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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상
사업개요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3차년도 과제인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구술 채록은 그동안 관념적 이해되고 알려졌던 학생운동가들의 고민과 활동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구술 대상은 1980년대 유화국면 이후 ‘MT-MC 논쟁’ 시기에 활동한 학생운동 지도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 특히 공개 조직 외에 언더 및 배후에서 주요 방향 설정과 의사결정에 참여한 핵심 인물들을 포괄했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5개 대학의 77~82학번 인사들을 대상으로 채록을 수행하여, 당시 학생운동의 내부 논리와 전개 과정을 기록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황인상
- 면담자
- 윤호우
- 구술일자
- 2020.10.5.
- 구술장소
- 현대사기록연구원
- 구술시간
- 160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78 광주석산고등학교
1984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사 졸업
1996~ 제38회 사법시험 합격
1997-1999 사법연수원 제28기 수료
1999- 변호사 개업(서울)
백두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2009.02- 법무법인백두 변호사
2009.09- 전)변호사 황인상법률사무소 변호사
현) 법무법인로우 변호사
- 구술내용 요약
-
1980년 서울의 봄에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입학했다. 대자보나 유인물을 통해, 고등학교때 배웠던 것과 다른 사회적 현실을 깨닫게 됐다. 서울의 봄 시위에도 참석했다. 학생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5.18민주화운동이었다. 고향인 광주에 내려갔다가 민주화운동 초기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서울에 온 후에도 광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회대 평론’이라는 사회대 학보사 편집실에 들어가 사회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야학 활동을 하기도 했다.
2학년 때에는 대학문화연구회(대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대문은 서울대 학생운동의 변방에 있었으나, 80학번 이후 서울대 학생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노학연대의 꿈을 키웠다.
1984년 서울대 학자추가 구성되자, 학자추에 노투라는 조직을 배치하도록 했다. 81학번들로 노투를 구성해 노학연대 투쟁을 펼쳤다. 대표적인 것이 청계피복노조 시위였다. 이 시위가 크게 번짐에 따라 학생 운동 내부에서 노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서울대 학생운동 지도부에서도 노투 뒤에는 구술자가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1984년 후반기에는 민추위가 조직됐는데, 구술자는 민추위 내에서 노학연대 쪽을 맡았다. 깃발 문건으로 수사당국에서 추적해 들어오던 중 한때 체포됐다가 탈출하기도 했다. 탈출 후 ‘깃발 사건 통신’이라는 문건을 작성해 나중에 이 문건이 수사당국의 추적을 받기도 했다.
MT-MC 논쟁과 깃발-반깃발 논쟁에서 MT와 깃발 쪽의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구술자는 학생운동을 지휘한 MC 쪽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서울대 MT-MC 논쟁의 주도 인물인 80학번들이 몇 명 모여 앞으로 잘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눴지만, 그 이후 큰 진전이 없었다.
민추위 사건으로 구속되고 석방된 후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 생활을 하게 됐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1984년 유화국면에서 서울대 학자추(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내 노투가 '청계피복노조 시위'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서울대 학생운동 지도부는 노학연대의 중심에 황인상 변호사가 있었다는 것을 대강 알고 있었다.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