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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1년 8월에 대한적십자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측에 남북적십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하였고, 북측이 이를 받아들여 판문점에서 첫 예비회담이 열렸으며, 7.4남북공동성명에서도 이를 확인하였다. 이후 본회담을 열기까지 25차례의 예비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되었다. 제21차 예비회담에서 쌍방이 각각 7명씩으로 대표단을 구성한다는 데 합의하였으며, 23차 예비회담에서는 본회담 대표단 구성에 대한 합의문을 교환하였다.
당시까지는 남북이 서로를 격렬하게 비방하고 적대시하였으나, 적십자회담 예비회담을 위해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대표단과 기자들을 시민들은 열렬히 환영하여 순식간에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10월유신이 단행되고 다시 남과 북이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되면서, 7.4남북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이 10월유신을 단행하기 위한 명분쌓기였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
당시까지는 남북이 서로를 격렬하게 비방하고 적대시하였으나, 적십자회담 예비회담을 위해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대표단과 기자들을 시민들은 열렬히 환영하여 순식간에 남북 화해무드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10월유신이 단행되고 다시 남과 북이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되면서, 7.4남북공동성명과 적십자회담이 10월유신을 단행하기 위한 명분쌓기였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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