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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육
사업개요
-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2
- ‘1980년대 민주화운동 구술 수집 사업’의 4~5차년도(2021~2022) 과제로 진행된 ‘1980년대 언론민주화운동’ 은 당시 운동에 깊이 관여한 언론인을 구술 대상자로 선정하여 채록을 수행했다. 2차 채록에서는 <말>지 발행 및 ‘보도지침’ 폭로 과정을 비롯해,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의 창립과 지난 42년간 전개된 진상규명·명예회복·보상 투쟁을 기록했다. 또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회원들의 증언, 신문·방송·통신계의 언론 통제 실상과 해직 기자들의 민주언론운동, 호남 지역 및 여성 해직 언론인이 겪은 탄압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구술채록 정보
- 구술자
- 허육
- 면담자
- 이병호, 박성득
- 구술일자
- 2022.8.11.
- 구술장소
- 민주언론시민연합
- 구술시간
- 193분
구술컬렉션 > 1980년대 민주화운동 > 언론민주화운동
관련 구술아카이브
구술채록 내용
- 구술자 이력
- 1944 대구 경북중학교 입학1947 대구 경북고등학교 입학1960 서울대 문리대 중문학과 입학1964 11월 동아방송 제1기 견습 프로듀서로 입사동아방송 재직 중 <동아스코프>라는 프로그램 책임 PD1974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1975 3월 동아일보사 경영진에 저항하여, 방송 제작 거부 운동 실행. 강제 해직됨. 6개월간 퇴근 운동을 벌이며 동아투위 활동을 시작함이후, 박정희 정권의 취업 방해로 방송계를 떠나 출판, 제조업 등에 종사함1980 복직 및 새언론 창설 관련 세미나 도중,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3개월간 도피함1984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설에 참여, <말>지 등을 지원1987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 창간을 재정적으로 지원현재는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
- 구술내용 요약
-
대학 재학 중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경험한 허육은 1964년 11월 동아방송 견습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프로듀서 책임제 아래 자율성을 누렸고 동아방송의 청취율이 높아 수익성도 좋았다. 박정희 정권은 지속적으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탄압에 탄압을 가했고, 언론인에 대한 테러와 위협도 발생했다.
정보기관원들이 동아방송에 출입했지만 상대적으로 신문보다는 통제가 덜했다. 74년 10·24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방송보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권의 압박으로 방송광고가 무더기 해약되는 사태가 일어나자 75년 1월 동아방송자유언론실행총회를 열어 저항의 강도를 높였다. 사측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회사가 자유언론실천의 핵심 멤버 18명 해임한다. 3월 12일 방송 제작 거부 결의하자 사측은 편법적으로 오류동 송신소에서 급조한 방송을 송출하게 된다. 방송사에서 철야 농성을 이어가던 중 3월 17일 새벽 강제 해산을 당하고 같은 날 동아투위 결성했다.
해직 후 6개월단 출근 투쟁을 별였고, 취업 제한자로 분류되어 방송 관련 일을 못하고 대신 출판사, 영업사원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결성과 운영을 지원했고,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에 동참했다.
젊은 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며 동아투위는 내 인생의 보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후배들에게는 부끄러움을 아는 언론인은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어 한다.
- 하이라이트 영상 내용
- 박정희 정권 시기 동아방송의 자유언론수호 투쟁과 그 탄압 과정, 특히 동아방송에서 강제 해산되던 날의 급박했던 순간에 대해 증언
- 녹취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