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33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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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29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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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월 통일운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민족회의 운영위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수신:자주평화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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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33726
날짜 : 1994.07.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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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민족대회 공동기획단 구성 제안의 건[수신: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회, 발신:한국민주청년단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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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33959
날짜 : 1994.04.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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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제4기 대의원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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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38150
날짜 : 1995.03.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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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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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형상화 한 허수아비를 태우며 쌀 개방 반대 시위하는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소속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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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38044
날짜 : 1993.12.13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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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형상화 한 허수아비 화형식을 앞두고 쌀 개방 반대 구호를 외치는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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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38045
날짜 : 1993.12.13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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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개방 반대 구호를 외치는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소속 회원들과 대치하는 전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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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38046
날짜 : 1993.12.13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전경들의 방패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서울민주청년단체협의회 의장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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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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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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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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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어김없이 한림이 있었다. 얼마 뒤 민청학련 관계자 가족들이 정식으로 구속자가족협의회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인권위원장이던 공덕귀가 초대 회장을, 연세대 구속학생 김학민의 아버지 김윤식이 부회장직을 맡았다. 한림은 총무였다. 민주화될 때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수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었고, 구속자 가족들은 자식들을 뒷바라지하고 그 뜻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구속자가족협의회를 새로 만들거나 유지했다. 거기서도 한림은 늘 총무였다. 한림은 평생 총무 이상을 해본 적이 없다. 1963년 한일회담반대투쟁 때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한림은 언제나 뒷줄에 서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제법 했다는 사람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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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퍼포그 연기 자욱했던 오월 속으로_ 5.3인천민주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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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각 단체별로 따로따로 열리고 있었다. 민통련 같은 재야 단체는 그 단체 회원들이, 그리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자기네 집행부의 지도 아래 열리고 있었다. 자옥도 명자 언니와 주희를 따라 인천지역 노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우렁찬 구호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한민주당은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러나 축제 같았던 분위기는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 1시에 접어들자,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장한 전경과 페퍼포그 장갑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경들이 구령에 따라 발을 구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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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최후의 수배자 윤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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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견인했고 반전반핵 세계평화운동과 제3세계 연대운동을 일구어 나갔다. 조국의 민주화에 몸을 바친 합수(合水) 윤한봉은 1948년 2월 1일 전남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늦은 나이에 전남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그해 12월 30일 교련반대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이때부터 그에게 끝없는 고난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유신체제가 선포되자 “이제 공부는 끝이다. 나는 앞으로 목숨 걸고 저놈들과 싸우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전남대 학생 동아리인 민족사연구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후배 정상용 등과 더불어 사회과학 공부와 학생운동에 매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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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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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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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극장문화단체협의회, 이승만·이기붕 지지 담화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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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3.12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13일 전국 극장문화단체협의회는『동아일보』·『조선일보』·『서울신문』등에 이승만과 이기붕을 지지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조국을 위해 예술인은 이렇게 외친다’는 제목을 단 담화는 민주당조재천 의원이 예술인들이 정략에 이용되는 것을 비판한 것에 반박하고 민주당 신파를 비난했다. 또한 연일 계속되는 학생 시위는 민주당의 사주라고 단정하고 학생들의 정치도구화를 강력 비난하였다.전국 극장문화단체협의회가 낸 광고〈조국을 위해 예술인은 이렇게 외친다〉우리의 6개 예술단체가 이번 3·15정·부통령 선거에 있어서의 이승만 박사, 이기붕 선생 지지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자발적·총의적 의사라는 것을 이미 명백히 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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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혁신계, 반보수민족진영 경남공동투쟁위원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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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10.14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혁신계활동
요약설명 : 14일, 부산지역 혁신계 인사들은 ‘혁명적 민주 범민족전선’을 강화하자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반(反)보수민족진영 경남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민족자주통일경남협의회·사회대중당 경남도당·민족건양회·한국사회당 경남도당·혁신동지총연맹 경남도연맹·한국독립당 경남도당·3·4월 정기학도단·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도연맹 등 부산 시내의 혁신정당·사회단체가 총망라된 조직이었다. 반보수민족진영 경남공투위는 오전 11시 부산시내 부민국민학교 강당에서 개최되는 경남노인회 대회를 앞두고 뿌려진 전단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냈다. 전단지에는 노인회 대회가 끝날 무렵인 오후 2시경 부민국민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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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대회 거행, 통일방안 등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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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1.2.25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성민학회·통일청년회 등이 있었다. 4.19 이후 성민학회와 통일청년회의 중심인물들이 결성한 통민청은 민민청과 함께 민자통을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다(김민희, 『쓰여 지지 않은 역사』, 대동, 1993, 185-186쪽). 등의 정당 및 사회단체민자통 중앙협의회는 조국통일을 목적으로 범민족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협의회에 참여한 정당 및 사회단체 등은 사회당·혁신당 일부·사회대중당·동학당 일부·광복동지회·구국동지회·민족건양회·민주민족청년동맹·통일민주청년동맹·천도교 일부·유도회 일부·4월학생 혁신연맹·피학살자유족회·출판노조 일부·교수협회 일부·사회문제연구회 일부·기타 등이다(『민족일보』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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