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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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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이선근
면담자
이가연
구술일자
2019. 8. 22
구술장소
서울 구술자 사무실
구술시간
214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81 ~ 1981.6 전국민주학생연맹 중앙위원

1994 ~ 2000 경제민주모임 대표

1998 노동자기업인수지원센터 자문위원 

1999 재벌부채 탕감액 국민환수소송단 집행위원장 

2003 전두환은닉재산환수 대책반 반장

2003 기업부실경영감시단 단장 

1998 ~ 2008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 본부장

2008 ~ 2009 진보신당 민생경제본부 본부장 

2008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대표

2012 경제민주화실현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

2012 ~ 2013 제18대 대통령선거 문재인 후보 미래캠프 경제민주화위원

2019년 현재 공정거래회복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

구술내용 요약

경남 창원 출신인 이선근은 경남고 재학 중에 도산연구반(아카데미) 활동을 하면서 정치 의식을 성장시켰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 공안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적이 있으며, 그때 이태복의 광민사에서 편집부장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 학교로 돌아와 시위를 조직하지만 좌절하였고, 결정적으로 5월 17일 서울역회군으로 당시 학생운동의 한계를 절감하였다. 이후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을 도모하여 전국민주학생연맹, 이른바 전민학련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학림사건은 신군부 세력이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학생 및 노동자들을 반국가단체 조직범으로 몰아 처벌한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 사건이다. 학림사건 관계자들은 전민노련(전국민주노동자연맹), 전민학련(전국민주학생연맹)을 각각 조직한 후 연대한다는, 이른바 노학 연대를 목적으로 하였다. 1981년 2월 27일에 결성된 전민학련은 1981년 봄부터 대학가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무림사건으로 학생운동을 완전히 소탕했다고 생각했던 전두환 정권은 연이은 학원가의 시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민학련 주도로 서울대에서 3월 19일 첫 시위가 발생한 이래 5월 중순까지 모두 8차례의 시위가 일어났다. 6월부터 경찰은 전민학련 관련자 400여 명과 전민노련 관련자 300여 명을 연행하였고, 19일에서 길게는 78일까지의 불법 구금과 혹독한 고문 끝에 25명을 구속하였다. 1984년 3.1절 특사로 석방된 이후 관념화된 학생운동의 실천 방안에 대해 고민을 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 1990년대 말부터 정당활동을 하면서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지금은 경제민주화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의 성립 과정과 전국민주노동연맹(전민노련)과의 이른바 노학연대의 필요성에 관한 내용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