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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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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개요

구술채록 정보

구술자
최욱
면담자
윤호우
구술일자
2020.9.21.
구술장소
현대사기록연구원
구술시간
143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유화국면 이후 학생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구술자 이력

1981.성균관대학교 어문계열 입학

1991.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1988 「민중의당」조직위원장

1989-1990 전민련편집실 간사

1992-1995 두손미디어 출판 근무

1995 개혁신당 조직국

1997 통합민주당 청년부국장

구술내용 요약

구술자는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 어문계열(2학년때 독어독문학과 선택)에 81학번으로 입학했다. 우연한 기회에 심산연구회라는 오픈 서클에 들어가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2학년에는 문과대 어문계열, 3학년에는 문과대 전체의 학생운동에 관여하게 되면서 성균관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점점 다가섰다. 성균관대에서는 CT(컨트롤 타워)를 통해 학생운동을 조직하고 시위 계획을 마련하였다. 구술자는 단과대 포스트로서 단과대 CT에 참여하였고, 1984년 5월에는 단대 대표격으로 성균관대 전체 CT에 참여했다. 당시 성대 CT에는 오픈 서클과 언더서클을 담당하는 한 명, 학간 연대를 담당하는 한 명, 단대 담당자가 두 명, 오픈 투쟁 담당이 한 명, 이렇게 해서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CT에서 성대의 학생운동 방침이 정해지고 실행이 되었다.

성균관대에서는 유화국면 시기에 학자추 대신 성민추(성균관대 민주화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당시 학생운동권이 이미 학도호국단 체제를 맡고 있는 상황이어서 학도호국단과 성민추가 1984년 1학기 국면을 이끌어나갔다. 2학기때 다른 대학에서는 총학이 출범했지만 성대에서는 벌써 학생운동권이 중심이 돼 있었기 때문에 굳이 총학을 출범할 필요가 없었다. 민정당사 농성 시위와 미 문화원 점거 투쟁때에는 CT에서 인원을 동원하는데, 이 역할을 맡았다. 성균관대가 다른 대학에 비해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성균관대 학생운동이 빛을 발한 것은 1985년 후반기에 오수진 총학생회 회장이 전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이다. 김민석 서울대 총학생회 회장이 의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된 후 오수진 의장이 역할을 넘겨 받았다. 당시 성균관대 CT에서는 오수진 의장이 체포되지 않도록 사수대를 결성해 그 역할을 맡겼다.

서울대에서의 무림-학림 논쟁, 깃발 –반깃발 논쟁,  MC-MT 논쟁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균관대에서는 학림-깃발-MT로 이어지는 단일 노선을 강조해왔다. 이 전통은 구술자가 학교에서 활동하던 1986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1984년 11월 14일 민정당사 점거 농성 때 성균관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게 됐다. 당시 학간 연대를 통해 각 대학마다 동원 인원이 정해졌고, 성균관대 CT에서 150명의 인원을 동원했다.
녹취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