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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숙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2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전의 주요 사건'은 남민전, 학림, 무림, 부림 사건을 중심으로 채록을 수행했다. 사료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에 구술 이력이 없는 인사들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 기록의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이번 채록은 동일 사건에 참여한 여러 관계자의 기억을 교차 확인함으로써 사건의 실체에 다각도로 접근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관련자들이 특정 사건에만 국한되지 않고 생애 전반에 걸쳐 전개한 사회운동 이력을 포괄하여 기록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삶의 궤적과 한국 사회운동사가 맺고 있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밝히고, 사건 전후의 맥락을 복원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최평숙
- 면담자
- 차성환
- 구술일자
- 2019. 8. 15
- 구술장소
- 부산시 구술자 자택
- 구술시간
- 157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전 민주화운동 주요사건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56 - 1957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졸업 및 중퇴
1958 - 1961 군 입대 및 제대
1964 - 1971 간척사업 및 농업 종사
1971 - 1972 장안기원 경영
1973 - 1979 철학원 운영
1977 - 1979 남민전 가입 및 활동
1979 - 1983 남민전사건으로 구속, 수감
1984 - 현재 부산에서 철학원 운영
- 구술내용 요약
-
구술자는 1938년 전남 고흥에서 비교적 유족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기운이 세어 씨름대회에서 어른들을 이겼다고 한다. 고흥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고향 선배인 신향식과 친하게 지냈고 이후 평생에 걸쳐 막역한 관계를 유지한다. 구술자는 광주의 조선대 부속고등학교로 진학하였으나 완력이 세어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잦아지면서 학교도 자퇴했다. 이후 군대에 입대하여 병사들의 식량을 부정하게 유출하는 상관들에 맞서기도 하고 부하들을 괴롭히는 타 부대원과 싸우기도 했다. 제대 후에는 지인의 주선으로 조선대학교 경제학과에 편입했으나 중도에 그만 두었다. 이후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소일하다가 1971년경 서울에서 장안기원을 경영하고 기원을 폐업한 후 박정규 철학연구소에서 역술을 공부하여 역술가로서 1973년 최봉조 철학원을 경영하였다. 1977년 3월 고향 선배 신향식의 추천으로 남민전에 가입하였다. 반정부 삐라 살포에 참여하였고 1978년에는 무력부에 소속되었으나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다. 1979년 10월 남민전사건이 터지자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폭행,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받아 갈비뼈가 상하기도 했다. 이후 징역형을 받아 광주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1983년 8월에 특사로 출소하였다. 이후 서울 동대문 근처에서 역술원을 차렸는데 시국사범 출신자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사무실을 이용하는 통에 경찰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고 형사들도 이사를 종용하여 결국 거주지를 부산으로 옮겨 현재까지 부산에서 역술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남민전사건으로 조사 받을 때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관들이 살인적인 고문을 자행한 사실을 진술한 내용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