉션 6건
더 보기일지사료 37건
더 보기-
민주당, 장충단에서 대규모 조기선거 규탄 강연회 개최
일자 : 1960.2.7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야당과 재야단체
요약설명 : 뒤에서 “민주당 승리로 민주주의를 수호하자”는 혈서를 쓰기도 하였다. 조재천은 다음과 같이 자유당의 부정선거 방식을 지적하며 용기를 갖고 자기표를 지키자고 호소하였다.조재천 연설문국민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유당원이 되거나 또는 자유당 산하단체의 요원이 되고 만다. 영일 을 및 영주 재선거에서는 갖은 불법과 부정이 감행되었는데 이러한 방법은 이번 정·부통령선거에도 이용될 것이다. 부정의 방법은 ①경찰관을 부락별로 유숙시키고, ②공무원과 단체원에게 유권자 2,3명씩 할당시켰으며, ③9인조·3인조의 군대식 편성을 하였고, ④내통식기표소를 설치하였고, ⑤공개투표를 강요하였는데 경찰관은 민주당 참관인을...
-
자유당 지지 혈서 쓴 제대 군인, 과다 출혈로 입원
일자 : 1960.2.1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13일 오후 자유당 선전위원회는 20대의 제대군인이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을 지지하는 혈서 3통을 썼다고 하였다. 혈서는 500자 이상이나 되어 청년은 과다 출혈로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한다.『동아일보』1960. 2. 14 석3면
-
인천 지역 고등공민학교 학생 2명, 혈서로 이승만 지지 호소
일자 : 1960.2.15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15일, 인천 지역에서 고등공민학교를 다니는 학생 2명이 장면의 인천 강연회(전날인 14일) 연설을 비난하며 이승만을 지지하는 혈서를 서울신문사에 보내왔다. 이들이 보낸 혈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를 모시자! 반공지도자 • 학도들아 궐기하라! 자유는 살아있다. • 부통령에 이기붕 선생을 모시자! • 국민들이여 일본을 쳐 부수자! 이 박사 뜻을 받아 남북통일 이룩합시다!『서울신문』1960. 2. 16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