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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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 29일자 조선일보 "노대표, 직선제 개헌선언"
등록번호 : 00017066
날짜 : 1987.06.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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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언 노태우의 기만적 교육계 6, 29 선언을 무력화하기 위한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자!
등록번호 : 00413475
날짜 : 1989.09.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이우재
요약설명 : 첫째, 교사가 노동자임을 확실히 하여 노조사수를 다시 한번 결의하고 노선을 확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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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2년 세월에 바래고 구겨진 '6•29 선언'
등록번호 : 00990145
날짜 : 1989.06.2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6공화국'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6.29는 현 정권의 민주화 의지를...
사료 콘텐츠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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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강하다 -민주화를 향한 문인들의 기개
요약설명 : 사무실 앞에서 ‘문학인 101인 선언’을 낭독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이후 시국 관련 구속 문인들의 석방, 언론ㆍ출판ㆍ집회의 자유를 촉구하는 등 조직적이고 대표적인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도처에서 불신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은 살기 어렵고, 거짓과 아첨에 능한 사람은 살기 편하게 되어 있으며, 왜곡된 근대화 정책의 무리한 강행으로 인하여 권력과 금력에서 소외된 대다수 민중들은 기초적인 생존마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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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요약설명 : 해외민주화운동 1981년 4월 29일 오후, 마산 부두 정문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췄다. 차에서 내린 세 남자는 부두에 대기 중인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승선했다. 2등 기관사 정찬대와 3등 항해사 최동현은 비쩍 마른 사내를 의무실로 안내한 뒤 말했다. “형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지내십시오.” “고맙네.” 비쩍 마른 사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머물 곳은 의무실에 딸린 화장실이었다. 한 평 반쯤의 공간에는 양변기와 세면대가 있었고, 천장에 조그만 환기구가 있을 뿐이었다. 백열등이 꺼지면 곧바로 암흑천지였다. 그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극도로 조용히 지냈다. 출항한 지 몇 시간 뒤, 저녁이 되자 3등 항해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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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의 생애를 바꾼 세 친구
요약설명 : 있는 구국선열들의 피를 땅에 묻어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구국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이 선언서는 문익환이 작성한 글이었다. 사법 당국은 곧 문익환을 비롯한 서명자 전원을 연행해 갔다. 3월 10일, 서울지검 서정각 검사장은 끌려간 20명을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는 발표를 했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신 반대를 외치는 학생운동이 부활했다. 위축되었던 재야의 민주회복운동도 다시 점화되었다. 문익환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재야, 학생, 시민들과 더불어 호흡해 나갔다. 유신의 심장 박정희는 자신이 수족처럼 부릴...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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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우
면담자 :
일자/장소: 2023.5.26./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요약설명 : - 1987년 6․10민주항쟁과 대전여민회 결성, 결혼과 대한성공회와의 인연 -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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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원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21./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민주구국선언을 전개하여 당일 연행되고 11월 7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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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춘
면담자 : 이영재, 정호기, 이창훈
일자/장소: 2017.6.2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6∙29선언 직전과 직후의 상황, 노동자대투쟁 국면과 대통령선거 국면의 천주교계...
일지사료 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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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당, “한일회담 지속하면 난동사태 날 것”
일자 : 1961.11.7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해외 및 북한
요약설명 : 4월 무렵부터 북한은 한일회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1957년 12월 29일 ‘한일 양국 억류자 상호 석방협정’(1957.12.31. 조인)을 마련한 한일 예비회담에서 억류자 상호 석방 및 본회담 재개에 합의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상 성명’(1958.1.4.)을 발표하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남조선 당국이 전 조선인민을 대표할 수 없는 것만큼 일본정부가 그와‘대일 재산청구권문제’, ‘재일조선인 국적문제’를 포함한 전 조선인민의 리익에 관련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일방적인 회담을 진행하거나 조치를 강구한다면 그는 완전히 부당한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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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6·3학생운동사』, 역사비평사, 2001, 459쪽고려대학교 3·24 선언문우리는 오늘 공화당 정부와 일본이 진행하고 있는 굴욕적인 한·일협상을 좌시할 수 없어 여기 또다시 섰다. 4·19의 혈흔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6·6의 봉기가 결실조차 못 본 오늘 상아탑의 전위는 또다시 피 어린 투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을 저주한다. 일제의 악랄한 수탈과 착취가 이 강토를 폐허의 초토로 유린했건만, 현금 또다시 일제의 망령이 우리의 심장을 파열시킨다. 공화당 정부가 내걸었던 민족주의는 어디로 사라져 가버리고 우리의 우방 미국이 덮어씌운 면사포가 정부를 현혹한다. 우리는 정부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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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 13명 첫 공판
일자 : 1964.6.29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등 이유를 들었다. 공소장 요지는 다음과 같다.『경향신문』 1964.6.29 석2·7면, 『동아일보』 1964.6.29 석3면공소장(요지)〈제1〉피고인 이경우, 손옥백, 김병길, 김광현, 공소 외 도피 중인 김재하, 박정훈, 이명박, 최장집, 김덕규 등은 박정희 대통령이 영도하는 공화당 정부가 누적된 부정부패와 불신 현상의 광정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열망을 묵살하고 천정부지의 물가고와 실업군중의 범람으로 집약되는 민생고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더욱 작금 추진 중인 한일회담이 일본 신제국주의의 경제침략에 대하여 조국을 무방비상태에 방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경신하여 여사한 일련의 정치적, 경제적인 정세는 현 정권을 타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