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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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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박경훈
면담자
김종길
구술일자
2023.7.14.
구술장소
복합문화공간 포지션 민 제주
구술시간
3시간 54분 49초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문화예술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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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박경훈은 1962년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 송당 지역에서 유년시절 성장함. 제주 오현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던 강광의 권유로, 미술반 활동을 하며, 문행섭, 홍성석 등과 교류.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로 진학, 학생회 활동이나 학내 조직이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회장을 맡으며 학내 여러 문제들에 대응한 경험이 있음. 대학교 2학년 시절 접한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계기로, 4·3 문제를 구체화하며 미술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일을 고민. 1980년대 초반, 5·18 이후 1여 년간 제주에 머물던 황석영 등의 영향으로 문화운동협의체 ‘수눌음’이 만들어짐. 1980년대 초중반 서울(‘두렁’ 등)과 광주(홍성담 등) 등지의 선후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서울의 민중미술 운동의 분위기를 감지(1985년 ‘힘전 사건’ 등)하며 제주 내 문화예술운동의 기틀을 다짐. 1987년 그림패 ‘보롬코지’ 출범을 위한 준비 기간 중, 1987년 9월  <민족해방과 민족통일 큰 그림 잔치> 순회전(동인미술관; 한국투자신탁 전시실)에서 광주의 이상호, 전정호 작가의 공동작 걸개그림이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고, 행사를 개최한 그림패 ‘보롬코지’ 준비위원회 대표 문행섭이 연행됨. 이 사건으로 인해 ‘보롬코지’ 창립이 잠시 주춤하였으나, 1988년 예술가들과 다시 뜻을 모아, ‘제주’ 지역의 자생적 미술운동을 대표하는 그림패 ‘보롬코지’를 창립. 김수범, 문행섭, 부양식, 양은주와 함께 ‘보롬코지’ 활동을 시작함. 1987년 이후에 들어서야 제주 지역에서 비로소 4·3 에 대한 증언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1989년 4월 ‘보롬코지’의 주도로 첫 《4·3 미술제》가 기획. 같은 해 8월 《4·3 넋살림전》(그림마당 민)을 기획하여, 서울에도 ‘4·3’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함. 불온한 그림, 빨갱이 그림으로 낙인찍히는 과정 속에서도, 당시만 해도 금기의 언어였던 ‘4·3’을 미학적 테제로 최초 노출한 전시를 보여주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음. ‘보롬코지’의 다수 회원이 전국 조직 ‘민미협’ 활동에도 결합하면서, 지역의 민주화운동과 서울의 활동들이 결합,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줌. 1993년 ‘보롬코지’의 발전적 해체 이후, ‘탐미협’ 창립을 주도한 박경훈은 4·3 목판화 연작 등을 꾸준히 제작하며, 제주에서의 미술운동을 통해 ‘4·3’과 같은 기억투쟁을 전면화하고, 제주의 현실을 리얼리즘 미학으로 담아내는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음.

구술내용 요약

- 1962년 제주 출생 

- 제주 오현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던 강광의 권유로 미술반 활동, 문행섭, 홍성석 등과 교류

-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 입학 후 졸업(1985)

- 1988년 ‘제주’ 지역의 자생적 미술운동 그림패 ‘보롬코지’ (제주도 내 최초의 민중미술 동인) 창립. 김수범, 문행섭, 부양식, 양은주, 김동수 등과 함께 ‘보롬코지’ 활동을 시작. 

- 1987년 이후, 4·3 에 대한 증언이 나오기 시작, 1989년 4월 ‘보롬코지’의 주도로 첫 《4·3 미술제》가 기획. 같은 해 8월 《4·3 넋살림전》(그림마당 민)을 기획하여, 서울에도 ‘4·3’에 대해 알리는 역할. 

- 금기의 언어였던 ‘4·3’을 미학적 테제로 최초 노출한 전시

- ‘보롬코지’의 다수 회원이 전국 조직 ‘민미협’ 활동에 결합

- 1993년 ‘보롬코지’의 발전적 해체 이후, ‘탐미협’ 창립을 주도

- 4·3 목판화 연작 제작, 해제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89년 제주 그림패 '보롬코지'의 주도로 첫 <사월미술제>(이후 <4.3미술제>)기획, 금기였던 4.3을 본격화한 과정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