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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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진오 박사 빈소 철거 시위 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민족 정기를 세우자는 뜻이 미풍양...
등록번호 : 00838990
날짜 : 1987.09.0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시위 사건과 관련하여 고려대학교 이문영, 이만우, 이상신, 권창은, 윤용 교수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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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 작성한 4.19데모 목격자 및 인근주민의 조사서(서울지방)4]
등록번호 : 00849819
날짜 : 1960.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1시에 고려대학교에서 고대 학생들의 시위를 목격한 대학생 서○○이 당시 상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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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유신문 제41호
등록번호 : 00873749
날짜 : 1975.04.13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심재선
요약설명 : 발동-고려대학교 폐쇄코 집회, 시위 금지...위반자는 10년이하 징역형 비방자도...
사진사료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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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고려대학교 학생들
등록번호 : 00976311
날짜 : 1987.06.19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윤석봉
요약설명 :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부규탄집회에서 합판 등을 방패삼아 경찰을 향해 격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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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에서 결의안을 낭독하며 시위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
등록번호 : 00700204
날짜 : 1960.04.18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3.15 부정선거 만행과 김주열군의 죽음을 보고 분노한 고대생 3,000여 명은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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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대토론회를 마친 후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서의 시위 모습
등록번호 : 00707850
날짜 : 1989.03.26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박용수
요약설명 :
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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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으로 본 4.19혁명
요약설명 : 있음을 명심하여 총궐기하자. 단기4293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일동 1960년 4월 16일, 이날은 고려대생들의 신입생환영회가 계획된 날이었다. 마산 2차시위에 고무된 고대생들은 이날 시위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낌새를 챈 형사들이 학교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신입생환영회와 시위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18일 아침 이들은 학교 안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점심시간 사이렌이 울리면 학생들을 교정에 있는 인촌 동상 앞으로 모이도록 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동태를 알아챈 학교 측은 사이렌을 울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인촌 동상 앞으로”라고 외쳤다. 순식간에 3,000여 명이 교정에 모여들었다. 학생들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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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9호를 농락한 3인방
요약설명 : 잡으러 다녔다.” 도심 시위와 도망자의 존재는 학교 안팎의 민주화운동에 강한 자극을 주었다. 철옹성 같은 긴급조치 9호도 약점을 파고들면 약화시키고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하던 학생운동 진영에 퍼지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힘을 기르던 이들이 서서히 ‘지상전’을 위한 연대에 들어갔다. 1978년 9월 13일 일어난 ‘서울대 3차 시위’는 그런 기류를 반영한 일격이었다. 3차 시위란 연초 김수천을 수장으로 하는 서울대 학생운동 언더그룹이 연중 네 차례 계획한 시위 가운데 세 번째라는 뜻이다. 경찰은 물론 학생들도 깜짝 놀랐다. 양민호가 준비한 이 시위에 도망자 성 욱과 이우재가 나타나 시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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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해도 신사적인 시위를 생각하였던 학생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길을 당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4월 19일 아침 조간신문을 받아본 학생과 시민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깡패들이 학생들을 습격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길고 긴 자유당 정권의 전횡에 혐오와 격분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보라! 갖가지 부정과 사회악이 민족정기의 심판을 받을 때는 왔다! 이제 우리는 대학의 양심으로 일어서노니 총칼로 저지 말라. 우리는 살아있다. 동료의 무참한 살상 앞에 안일만을 탐할소냐! 한숨만 쉴소냐! 학도여, 우리 모두 정의를 위하여 총궐기하자!” 신설동에 있던 대광고등학교 학생 일천여명이 먼저 교문을 박차고 나와 혜화동 쪽에서...
구술 컬렉션 3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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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웅
면담자 : 양라윤
일자/장소: 2010년 11월 13일/광주 구술자의 자택
요약설명 : 이후 다른 학교와 연대 및 동향을 살핀 후 다시 모여 구체적인 시위를 계획하기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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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표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이주실)
일자/장소: 2010년 11월 2일/ 경기도 군포 구술자 자택
요약설명 : 쉬고 고려대학교를 들어오게 되었는데 고려대나 전공과는 원해서 들어온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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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면담자 : 이정은
일자/장소: 2010년 8월31일/한국성서대학교 총장실
요약설명 : 7) 4‧18 고려대 시위에 대한 평가 4월18일 고려대학교 시위 자체가 학생위원회나 일부...
일지사료 7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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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생학술연구회, 이승만·이기붕 지지 호소문 발표
일자 : 1960.3.10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독립항일투쟁을 위하여 80 평생을 이 나라에 바친 영웅적 지도자이시며 또한 세계적 반공지도자이신 리승만 박사를 우리의 영원한 국부로서 추대하고 신인용지(信仁勇智)를 겸비한 덕의 정치인 리기붕 선생을 리승만 박사의 보필로 제5대 부통령에 받들고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겨레와 민족을 위하여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만천하 전국청년학도에게 선언하는 바이다. 결의문一. 우리는 항일반공으로 국론을 통일하자! 一. 우리는 중·고등학교의 정치도구화를 방지하자! 一. 우리는 민족정기에 위배되는 일절의 행위를 규탄하자!이석환 외 학생 서울대, 경희대, 고려대, 성균관대, 동국대, 숙명여대, 덕성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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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학생시위가 있기까지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 전국각급학교 학생대표 수기』, 정음사, 1960, 123-132쪽).10일 경에는 밤사이에 캠퍼스 십여 군데에 각기 다른 필체와 문체로 학생들의 봉기를 촉구하는 벽보가 나붙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207-209쪽시위의 분위기가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술렁거림을 눈치 챈 경찰은 사복 차림으로 연일 교내에 잠복하며 동태를 살폈다.조화영 편, 『사월혁명투쟁사 : 취재기자들이 본 사월혁명의 저류』, 국제출판사,1960, 76쪽 ; 안동일·홍기범 공저,207-209쪽 학생들 사이에는 암묵적으로 4월 16일 신입생 환영회를 기회로 하여 무슨 일인가가 벌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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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시 국무회의에서 학생시위 수습책 논의
일자 : 1960.4.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오후 서울에서 3천여 명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감행하자 정부는 중앙청 회의실에서 임시국무회의를 열었다. 시위진압 및 사후수습 등 2개 부분으로 나누어 혼란상태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2마산사태에 뒤이어 군·경·검 3부 합동수사위원회까지 구성하여 강경책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계속해서 전국으로 파급되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이날 오후 5시부터 4시간에 걸친 국무회의를 마친 당국자는 “우선 질서를 잡아 놓은 다음에야 잘잘못을 따질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시위 진압을 위해 강경책을 사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