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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및 5.18사건 관련자 사법 처리 과정
요약설명 : 1979년 10월 26일(10.26사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궁정동 별관 만찬에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 ○ 1979년 12월 12일(12.12군사쿠데타) 전두환을 중심의 신군부, 불법 병력 동원, 군권 장악 ○ 1980년 4월 14일 최규하 대통령,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서리로 임명, 국군보안사령관 겸임 ○ 1980년 5월 17일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 ○ 1980년 5월 18일 전남대생 6백여 명 학교 정문 앞서 계엄군과 첫 충돌 ○ 1980년 5월 19일 광주에서 시위 본격화, 계엄군 착검 시작, 첫 사망자 발생 ○ 1980년 5월 21일 광주 일대 외부와 통신 교통 두절, 공수부대 무차별 집단 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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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가는 역사를 되살리는 생명의 기록
요약설명 : 문인 등 각 분야의 인사 134명이 1979년 10.26 이후 계속되고 있는 비상계엄을 해제할 것과 심화되고 있는 경제위기 문제, 민주화와 생존권을 외치는 학생 근로자들의 항의시위 등에 대하여 자신들의 견해를 공동으로 밝힌 것이다. 송건호는 이 시국선언문을 썼고, 계엄령 위반으로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해야 했다. 고문후유증으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는 파킨슨병으로 8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2001년 12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질곡의 세월을 살았던 그의 삶이 우리 언론의 역사와 닮아 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송건호 선생을 ’언론인의 사표'로 삼고 있다. 2002년 선생의 자유언론 정신을 기리기 위해 송건호언론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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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언론의 편집장 - 안종필 이야기
요약설명 : 긴급사태에만 발동되어야 하는 인위적인 것이지만 언론자유는 하늘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구치소에 갇혀 보니 듣고 말하고 보는 것은 인간의 존재 양식, 바로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듣고 보고 말하지 못하면 미치고 맙니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자유언론이 보장되지 않으면 썩고 미치고 맙니다. 안종필이 ‘징역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자 그해 12월 4일 구속 집행정지로 출감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유의 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징역에서 얻은 병마와 간암을 이기지 못하고 1980년 2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함세웅 신부는 추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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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국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23.6.30./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후 훈련소에서 10.26 경험, 군대의 경험 및 대학 복학 - 대학활동과 졸업 후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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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우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8. 7. 15, 7. 22/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민주청년협의회, 10.26사태와 YWCA위장결혼식사건, 1980년 서울의 봄, 서울역 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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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정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8. 8. 28/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입사와 동아사태, 동아투위 활동, 10.26사태와 혼미 정국, YWCA위장결혼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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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 살해 후 체포
일자 : 1979.10.26
분류 : 정치·경제·국제관계 > 정부·여당
요약설명 : 관철될 기미로 보이지 않자 태도를 돌변하여 국방부장관 부속실에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피살사실을 알렸다. 김재규는 군 수사기관에 체포되었다. 김재규, 김계원,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중앙정보부 비서실 경비원), 유성옥(중앙정보부관리국 파견운전사), 김태원(중앙정보부 비서실 경비원), 유석술(중앙정보부 비서실 경비원) 등 8명이 내란목적 살인, 내란미수, 증거 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대통령 시해사건」 『경향신문』 1979.10.28. 1면;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 「공소장 [10.26사태 주모자인 김재규 등 관련자에 대한 공소장]」, 1979.11.26.,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