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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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또 學生데모事件 이번엔 大田商高校生 約 三百名이 一部學生 連行에 刺戟 20分後...
등록번호 : 00851160
날짜 : 1960.03.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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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도쿄대학유학생 양심수 유정식씨를 석방하라!
등록번호 : 00937401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
요약설명 : 항소와 상고를 했지만 기각되어 대구교도소에 수감 되었고 수감 중 북한 찬양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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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데모 아닌 데모로 또 騷動 大田商高生 斷行하려다가 挫折
등록번호 : 00851239
날짜 : 1960.03.11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사료 콘텐츠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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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충북지역 4월혁명 - 청주
요약설명 : 벽보와 전단지를 들고 시내로 진출했다. 시내에는 이미 청주공고, 청주상고, 청주여자기술고 전교생과 청주여고, 청주고 일부의 학생들이 나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은 곤봉을 사용하였고, 소방차에 구정물을 담아 학생들에게 쐈으며, 학생들은 투석전을 벌였다. 4월 19일, 2차 시위가 진행되었다. 청주대학 학생 600여 명은 청주농고의 시위가 진행 중인 오전 11시 경부터 학교에서 2킬로미터 지점인 동문로5가 대창제재소 앞까지 행진했지만 경찰에게 포위되어 강제해산됐다. "...‘니가 데모 주동했다며?’ 그러기에 ‘내가 주동했습니다.’ 그랬더니 아 금테를 한 아주 흉골이 좋은 경찰관이, 상당한 계급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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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을 아시나요? - 4.19 혁명
요약설명 : 고향인 남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마산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을 따라 마산상고에 입학시험을 치기 위해 친척집에 머물던 중이었다. 어머니의 애끓는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김주열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야당 조사단에게 호소하여 시청 뒤 물탱크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 권찬주 여사의 애끓는 자식 찾기 사연은 당시 15만 마산 시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런 날들이 20여일 지나가고, 김주열의 어머니도 다시 고향인 남원으로 돌아간 지 사흘 째 되던 날.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 20분. 마산 신포동 중앙부두 앞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바다 위에 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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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3·8민주의거
요약설명 : 나갔다. 학생들은 “학원의 자유를 달라”, “친구를 빨리 내놓으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전경찰서를 향해 시위를 시작하였고,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시청 근처에 이르렀을 때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진압경찰뿐만 아니라 정체불명의 단체까지 동원되어 시위대열에서 부상자가 속출하였고 학생 50여 명이 연행되었다. "대구에서도 하니까 우리도 좀 해야겄다, 하는 몇 몇 학생들이 계속 얘기가 되어 있었어요. 대전 시내가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얘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사복 경찰이라든가 학교 선생님들이 참 그 와해시키기 위해서 굉장한 많은 노력들을 했죠. 대전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3월 그냥 8일에 했는데 다른 학교는 같이...
구술 컬렉션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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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남
면담자 : 김용재, 이영조
일자/장소: 2010년 7월 15일/대전 기획출판 오름
요약설명 : 절규했다.'(대전일보) 등으로 타이틀이 나타났다. 그렇고 보면 대전상고의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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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중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6월 29일/덕수고등학교
요약설명 : 김갑중은 대전 출생으로 대전서중을 나와 덕수상고 야간을 다녔다. 함께 배석한 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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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덕
면담자 : 김용재, 이영조
일자/장소: 2010년 7월 14일/대전 기획출판 오름
요약설명 : 대전사랑에세이선집』(2009. 대전문인총연합회)에 3‧8관련 작품수록 이용웅 에세이 -...
일지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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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상업고등학교 학생 300여 명 시위
일자 : 1960.3.10
분류 : 시위 상황 > 대전
요약설명 : 대전상고생 12명 이 회합을 갖고 시위를 모의했는데, 이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10일 새벽 4시 이들을 경찰서로 연행하였다.연행된 대전상고생이 11명이었다는 보도도 있다(『한국일보』1960. 3. 10 석3면).경찰의 회유로 학생들은 시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10일 오전 9시 경 석방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대전상고 교장이 학생들을 찾아와 아침식사를 사주었다. 한편 대전상고 학생들은 9시가 넘어도 연행된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지 않자 경찰이 석방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 시위를 일으킨 것이었다. 대전상고는 도청소재지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교외에 있었다. 학생들은 조회가 끝난 9시 30분 대열을 지어 대전경찰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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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시위 전개
일자 : 1960.4.18
분류 : 시위 상황 > 청주
요약설명 : 3월 11일자 일지 참조 경찰의 제지로 삼삼오오 흩어졌던 학생들은 재차 청주상고 교정에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오후 2시 20분 경 600여 명이 집결하자 2차 시위에 들어갔다. 청주상고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는 학도호국단가를 제창하면서 시내 번화가를 관통하여 청주역전으로 향하였다. “경찰의 학원간섭을 물리치자”, “우리들의 동료를 석방하라”는 등의 구호를 부르며 나아가다 중앙시장 앞 시영 목욕탕 앞에서 경찰의 저지를 받았다. 그러나 시위대는 “으샤으샤”하며 한국은행 청주지점 앞을 향해 시위를 강행하다가 충북여객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지프차 3대, 트럭 1대로 완강히 제지하는 경찰과 대치하였다. 여기서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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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상업고등학교 학생들, 한희석 집 습격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지상 3층으로 된 웅장한 건물이었다. 주인이 모두 도주하고, 송아지만한 포인터 두 마리만이 지키고 있던 빈 집에서 학생들은 난생 처음 보는 고급 집기들을 야구 방망이로 부셔댔다. 학생들은 또한 지하실을 가득채운 수입 설탕포대, 최고급 분유, 밀가루 포대, 양복지, 인삼, 녹용, 양주, 화장품, 수입식품 등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며 분노를 금치 못하였다. 호화의 극치였던 대저택은 삽시간에 흉가로 변하였다. 이후 학생들은 다시 시위행진을 계속하여 광화문까지 진출하였다. 김강준(당시 선린상고 2학년), 「민족의 분노 4·19!」, 3·8민주의거 기념사업회·대전·충남 4·19혁명 동지회, 『3·8민주의거』, 2005, 155-15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