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로고

YH사건

YH무역 노동조합은 1975년 5월24일 섬유노조본부의 지원활동에 의해 결성되었다. YH무역 노동자투쟁이 노동운동의 정치화 효과가 있게 된 직접적 계기는 경영진의 일방적인 폐업공고였다. YH무역은 1970년 종업원 4,000여명의 국내 최대 가발생산업체로 성장하였으나 1970년대 후반 세계가발시장의 수요감소와 기업외부로의 자본 유출 등으로 경영난을 맞이하게된 것이다. 1979년 8월 6일 회사는 노동조합의 관계기관 방문투쟁, 농성투쟁 등에 밀려 폐업조치를 유보하였으나 다시 폐업을 공고하면서 다음날 기숙사를 폐쇄하고 8월 10일까지 퇴직금과 해고수당을 수령하라는 최후통첩을 하였다. YH무역 노동조합은 회사의 폐업조치를 정치화하기 위하여 신민당사를 농성장소로 결정하였다. 당시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YH무역 노동자투쟁에 지지를 선언하였다. 8월 11일 새벽농성 3일째 천여명의 경찰병력이 노동자들의 농성을 무력으로 진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김경숙씨가 4층에서 떨어져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8월13일 신민당사 점거농성을 이유로 지부장 최순영 등 4명의 노동자가 구속되었으며 문동환, 인명진, 서경석 목사, 고려대 해직교수 이문영, 시인 고은 등 5명이 배후조종혐의로 구속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도시산업선교회를 겨냥한 것이었다. 경찰은 노동자들이 도시산업선교회의 지시를 받아 자살조까지 만들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YH무역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투쟁은 외부 노동지원 단체와의 사전계획에 의해 노동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전환시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YH무역 노동자투쟁은 신민당 총재 김영삼의 국회의원 제명사태를 가져왔으며 노동운동 보다는 정치적 민주화운동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YH무역 노동자투쟁은 유신체제의 억압적 노동통제가 노동자계급의 노동기본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보편적 이념으로서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게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