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Embed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URL 퍼가기
하단의 내용을 복사해서 퍼가세요.
이메일 공유
박남식
사업개요
- 1980년대 농민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 4차년도 과제인 '1980년대 농민운동' 구술 채록은 2003년, 2004년, 2010년에 진행된 기존 농민운동 관련 채록 성과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구술 범위는 1980년대 농민운동의 환경, 주요 쟁점, 조직 구조, 교육 및 단체 운영 등을 중심으로 하되, 구술자의 생애적 특성에 따라 1970년대와 1990년대의 활동까지 포괄하여 기록했다. 이번 사업은 상대적으로 기록 정리가 미흡했던 기독교농민운동, 여성농민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에서 전환된 농민운동의 양상을 재조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농민운동이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점유하는 위상과 영향을 다각도로 규명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현재적·미래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1차 사료를 확보하고자 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박남식
- 면담자
- 양라윤, 정호기
- 구술일자
- 2021.7.23.
- 구술장소
- 경기도 안양시 화윤차문화협동조합
- 구술시간
- 250분
구술컬렉션 > 농민운동 > 80년대 농민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1947. 경상남도 창원군 출생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 일본 아세아농업전문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68. - 1973. 창원중학교 교사(6년 재직)
1975. 5. 10. 윤두병(1974. 긴급조치 제1호 처벌, 1987. 구로구청부정선거사건)과 결혼
1977. 4. 25-29. 크리스찬아카데미 농촌사회교육 1차 13기 이수
1978. 10. 8-9. 크리스찬아카데미 농촌사회교육 여성 이수자 후속모임 참가
1978. 12. 1-5 농촌여성 중간집단 1차 교육 참가
1981. 한국가톨릭농촌여성회(한국가톨릭여성농민회) 이사
1984. - 1987.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농촌사업부 간사
1990. 1. <여성농민 위대한 어머니>, 형성사 발간에 참가
1991. - 1993.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
1990.4.-1991.2. 전국농민회총연맹 제1대 사무국 총무국장
1992. - 경기도 안양시 자치부녀회장, 새마을부녀회장, 안양여성회 창립
- 구술내용 요약
-
박남식은 1947년 경남 창원군에서 출생했다. 박 씨들의 집성촌으로 4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곳인데, 1960년대 창원산업단지로 편입되었다. 아버지는 농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평등사상을 실천하며, 신지식 배우기를 좋아했다. 사회적인 관심과 실천적 삶을 살아가는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창원여자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68년 고등학교 졸업하고 마산여자중학교에서 수학 교사로 있었다. 1973년 상경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올라왔다. 1974년 오랜 친구였던 윤두병이 긴급조치1호 위반혐의로 구속되자 돌볼 사람이 없어 옥바라지를 했다. 구속자가족협의회에서 활동했고, 이때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1975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윤두병과 결혼했다.
김진홍 목사가 있는 활빈교회를 찾아가 청계천 빈민선교 체험을 하고, 1976년 농민선교를 위해 남양만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이종옥을 만났으며, 빈민운동, 선교활동, 기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만났다. 김진홍 목사의 소개로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에 참석했다. 크리스찬아카데미 1차 교육(13기), 2차 교육, 사전교육과 집체교육을 받으면서 전문적 역량을 길렀고 농민운동을 결심했다. 남양만에서는 신용협동조합 조직화 사업과 농촌탁아소 어린이집 자모들을 대상으로 의식화 교육 활동을 해나갔다. 신용협동조합 조직화 과정에 대한 이견과 농민선교 활동의 한계를 느껴 2년여 동안의 남양만 생활을 접고 나왔다. 이후 가톨릭이나 기독교의 종파를 넘어, 전국을 돌며 교육 활동과 현장 활동가 양성을 위해 매진했다. 이와 같은 활동은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주변 활동가들과 함께 논의하고 활동하면서 진행한 것이다.
1983년 일본 아시아농업전문학교로 1년 동안 연수를 다녀왔다. 1984년 한명숙이 독일 테레데즈홈 기관에서 지원하는 한국농촌탁아사업 지원 프로젝트를 맡아 달라 요청했고, 사업을 받아 수행할 귀속단체가 필요해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농촌사업부를 신설하여 농촌탁아사업을 진행했다. 농촌탁아사업을 통해 여성농민의 생산성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여성농민 교육, 청년지도자 훈련, 여성농민활동가 교육 등 교육과 지속적인 후원 관리를 위한 활동이었다. 또한 여성활동가가 농촌탁아소 보모로 지역에 들어가 현장 여성운동가를 양성하고 조직화하는데 활용했으며, 청원 등동어린이집, 중원 문산어린이집을 집중적으로 운영하며 활동했다. 1980년 중반에는 여성농민 교육을 위한 여건을 조성해가며 여성농민 활동가 교육을 전국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추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1987년은 민주화운동 국면에서 새로운 변화와 전환점이 필요했던 시기였으며, 현장 농민 조직도 활발하게 이뤄졌던 흐름이 형성되었다. 자주적 여성농민 조직 건설에 대해 암묵적 합의가 이어졌고,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전국여성농민 조직화를 위한 활동이 본격화된다. 1989년 자주적 여성농민 조직의 필요성에 합의하여 ‘전국여성농민조직 활성화를 위한 조직위원회’가 결성되었고, 6개월 이후에 여성농민위원회 준비위원회로 본격화되었으며, 1989년 12월 18일 전국여성농민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90~1991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제1대 사무국 총무국장을 역임했고, 1991〜1993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회장을 역임했다. 1990년대 초까지 농민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하다가 후배 활동가들이 양성되면서 후배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2년 안양시에 주거지를 마련하면서 정착하게 되었고, 1993년 상가를 분양받아 요가센터를 운영하면서 건강문화 쪽으로 활동 영역을 옮겼다. 지역사회운동에도 참여하면서 안양여성회 창립, 참교육학부모회 조직화에 참여하였고, 1998년에는 전국지방선거 경기도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9년 휴식을 갖고자 1년간 티베트로 여행을 떠났다. 현재 요가와 차문화를 전공하여 활동하고 있지만, 인생에서 여성농민운동은 가장 핵심적인 삶의 가치였기에 언제나 활동의 중심에는 여성농민이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농촌탁아운동을 통한 교육활동, 여성농민조직 결성을 위한 논의 과정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