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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섭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현이섭
- 면담자
- 이병호
- 구술일자
- 2022.8.31.
- 구술장소
- 민주언론시민연합
- 구술시간
- 287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73 단국대 법학과 졸업1978 연세대 행정대학원 졸업 / 현대경제일보 입사~1980년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 강제해직<마이카> 편집장,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국전력 홍보1984 3월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창립 주도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 이후 언협 활동1987 <한겨레신문> 창간 사무국 합류. 창간 사무에 기여1988 8월 한겨레신문 편집국 민권사회부 편집위원보이후 민권사회부장, 출판국장, 제작국장, 심의실장 등 역임2003 미디어오늘 대표이사(현)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
- 구술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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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섭은 어린 시절, 4·19, 5·16을 경험했고 청소년 시절부터 사회의식이 남달랐다. 대학생으로서 3선 개헌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공군 장교를 거쳐 현대경제일보-일요신문에 입사했다. 독재에 저항한 해직기자들의 용기에 감명 받아 사회 민주화에 기여하리라 결심했다.
기대와 달리 박정희 정권 하의 언론은 오랜 세월 순치되어 현실에 침묵했고 이러한 언론계의 분위기에 실망했다. 일요신문 특집부 근무 시절, 노동자의 열악한 삶과 가난, 대학가의 반독재 투쟁 열기를 실감하기도 했다.
10·26사건 이후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면서 소장파 기자들이 언론자유 확대를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태홍 기자협회장 체제가 들어서자 기자협회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현이섭은 뜻을 같이하는 기자들과 상의하여 성명서를 작성하고 1980년 5월 6일 편집국 집회를 개최하여 참언론을 위해 투쟁하자고 촉구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보도하지 못하자 소장파 기자 중심으로 21일부터 27일까지 제작거부를 했다. 그러나 신군부가 언론통제를 강화하면서 제작거부가 중단된다. 허탈과 자괴감으로 괴로워하던 중, 8월 6일 강제해직 된다.
이후, 정권의 취업 방해로 인해 실업 상태에 있어야 했다. 84년 3월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결성을 주도했다. 사회 민주화 없이 언론 민주화 없고, 언론자유 없이 사회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는 통절한 자각을 하게 된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여 불안정한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84년 12월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도 회원으로 가입하여 언론운동을 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에 <한겨레신문> 창간 운동이 시작되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창간 작업에 투신하여 주주 모집을 위해 송건호 선생과 전국을 누빈다.
신문 창간 이후에는 민생인권부 인권 담당 기자로서 반민주적, 폭압적 인권 유린의 실상을 고발했다. 80년 언론인 해직 사태의 진상규명, 명예회복, 피해자 보상을 위하여 오랜 세월 노력했다. 2021녀 광주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보상이 가능하게 됐지만 입법상 오류가 발생하여 이를 개정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계엄당국의 언론 통제 아래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보도하지 못한 언론인들의 분노와 자괴감, 그리고 신군부의 언론 장악 계획에 의해 기자들이 강제 해직되는 과정을 증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