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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사업개요
-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1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5차년도(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문화예술운동’ 구술 채록에서는 80년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 70년대 후반의 전사와 90년대 초반의 활동까지 범위를 넓혀 기록을 수행했다. 우선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활동한 민중미술 그룹 ‘미술동인 두렁’의 핵심 구성원인 김봉준 외 6인을 선정하여 채록했다. 아울러 ‘현실과 발언’ 발기인이자 ‘민족미술협의회’ 등 주요 단체를 이끌어 온 김정헌을 추가 선정함으로써, 80년대 문화예술운동의 전반적인 활동 양상을 조망하고 개괄적인 증언을 보완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홍규
- 면담자
- 김종길, 양정애
- 구술일자
- 2022.8.27
- 구술장소
- 박홍규 자택
- 구술시간
- 3시간 12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문화예술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9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
1978 전주 신흥고등학교 졸업
1978-1985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85- 미술동인 두렁
1986 농민운동 투신
1990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1기 문화국장
1996-2000 전북문화저널 편집위원 및 만평 연재
1999 첫 번째 개인전 《들에서 여의도까지》(우진문화공간, 전주)
2000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전 ‘만화부문’ (전북대삼성문화회관, 전주)
2008- 『한국농정신문』 만평 연재
- 구술내용 요약
-
박홍규(예명 박소래)는 1959년 전남 부안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사로 재직 중이던 정양 시인의 추천으로 함석헌, 윤흥길 등 민족 계열 문학을 접하였다. 미술동인 두렁의 회원인 이은홍과는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입학하고, 1981-1983년 시기 군대를 다녀온 후 1985년 졸업하였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종로 YMCA 앞에서 동일방직똥물사건에 대한 유인물과 학내에 뿌려진 우리 시대 미술(가)의 역할을 묻는 유인물에 영향을 받아 사회과학 학습을 시작했다. 학내 민화반 활동을 하며 미술동인 두렁의 이봉민, 이춘호 등과 어울렸고, 공식적으로는 1985년 두렁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농촌 하방을 결심한 이후, 1983년 가을 무렵부터 기독교농민회를 직접 찾아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봉민 등 민화반과 함께 『농민가락 차차차』(1984년 10월, 한국기독교농민회총연합회 발행)에 삽화를 제작했다. 졸업 후, 출판사 지양사에서 1여년 정도 일하며 농촌 하방을 준비, 1985년 겨울 충남 부여로 내려가 농민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농촌의 6월항쟁을 겪으며 농민회를 조직, 1989년 부여군농민회를 결성했다. 1989년 농민회 창립을 준비하며, 창립 포스터 그림을 맡게 되면서 농촌 하방 시 접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989년 그림마당 민에서 이봉민과 함께《전국농민회총연맹 창립 기금마련전》을 기획하여 창립기금 마련을 도왔다. 부여군농민회 초대 사무국장,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1기 문화국장(1990)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1989년 2·13여의도농민대회(2·13여의도농민항쟁, 2·13투쟁)으로 인해 수배되었다. 1991년 건강 악화로 고향 전주로 와 치료를 받으며 2여년 회복기를 거친 후, 다시 농촌 현장-완주군 고산-으로 들어갔다. 완주에서 완주군농민회 정책실장, 전국도연맹 농민회 조국통일위원장 등을 맡으며 농민운동을 계속해 왔다. 1999년, 2·13여의도농민대회 등을 그린 작품 등을 선보이며 첫 개인전《들에서 여의도까지》(우진문화공간, 전주)을 치렀다. 이후 농민판화들을 비롯하여 농민들의 삶과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현재는 『한국농정신문』에서 <농민만평> 연재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농민운동으로의 투신 계기 구술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