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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공판

1985년 7월 15일,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첫 공판이 열렸다. 서울시경 기동대 3개 중대 전경 450여명이 서울지방법원으로 통하는 네 군데의 길목을 지켰다. 9시 13분, 버스 두 대가 법원의 서문 쪽으로 들어서자 40여명의 사진기자들과 1백여명이 넘는 구속 학생 가족들은 구속 학생들을 보기 위해 운집하였다.

맨 먼저 버스에서 내린 학생은 전은숙이었다. 함운경이 버스에서 내려서면서 수갑 찬 손을 치켜들었다. “독재정권 타도하자!” 함운경의 고함 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학생들이 내릴 때마다 가족들과 학생들은 한 덩어리로 구호를 외쳤다.

서울형사지방법원 대법정(방청석 152석)은 개정 30분전인데도 꽉 차 있었다. 방청석 맨 앞줄에는 외신기자 10여명이 앉아 있을 만큼 이 사건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았다. 재판장의 입정에 맞춰 학생 피고인들은 “누가 우리를 심판하나”라고 외치며 “5월이 오면”, “타는 목마름으로“등의 노래를 불렀다. 법정에서도 “독재정권의 재판을 거부한다!”는 구호가 피고석과 방청석에서 계속 터져 나왔다. 이재훈 부장판사는 몇 차례의 휴정과 개정을 반복했고, 인정신문을 거부하는 학생들과 공방을 벌이다 29일로 재판을 연기했다.

22일 서울형사지법은 법정 소란행위를 막기 위해 2회공판부터는 20명의 피고인을 3일간 6개 그룹으로 나눠 심리키로 결정했다.(7월 29일, 7월 31일, 8월 2일)  4회 공판으로 관련 학생 피고인 20명에 대한 인정신문과 검찰측의 직접신문을 모두 끝내고 5회 공판부터는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8월 5일 서울대생 8명에 대한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이, 7일에는 고려대생 등 병합심리가 있었고, 9일에 서울대생 8명에 대한 공판이 열렸다. 14일 9회 공판에서 겸찰측과 변호인단의 보충신문을 끝으로 사실심리를 모두 마쳤다.

구속 학생들과 늘 함께했던 ‘구속학생가족협의회’ 회원들은 대부분 평범한 부모들이었다. 아들․ 딸이 잡혀간 뒤 면회는 안 되고 답답한 심경은 더해 가는데 어디 물어볼 만한 곳이 없나 해서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찾아간 곳이 민추협이었다. 민추협 변호인단이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게 됨으로써 가족들은 용기를 얻고 민주화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모든 공판은 구속학생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의 관심 속에 진행되었다. 방청 제한, 법원 주변의 과잉 경비, 접견 금지, 분리 신문의 부당성을 변호인단이 강력히 항의했다. 한편 첫공판의 법정 공방의 여파로 인해 법원과 교도대는 학생들의 구호를 막으려고, 인간 터널을 만들어 호송버스 꽁무니에서 내린 피고인이 터널 사이를 지나 곧장 법정으로 들어가도록 교도대를 배치했다. 이재훈 부장판사는 “이 재판장이 정치 토론장화 되는 것, 헌법 기관을 모독하는 발언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날 서울대 총학생회장 김민석은 공판이 종료되자 교도관에 의해 입이 틀어 막힌 채 출입구에서 바로 버스 뒷문으로 끌려 들어가야 했다. 이런 모습은 재판 전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재판부는 8월 21일 변호인 신청 증인 18명 가운데 15명을 기각한데 이어 변호인단과 피고인들이 제출한 증거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을 기각한다. 불공정한 재판을 우려하며 변호인단은 9월 2일 재판부 기피신청서를 서울형사지법에 낸다. 그러나 이 또한 9월 6일 서울형사지법합의 12부(재판장 이건웅)에 의해 기각되고 나아가 서울고등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정만조)는 9월 11일 피고인들의 항고를 기각, 9월 19일 변호인이 제출한 재항고를 기각한다. 기각 확정 뒤 처음 열린 9월 25일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재판부의 불공정한 증인채택과 박찬종 변호사에 대한 업무정지 처분에 항의, 사임해 버렸다. 

9월 25일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에서 결심공판이 열렸다. 재판은 분노한 피고인들과 재판부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었다. 입정하면서부터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과 입을 틀어막는 교도관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재훈 재판장은 학생들을 퇴정시키고 피고인석이 텅 빈 상태에서 검사의 구형 논고문이 낭독되었다. 함운경, 김민석 피고인에게 징역 10년, 홍성영 등 10여명의 피고인에게 징역 7년, 나머지 피고인에게는 5년이 구형됐다. 

10월 2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함운경(서울대 삼민투위원장)은 징역 7년 자격정지 3년이, 김민석(서울대 전학련의장)과 이정훈(고려대 광주투쟁위원장)등 2명에게 징역 5년씩, 다른 17명의 학생들도 징역 2년에서 4년씩 각각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