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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구술자소개

구술자
박홍규
면담자
김종길, 양정애
구술일자
2022.8.27
장소
박홍규 자택
구술시간
3시간 12분
구술아카이브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문화예술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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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내용 요약

박홍규(예명 박소래)는 1959년 전남 부안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사로 재직 중이던 정양 시인의 추천으로 함석헌, 윤흥길 등 민족 계열 문학을 접하였다. 미술동인 두렁의 회원인 이은홍과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입학하고, 1981-1983년 시기 군대를 다녀온 후 1985년 졸업하였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종로 YMCA 앞에서 동일방직똥물사건에 대한 유인물과 학내에 뿌려진 우리 시대 미술(가)의 역할을 묻는 유인물에 영향을 받아 사회과학 학습을 시작했다. 학내 민화반 활동을 하며 미술동인 두렁의 이봉민, 이춘호 등과 어울렸고, 공식적으로는 1985년 두렁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농촌 하방을 결심한 이후, 1983년 가을 무렵부터 기독교농민회를 직접 찾아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봉민 등 민화반과 함께 『농민가락 차차차』(1984년 10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발행)에 삽화를 제작했다. 졸업 후, 출판사 지양사에서 1여년 정도 일하며 농촌 하방을 준비, 1985년 겨울 충남 부여로 내려가 농민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농촌의 6월항쟁을 겪으며 농민회를 조직, 1989년 부여군농민회를 결성했다. 1989년 농민회 창립을 준비하며, 창립 포스터 그림을 맡게 되면서 농촌 하방 시 접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989년 그림마당 민에서 이봉민과 함께《전국농민회총연맹 창립 기금마련전》을 기획하여 창립기금 마련을 도왔다. 부여군농민회 초대 사무국장,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1기 문화국장(1990)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1989년 2·13여의도농민대회(2·13여의도농민항쟁, 2·13투쟁)으로 인해 수배되었다. 1991년 건강 악화로 고향 전주로 와 치료를 받으며 2여년 회복기를 거친 후, 다시 농촌 현장-완주군 고산-으로 들어갔다. 완주에서 완주군농민회 정책실장, 전국도연맹 농민회 조국통일위원장 등을 맡으며 농민운동을 계속해 왔다. 1999년, 2·13여의도농민대회 등을 그린 작품 등을 선보이며 첫 개인전《들에서 여의도까지》(우진문화공간, 전주)을 치렀다. 이후 농민판화들을 비롯하여 농민들의 삶과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현재는 『한국농정신문』에서 <농민만평> 연재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 1959년 전남 부안 출생

- 홍익대학교 조소과 입학 및 졸업(1985) 

- 『농민가락 차차차』(1984년 10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발행)에 이봉민 등 홍대 민화반과 함께 삽화 제작 

- 미술동인 두렁 회원

- 농민운동 투신(1986-)

-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1기 문화국장(1990) 활동 

- 1989년 2·13여의도농민대회(2·13투쟁)으로 인해 수배

- 『한국농정신문』에 <농민만평> 연재 등


구술상세목록 및 녹취문

  • 2022_1980년대 문화예술운동1_구술자료상세목록_박홍규.pdf 100488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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