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전태일분신'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1,20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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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18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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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스크랩] 「전태일씨 분신」 노동운동사에 큰획-70~80년대 노동운동 어떻게 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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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6697
날짜 : 1990.11.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전태일씨 분신」 노동운동사에 큰획-70~80년대 노동운동 어떻게 변했나 -학생운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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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한강 제16회 정기공연 전태일열사 분신 30주기 기념 공연 제작을 위한 설문조사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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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8796
날짜 : 2000.06.1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전태일열사 분신 30주기 기념 공연 제작을 위해 총 385명을 대상으로 전태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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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열사 분신 항거 장소 및 동판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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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89710
날짜 : 20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외치며 분신했던 고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 관련 내용. 전태일열사 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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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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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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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결한 영혼, 조영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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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전환점을 가져다준 전태일의 죽음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스물두 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자살을 감행했다. 그는 불길 속에서 쉼 없이 외쳐댔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숯처럼 까맣게 된 전태일은 목숨이 꺼져 가는 순간에도 한 손에 근로기준법 책자를 쥐고 있었다. 빈소로 찾아간 조영래는 전태일의 영정 사진을 보며 먹먹한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전태일의 분신자살은 한국 사회에 노동자의 존엄한 권리문제를 근본적으로 일깨운 일대 사건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영래의 삶의 행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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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살 시다 - 신순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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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전태일이 분신했던 그 날도 저는 미싱을 돌리고 있었어요. 사장이 그러더군요. 저기 청계천 어디서 깡패 하나가 죽었는데, 행여 구경한다고 나가지 말라고. 저는 그 소리 듣고 그런가보다 했어요. 진짜 구경도 안 나가고 일만 했으니까요.” ‘깡패’ 전태일 신순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전태일, 아니 1970년대를 통과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전태일. 그의 죽음 바로 곁에 있었던 미싱사 신순애는 정작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그 후 검정고시 준비를 무료로 시켜준다는 말에 노동교실에 등록했고, 그제서야 그 노동교실이 바로 전태일의 죽음 덕분에 생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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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으로 심장을 뛰게 하라 - 노래를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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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감동적인 노래였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순간만큼 아름다운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민주화란 몇 개 조항의 법률로 박제화 될 수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항구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루탄 가스와 날아다니는 돌멩이에 둘러싸여 노래를 해야만 했던 그 시대는 갔지만, 완전한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우리들의 노래도 계속될 겁니다. 글 안재성 1989년 장편소설 <파업>으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이후 대표작으로 <사랑의 조건>,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연안행>,등의 장편소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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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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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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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차성환
일자/장소: (1차) 2023.7.10. (2차) 2023.7.11. (3차)2023.7.12. /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사무실
요약설명 : - 전교조 서울지부장 출마와 낙선 - 강경대 사망 사건과 분신 정국 - 명동성당 농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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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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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13 / 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중에 전태일분신사건이 일어났다. 전태일의 모친 이소선 여사와 장기표는 삼일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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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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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9. 8. 6 / 국민대학교 북악관
요약설명 : 일어난 전태일분신사건은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서울대 법대는 분신 소식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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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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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구교 성직자 및 재야인사 15명, 청계노조 폭력 탄압 규탄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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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7.9.20
분류 : 민주화운동 > 노동
요약설명 : 생명이 경제성장과 수출증대의 도구로 전락하고 소수 특권층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현 정부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수백만 근로자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일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겠습니까만, 지난 9월 9일 청계천 연변의 평화시장 일대에서 나이 어린 근로자들에게 자행한 경찰의 폭력적인 만행은 정부가 국민에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양심조차 공공연히 저버린 반국민적 처사이기에 이를 국민들에게 고발하는 바입니다. 9월 9일 1시경 수백 명의 청계천 근로자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정부의 온갖 탄압에 항거하여 빼앗긴 자신들의 어머니(1970년 근로자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 해 분신자살한 고 전태일씨의 어머니)의 조속한 석방과 경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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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생 1,000여명, 「6월 민족선언문」 낭독 후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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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79.6.25
분류 : 민주화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이제 전 민족의 목숨마저도 자기들 손안에 넣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류역사의 어느 부분을 찾아보아도 외세에 의존하고, 관료독점재벌을 비호하며 국내 민중을 억압하던 체제가 진정한 안정, 총화,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기록은 없다. 불법적 정권을 합리화하기 위해 시작된 졸속한 경제개발은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 피폐를 조장, 여기서 배출된 과잉인구를 바탕으로 저임금의 기틀을 마련했고,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으로 일관 생산자인 민중을 소외시키고 해외자본과 권력과 결탁한 일부 독점재벌을 부양했을 뿐이다. 70년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고전태일 열사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78년 인분을 뒤집어쓴 동일방직 여공들의 울먹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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