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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사업개요
-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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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2 : 1980년대 지역‧여성 민중미술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구술채록
○ 주관기관과 사전 협의 후, 최종 승인을 받은 1차 구술대상자 6인을 선정 후 진행
○ 시기적으로는‘1980년대’에 한정(80년대 활동에 특징적 영향을 미친 70년대 후반의 전사와 90년대 초반의 활동 포함), 지역과 성비를 고려하여 선정
○ 광주‘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약칭, ‘광자협’)의 홍성담, 인천 미술패 ‘갯꽃’의 정정엽, 제주‘ᄇᆞᄅᆞᆷ코지’(이하, ‘보롬코지’)의 박경훈, ‘여성미술연구회’(약칭, ‘여미연’)의 김종례, ‘가는패’의 정선희 등을 비롯한 지역의 문화예술운동 소그룹 구성원들 중 6인(남성 3인, 여성 3인)을 중심으로 구술채록을 수행함
○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관련 구술채록에 포함된 주요 안건의 범위는 다음과 같음
-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분위기와 활동 참여 배경과 과정
- 각 문화예술운동 단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주요 활동
·‘광자협’, ‘시매연(시각매체연구소)’, ‘일과놀이’, ‘민미협’, ‘민미련’, ‘서울민미련’, ‘임술년’, ‘보롬코지’, ‘가는패’, ‘둥지’, ‘갯꽃’, ‘일손나눔’, ‘여미연’ 등 문화예술운동 단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주요 활동
- 문화예술운동가 개인으로서의 주요 활동
- 민주화운동 관련 주요 예술작품 및 자료, 관련 전시‧프로젝트 구술
·오월 연작 판화 <새벽>(홍성담, 1980-1989), 대하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민미련’, 1988), 4·3 목판화 연작(박경훈), 걸개그림 <노동자> (‘가는패’, 1988), <맥스테크 민주노조>(‘둥지’) 등
·《한국미술, 20대의 힘》(아랍미술관, 1985), 《반고문전》(그림마당민, 1985), 《여성과 현실전》(여성미술연구회, 1988~1994), 《노동의 햇볕》(1990) 등
- 1980년대 지역 문화예술운동에 끼친 영향 관계
-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에 여성 활동가(예술가)들이 끼친 영향 관계
- 1980년대 타 미술운동 소그룹들과의 접점 및 영향 관계
- 1980년대 타 장르 문화운동과의 접점 및 영향 관계
- 민주화운동 각 부문운동과의 접점 및 영향 관계
- 민주화운동의 핵심 사건들과의 접점 및 영향 관계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 민주화운동의 핵심 인사‧집단들과의 접점 및 영향 관계
·김남주, 문영태, 안병무, 임수경, 황석영 등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경훈
- 면담자
- 김종길
- 구술일자
- 2023.7.14.
- 구술장소
- 복합문화공간 포지션 민 제주
- 구술시간
- 3시간 54분 49초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문화예술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박경훈은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 송당 지역에서 유년시절 성장함. 제주 오현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던 강광의 권유로, 미술반 활동을 하며, 문행섭, 홍성석 등과 교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로 진학, 학생회 활동이나 학내 조직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회장을 맡으며 학내 여러 문제들에 대응한 경험이 있음. 대학교 2학년 시절 접한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계기로, 4·3 문제를 구체화하며 미술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일을 고민. 1980년대 초반, 5·18 이후 1여 년간 제주에 머물던 황석영 등의 영향으로 문화운동협의체 ‘수눌음’이 만들어짐. 1980년대 초중반 서울(‘두렁’ 등)과 광주(홍성담 등) 등지의 선후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울의 민중미술 운동의 분위기를 감지(1985년 ‘힘전 사건’ 등)하며 제주 내 문화예술운동의 기틀을 다짐. 1987년 그림패 ‘보롬코지’ 출범을 위한 준비 기간 중, 1987년 9월 <민족해방과 민족통일 큰 그림 잔치> 순회전(동인미술관; 한국투자신탁 전시실)에서 광주의 이상호, 전정호 작가의 공동작 걸개그림이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고, 행사를 개최한 그림패 ‘보롬코지’ 준비위원회 대표 문행섭이 연행됨. 이 사건으로 인해 ‘보롬코지’ 창립이 잠시 주춤하였으나, 1988년 예술가들과 다시 뜻을 모아, ‘제주’ 지역의 자생적 미술운동을 대표하는 그림패 ‘보롬코지’를 창립. 김수범, 문행섭, 부양식, 양은주와 함께 ‘보롬코지’ 활동을 시작함. 1987년 이후에 들어서야 제주 지역에서 비로소 4·3 에 대한 증언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1989년 4월 ‘보롬코지’의 주도로 첫 《4·3 미술제》가 기획. 같은 해 8월 《4·3 넋살림전》(그림마당 민)을 기획하여, 서울에도 ‘4·3’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함. 불온한 그림, 빨갱이 그림으로 낙인찍히는 과정 속에서도, 당시만 해도 금기의 언어였던 ‘4·3’을 미학적 테제로 최초 노출한 전시를 보여주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음. ‘보롬코지’의 다수 회원이 전국 조직 ‘민미협’ 활동에도 결합하면서, 지역의 민주화운동과 서울의 활동들이 결합,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줌. 1993년 ‘보롬코지’의 발전적 해체 이후, ‘탐미협’ 창립을 주도한 박경훈은 4·3 목판화 연작 등을 꾸준히 제작하며, 제주에서의 미술운동을 통해 ‘4·3’과 같은 기억투쟁을 전면화하고, 제주의 현실을 리얼리즘 미학으로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음.
- 구술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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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제주 출생
- 제주 오현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던 강광의 권유로 미술반 활동, 문행섭, 홍성석 등과 교류
-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 입학 후 졸업(1985)
- 1988년 ‘제주’ 지역의 자생적 미술운동 그림패 ‘보롬코지’ (제주도 내 최초의 민중미술 동인) 창립. 김수범, 문행섭, 부양식, 양은주, 김동수 등과 함께 ‘보롬코지’ 활동을 시작.
- 1987년 이후, 4·3 에 대한 증언이 나오기 시작, 1989년 4월 ‘보롬코지’의 주도로 첫 《4·3 미술제》가 기획. 같은 해 8월 《4·3 넋살림전》(그림마당 민)을 기획하여, 서울에도 ‘4·3’에 대해 알리는 역할.
- 금기의 언어였던 ‘4·3’을 미학적 테제로 최초 노출한 전시
- ‘보롬코지’의 다수 회원이 전국 조직 ‘민미협’ 활동에 결합
- 1993년 ‘보롬코지’의 발전적 해체 이후, ‘탐미협’ 창립을 주도
- 4·3 목판화 연작 제작, 해제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89년 제주 그림패 '보롬코지'의 주도로 첫 <사월미술제>(이후 <4.3미술제>) 기획, 금기였던 4.3을 본격화한 과정 구술
- 녹취문
- 녹취문 열람 신청은 관리자에게 문의하세요. (☎ 전화번호: 02-6440-8961, 이메일: hyunchaek@kdemo.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