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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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기념시선집-너는 모았는가 뿌린 핏방울을
등록번호 : 00439313
날짜 : 2001.09.09
구분 : 문서류 > 단행본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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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제45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3.15의거 정신의 역사적 변천과 계승 방안
등록번호 : 00439325
날짜 : 2005.04.13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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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기념사업추진위원회 취지문/호소문/계획과예산/연혁
등록번호 : 00849784
날짜 : 1960.06.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3.15의거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관련 내용. ; 취지문 - 4월26일 민주혁명의 선봉으로...
사진사료 86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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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정부통령선거 마산시 개표결과가 발표된 마산일보 특보
등록번호 : 00700027
날짜 : 1960.03.1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오후 1시에 3.15정부통령선거 마산시 개표결과를 알리는 마산일보사 특보가 벽에 걸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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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 민주당 선거위원회가 발표한 3.15부정선거 규탄성명서
등록번호 : 00700036
날짜 : 1960.03.2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발표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마산시민의 독재타도 의거정신을 욕되게 하지 말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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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의 무효를 주장하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
등록번호 : 00700206
날짜 : 1960.04.0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6일, 3.15선거의 불법과 무효를 외치며 마산사건 원흉의 처단과 재선거를 호소하는...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1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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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25 대학교수단 시위
요약설명 : 4.25 대학교수단 시위에 직접 관련된 자료는 많지 않다. 3.15의거기념사업회(등록번호 : 700220)와 경향신문사(등록번호 : 732784, 721907)가 생산한 사진과 대학교수단의 시국선언문(등록번호 : 4813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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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시위
요약설명 : 1,731건의 사료가 소장되어있다. 박용수 선생과 경향신문사가 생산한 4.19관련 각종 사진 219 건 중 박용수 선생이 기증한 사진은 주로 4.19 정신을 이은 민주화운동 관련 사진이고 경향신문사의 사진은 4.19 당시의 것들이다. <4.19 23주년 기념행사 자료집-부활과 4월혁명(대한가톨릭대학생연합회, 한국기독학생회 총연맹)> (등록번호 : 73822) 등 각종 4.19기념행사 자료집, <4.19영령은 통곡한다! 군부독재 타도하고 민주정부 수립하자! (민주주의와 민족자주 쟁취를 위한 노동자투쟁위원회)>(등록번호 : 79241) 등의 성명서, <4.19 38주년에 즈음하여 민주개혁과 자주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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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8 고려대생 시위 및 피습사건
요약설명 : 4.18 시위를 기념하여 후일 행해진 각종 행사와 관련된 사료들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33주년 4.18자료집인 <자유! 너 영원한 활화산이여-민중정치 실현을 위한 대장정>(등록번호 : 5456), 고려대총학생회의<‘97 4.18민중해방대장정 토론자료집-불복종의 역사를 오늘에 이어>(등록번호 : 15732), <4.18특집신문-민중과 함께 민족고대는 싸우고 있다> (등록번호 : 117487) 등 고려대학교 학생회가 4.18을 맞아 생산한 문건들이 많다.
사료 콘텐츠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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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요약설명 : 지나 도청으로 향했다. 3.15부정선거 이후 3월 21일에 계획되었던 춘천지역 고등학생들의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정보 누설과 관련자들의 연행으로 좌절된 이후 벌어진 첫 시위였다. 춘천고등학교는 당시 주‧야간 합쳐 1천5백 명 가량 되었는데 이중 1/3이 참여했으며 이는 학도호국단 체제에서 비상연락망을 통해 가능하였다. 도청에서 홍창섭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였고 제비뽑기로 뽑힌 두 명의 학생들이 들어가 대면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였다. 요구사항은 ‘학원에 정치적으로 간섭하지 말아라’ ‘수업을 조속하게 빨리 하자’ 이었다. 이 시위에는 춘천여자고등학교, 성수고등학교, 춘천농대 등이 합류하였는데 도지사와의 면담 후 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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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의 그날, 1960년 4월 19일
요약설명 :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3.15부정선거에 대한 분노와 얼마 전 마산에서 일어난 규탄대회에서 김주열 군이 최루탄에 눈부분을 맞고 마산 앞바다에 죽은 채 떠올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던 터였다. 누군가 불을 댕기기만 하면 활활 타오를 듯이 사람들의 가슴은 이글이글 끓어대고 있었다. 봄의 햇빛은 따갑게 대기를 달구어놓고 있었다. "우리 학생들은 지난 부정선거를 똑똑히 목격하였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폭력을 금하라! 우리는 무저항주의를 지향한다!" "동성학생을 즉각 석방하라!..." 병태는 유인물을 길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역할을 맡았다. 급히 만든 유인물이었지만, 사람들은 서로 손을 내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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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 지휘자의 말로(末路) - 최인규
요약설명 : 사형이 집행되었다. 3.15부정선거 주모자 등 이승만 정권 핵심들의 상당수는 4.19혁명 이후 과도정부-민주당정부-군사정부의 3개정권 하에서 3개의 다른 법에 의해 3차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첫번째 재판 1960년 5월 3일, 검찰은 최인규를 정부통령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검찰에 체포된 최인규는 부정선거 지휘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하면서, 자유당 측의 "자유당을 위한 마지막 총알이 되어 달라"는 지령과 자신의 영웅심이 복합되어 부정선거를 계획하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이승만과 이기붕을 정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만 하면 여생이 편할 줄 알았다"고 하면서 부정선거 음모계획과 실행경과를 진술하였다. 1960년 7월...
구술 컬렉션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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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목
면담자 : 조한성
일자/장소: 2003.09.01 / 양천구 신월동 박진목선생님의 자택
요약설명 : 이영근 - 3.15 부정선거 - 종전운동을 하게 된 계기 및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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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달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3.9.10./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3.15의거 목격, 한양공대 학생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총학생회·단과대 부학생회장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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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혜
면담자 : 정영훈
일자/장소: 2015. 1. 31./여성미래센터 한국여성연구소
요약설명 : 마산에서의 어린 시절, 이대 새얼 활동, 유신 이후 대강당 철야 농성 시위 주동, 수배...
일지사료 67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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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당, 대구학생시위로 3·15선거전에서 위신 잃어
일자 : 1960.2.2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국제관계 및 해외보도
요약설명 : 전날의 대구학생시위로 자유당이 3.15 정·부통령선거전에서 크게 위신을 잃은 것 같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한국에서 시위 학생을 나무라는 사람은 별로 없으며 자유당원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일요일 오후에 학생을 등교케 한 대구학교당국자들을 공격했다고 전하였다. 기사는 장면민주당 부통령후보가“무엇 때문에 공일에 학생들을 등교시키는가? 당국자들은 학생들이 민주당 강연장에 못나가도록 그런 지침을 취한 모양인데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한편 민권수호총연맹도 평화적인 시위는 조금도 법에 어긋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대구학생들의 시위를 옹호했다고 덧붙였다.『 대구매일신문』196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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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일 중앙선거위원장 사퇴
일자 : 1960.4.26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26일 오전, 중앙선거위원장을 겸한 김두일 대법관은 조용순대법원장에게 대법관직에 대한 사표를 정식으로 제출하였다. 김두일은 3.15선거를 총관한 중앙선거위원장으로서 동 선거가 불법적으로 치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통령의 당선을 그대로 선포하여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던 자이다.『조선일보』 1960. 4. 26 석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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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의회, 박정근 전북도지사 파면결의안 채택
일자 : 1960.4.26
분류 : 혁명입법과 혁명재판
요약설명 : 26일 오전 10시 40분경, 23회 전주시의회에서는 17만 시민의 이름으로 박정근전북도지사 파면 결의안을 긴급동의로 채택하여 이승만대통령에게 전달키로 결정하였다. 이 결의안의 제안자인 민주당노승환 의원은 “박정근전북도지사는 3.15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이 막중한 만큼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하였다.『조선일보』 1960. 4. 26 석3면 박정근은 정오 무렵에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받들고 도지사로서 도민에 대한 책임의 중대함을 통감하며 정치 도의상 사임한다”며 사임 성명을 발표하였다.『동아일보』 1960. 4. 27 석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