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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남
사업개요
- 1980년대 가족운동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4차년도 과제인 '1980년대 가족운동' 구술 채록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 결성 주역과 장기 활동가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민가협의 산실이 된 어머니들과 실무를 총괄했던 전직 총무들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조직의 형성 과정과 초기 활동상을 기록했다. 주요 내용은 1985년 12월 12일 민가협 결성 배경과 창립기 활동을 비롯하여, 1980년대 가족운동이 인권운동으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을 포괄한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가족운동이 수행한 독자적인 역할과 역사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이소남
- 면담자
- 이영재
- 구술일자
- 2021.10.18.
- 구술장소
- 서울시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
- 구술시간
- 102분
구술컬렉션 > 가족운동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34 전남 해남 출생
1956 결혼
1970년대 서울 상경
1985.12.12. 아들 박승렬의 구속으로 민가협 창립 회원이 죔
1987 6월항쟁 명동농성 참여
1992 목요집회를 비롯한 각종 집회에서 직접 개사한 노래를 부르며 참여
- 구술내용 요약
-
이소남은 1934년 전남 해남군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출생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오빠와 동생은 공무원이었다. 구술자는 12살 때 해방을 맞았다. 구술자는 어려서 들은 해방가를 지금도 3절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구술과정에서 광복군들이 고국을 생각하면서 부르던 광야의 달밤도 2절까지 불렀다. 구술자는 1956년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장교로 임관할 남편을 만나 1956년 2월 5일 결혼했다. 남편이 1956년 8월 23일 임관하여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어린 3형제를 남겨둔 채 급성 심장마비로 순직했다. 결혼 5년 6개월 만이었다.
구술자는 아들 3형제를 혼자 키우면서 어려운 고비들을 기억하며 이를 시로 적어 남겨두었다. 구술과정에서 직접 지어 발표한 시를 가지고 오셔서 읽을 수 있었다.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하던 셋째 아들 박승렬이 1985년 여름 구속되었다. 구술자는 민가협 창립을 주도한 인재근과 유시춘을 기억하고 있었다. 구술자는 보기 드문 1985년 12월 12일 창립 회원으로 민가협 활동에 참여했다.
구술자는 이난영의 해조곡에 수배 중인 아들에 대한 걱정을 담아 1절을 개사하고, 2절에는 수감 가사를 붙여서 민가협 집회에서 자주 불렀다. 닭장차에 실렸을 때에는 투사의 노래를 불렀다. 구술자는 김선명 선생 환영회가 열린 충북 옥천의 모 초등학교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강강술래를 할 때 선소리를 맡아 하기도 했다. 구술자는 장애를 가진 손녀를 돌보아야 해서 1992년부터 민가협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 못하고 중요한 행사나 집회에만 참여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아들 박승렬의 구속으로 동대문 경찰서를 찾아가 개사곡을 부르며 항의한 사연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