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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이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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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이재오
면담자
차성환
구술일자
2019. 7.27(1차). 10.5(2차)
구술장소
서울 구술자 자택
구술시간
272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51 - 1963 석보초등학교, 영양중학교, 영양고등학교 졸업 후 영양군청 근무

1964 - 1965 중앙대 농촌사회개발학과 입학, 한일회담반대투쟁 주도

1966 - 1971 군 복무 후 국민대, 고대 수학, 민수협, 민수청 활동

1972 - 1983 유신체제 하 수 차례 투옥, 민투 활동으로 재구속 후 출소

1983 - 1996 민통련, 6월항쟁, 전민련, 민중당, 시민단체 등 활동함 

1996 - 현재 신한국당 입당, 국회의원 당선, 한나라당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역임, 국민권익위원장, 특임장관 등 역임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일제 말, 부친이 광부로 있던 강릉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후 부친의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이거하여 가난하게 살았다. 구술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웅변을 잘 했고 중학교 때부터 농촌4H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년간 군청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중앙대 농촌사회개발학과에 입학했다. 1964년과 65년 연이어 한일회담반대투쟁을 하다가 수배되어 피신 중 검거되어 구류를 살고 군대에 강제징집되었다. 제대하여 복학하려니 복학이 거부되었다. 3선개헌을 추진하던 박 정권이 한일회담반대시위를 주동한 학생들의 복학을 막은 것이었다. 이때부터 구술자는 독재와의 본격적 투쟁을 시작한다. 학원강사 등을 하면서 민수협, 민수청 등을 조직하여 민주화투쟁을 하게 되고 수차례 연행, 투옥되었다. 유신체제가 들어선 후에도 서울대시위배후조종혐의으로 구속되었다. 1976년 10월 민투를 조직(혹은 가입)하여 책임자가 되었고 활동 중 다른 사건으로 두 번 구속되었다. 1979년 남민전사건으로 5년형을 받아 복역 중 1983년 8월 특사로 출소하였다. 이후 민통련, 국본, 전민련 활동을 했다. 1990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출소 후 민중당에 참여하여 선거에 출마했으나 참패를 겪었다. 이후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하여 4월 총선에서 은평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과 특임장관을 역임했다. 구술자는 현재까지 자유한국당의 고문으로서 4대강 보 해체 반대투쟁 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남민전사건으로 조사 받을 때 남영동 대공 분실 조사관들이 살인적인 고문을 자행한 사실을 진술한 내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