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대한변호사협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20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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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4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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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발표문[부천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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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63415
날짜 : 1986.08.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종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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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고문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건의[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김은호씨가 검찰총장에게 보내는 수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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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63642
날짜 : 1986.07.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종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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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구조 청원에 대한 회신[수신: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장, 발신: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문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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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177479
날짜 : 1988.10.1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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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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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을 당한 송정명으로부터 증언을 청취하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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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00150
날짜 : 1960.03.19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19일 대한변호사협회 회원들이 도립마산병원을 방문하여 시위대에 참가 부상 입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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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한 12.12사건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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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39896
날짜 : 1994.11.08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서초동 변협회관 별관 회의실에서 12.12 주모자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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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부 퇴진을 요구하는 대한변호사협회의 긴급 회의장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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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16491
날짜 : 1993.07.02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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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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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김창국 명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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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74166
날짜 : 미상
구분 : 박물류 > 박물
기증자 : 김창국
요약설명 :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패용한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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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김창국 명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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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74167
날짜 : 미상
구분 : 박물류 > 박물
기증자 : 김창국
요약설명 :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패용한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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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김창국 명찰(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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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74168
날짜 : 미상
구분 : 박물류 > 박물
기증자 : 김창국
요약설명 :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 패용한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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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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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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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부정선거 - 마산에서 시작된 혁명의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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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누구를 향해 쏘라는 말인가? 하지만 시위를 떠난 화살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급히 ‘마산사건 진상조사단’을 파견했고, 용감한 기자들과 양심적인 일부 검사들도 3월 15일 마산에서 벌어진 일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3월 23일 이승만의 충견인 내무장관 최인규가 물러나고, 이어 이강학이 해임되었다. 그리고 시위관련 구속자 중 정남규를 제외한 전원을 석방하고, 박종규 경위 등 경찰 5명을 발포혐의로 구속하였다. ‘토사구팽’, 토끼를 잡았으니 사냥개 몇 마리만 구워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이승만과 같은 독재권력이 늘 써먹던 바로 그 수법이었다. 그래서 끝나기를 바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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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권 독립 선언 또는 사법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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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등 대도시 판사들도 동조 움직임을 보였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사법권 옹호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7월 31일 현재 사표를 낸 판사는 모두 100명인데 이는 전체 법관(415명)의 4분의 1에 달하였다. 결말: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검찰에 판사독직사건을 더 이상 수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며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였고, 검찰이 사건을 불기소하고 일방적인 휴전을 선포했다. 판사들은 이에 대하여 여러 차례 사후 방안을 논의하였으나 대안을 찾지 못하였다. 8월 27일 민복기 대법원장이 재경 법관 전체회의를 소집하여 사표 철회을 호소하였고, 이 회의를 계기로 판사들은 사의를 철회하고 법정에 복귀하였다. 아쉬움: 사법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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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역사속으로 걸어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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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필요할 뿐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신문스크랩을 찾았다. 그는 이돈명․ 홍성우․ 황인철 등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역인 문부식․ 김은숙 등의 변론을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3년 후인 1985년 5월 3일 부산민주시민협의회(부민협) 결성에 참여하고 1986년경부터는 변호사업을 중단하다시피하며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1987년 6월항쟁의 흐름속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가 결성되자 부산 국본의 상임위원장을 맡아 부산 민주화운동의 야전사령관이 되어 거리에 나왔다. 이즈음의 그는 인권변호사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뛰는 운동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이던 198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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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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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5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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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동파출소 앞에서 경찰 발포로 사상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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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3. 17 조3면 ; 대한변호사협회, 820쪽 ; 이강현 편, 51-52쪽; 김재희 편, 71-72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125-126쪽 ; 마산일보사,『민주혁명 승리의 기록』, 1960, 30쪽 ; 현역일 선기자동인 편,『사월혁명 : 학도의 피와 승리의 기록』, 1960, 52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6-297쪽 그 시각 남성동파출소 앞에서 나온 사상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사망자 : 오성원 •총상자 : 강윤경, 강형준, 구본수, 김경춘, 김기철, 김동섭, 김라자, 김생종, 김이철, 김정수, 김종근, 문채영, 박정명, 박판규, 서동호, 이동섭, 이신자, 정갑주, 조승래, 진병열, 최명준, 한 압, 황 청 등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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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대의 돌팔매질과 경찰의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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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반공청년단원 10여 명이 내려 시민들을 몽둥이로 무차별 폭행하였다. 어떤 사람이 참다못해 “저놈들 죽여라!”고 외치자 시민들은 돌로 대항하였다. 그러나 훈련된 경찰과 반공청년단들의 완강한 진압으로 오후 6시 경조화영 편, 29-30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5쪽. 일부 기록은 오후 5시 경으로 기록하고 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125쪽 ; 대한변호사협회, 819-820쪽). 시위대는 해산되었다.『마산일보』1960. 3. 17 2면 ;『동아일보』1960. 3. 16 석3면, 1960. 4. 1 조3면 ; 조화영 편, 29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124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94-295쪽.동아일보에는 시위대가 민주당 사무실 앞에서 10여 명의 반공청년단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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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대의 도심 유혈전과 허윤수 집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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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시위대는 도중에 서울신문 마산지국과 국민회 사무실을 습격하여 창문과 비품 등을 파손하였다. 또한 구(舊)마산 일대의 정전이 남선전기 주식회사의 고의적인 처사라고 생각하여 남전을 습격, 유리창을 남김없이 파괴하였다. 오동동파출소에 다다른약 200여 명의 시위대는 파출소앞 약 80미터 지점에 있는 다리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저지당하여 흩어졌다.『동아일보』1958. 5. 4 석1면, 1960. 1.7 석1면, 1960. 1. 23 석1면, 1960. 3.16 석3면, 1960. 3. 17 조3면 ; 김재희 편, 73쪽 ; 마산일보사, 32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 128쪽 ; 현역일선기자동인 편, 53쪽 ; 대한변호사협회, 821쪽 ; 3·15의거사 편찬위원회, 281.297. 302-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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