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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환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2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전의 주요 사건'은 남민전, 학림, 무림, 부림 사건을 중심으로 채록을 수행했다. 사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에 구술 이력이 없는 인사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 기록의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이번 채록은 동일 사건에 참여한 여러 관계자의 기억을 교차 확인함으로써 사건의 실체에 다각도로 접근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관련자들이 특정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생애 전반에 걸쳐 전개한 사회운동 이력을 포괄하여 기록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삶의 궤적과 한국 사회운동사가 맺고 있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밝히고, 사건 전후의 맥락을 복원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현무환
- 면담자
- 배병욱
- 구술일자
- 2019. 9. 6
- 구술장소
- 서울시 종로구 구술자 사무실
- 구술시간
- 235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7-1981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입학 / 학사 졸업
1995-2002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1-1982 그 이후 ‘무림사건’으로 구속 / 계엄법 위반 징역2년 선고
1982 8.15 형집행정지 출소(1년6개월 수형) / 1988 사면 복권 / 재심으로 무죄
2005-2007 7080민주화학생운동연대 부의장
2007- 사단법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
2017- 주권자전국회의 공동대표
- 구술내용 요약
-
현무환은 1958년 대구시 중구에서 태어났다. 가난 등 베이비붐 세대로서의 평범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화운동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진보적 영향이나,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의 영향,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예민한 심성 등을 구술자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평범했다고 하고, 대학 진학 후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에 매진하여 이미 대학입학 전 높은 수준의 사회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이 신기했다고 말한다. 구술자의 사회의식은 서울대학에 입학하여 형성되었으며, 그 계기는 학회와 MT, 교회와 선배들의 재판 방청 등이었다.
유신체제에 저항하기 위해 서울대생들은 76학번부터 각 단대 써클의 2학년 학생 중 핵심적 인물들을 모아 비밀학생운동 조직 ‘언더’를 운영하였고, 동기들 중 특히 적극적인 소수의 학생은 ‘언더 지도부’가 되어 다음 기수의 교육까지 맡았다. 현무환은 77학번 ‘언더’(77언더)의 멤버가 되었고, 조직 내 핵심적 사안을 논의하면서 ‘78언더’를 교육하는 ‘77언더 지도부’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을 지도한 76학번의 대표적 인물은 이원주였다.
현무환 외 ‘77언더 지도부’에는 김명인과 최영선이 있었다. 이들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건설을 주도하였고, 5월 15일 서울역에 집결한 10만의 학생 시위대를 통솔하여 신군부의 집권을 저지해야 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대규모 인파의 시위를 접하자 이를 통제할만한 역량과 여건을 갖추지 못했던 언더 지도부는 총학생회장들의 해산(서울역 회군)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광주학살로 이어졌다.
80년 2학기가 개강하자 언더 지도부는 소모적 시위를 자제하고 81년 신군부와의 전면전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침묵에 대해 즉각행동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높았는데, 그 회답 차원에서 벌인 시위가 12월 11일 시위였다. 경찰은 이날 살포된 성명서 ‘반파쇼학위투쟁선언’의 작성자 김명인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재구성하였으나, 시위를 이끈 77언더의 핵심은 76학번 이원조를 포함한 4인방 중 현무환이었다. 따라서 김명인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재판기록은 완전히 사실과 다른 것이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무림사건이라 불리는 80년 12월 11일 시위는 현무환을 중심으로 김명인, 최영선,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이원주에 의해 조직되고 결행되었다.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