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 콘텐츠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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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사진전과 개인 기록물
요약설명 : 도청을 비롯한 주요 건물을 장악하였다고 보도했다. 리영희 선생이 스크랩한 신문 기사는 광주 시위를 선동한 간첩을 검거했다는 소식, 연합사 소속 한국군의 광주 진압 동원 요청에 주한미군 사령관이 동의했다는 소식도 포함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의 국정원 평가 및 육·해군의 기록 등 조사 결과 근거 없음으로, 후자의 경우 1980년 주한미대사관이 미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을 통해 미국이 병력 배치를 고려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뒤늦게 광주로부터 도착한 기록과 사진 항쟁이 종료된 후에도 신군부는 5.18의 진상이 확산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했다. 이런 상황 속에 항쟁 기간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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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회복의 교육을 詩로 노래하다_ 성래운
요약설명 : 마지막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전남대 교수 11명만 서명하였다. 성래운은 그것을 AP통신과 아사히신문 등 외신에 전달했다. 과격한 내용도 아닌 이 선언서 하나가 유신 치하 잠들어있던 광주를 흔들었다. 다음날,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서명에 참가한 교수 11명을 긴급 체포했고, 이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기도회와 시위가 이어졌다. 7월 5일에는 전남대에 휴교령이 떨어졌다. 주동인 송기숙 교수는 재판에 넘겨져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위반이라는 혐의로 4년 형을 선고받았고 다른 교수들은 해직되었다. 성래운은 그 후 6개월간 수배 생활을 하다가 잡혀 광주교도소에서 송기숙과 함께 수감되어 재판을 받았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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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회총연맹_ 개발독재의 희생양에서 농민운동의 구심점으로
요약설명 : 3개 농민단체뿐만 아니라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학생들까지 참여한 까닭에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가 되었다. 여의도농민대회 이후 정부는 곧 농민운동 지도자와 전민련 의장, 전대협 의장 등 민족민주운동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령을 내렸다. 그 결과 전국에서 연행된 사람만 총 458명에 달했고, 사법 당국은 이 가운데 117명을 입건한 뒤 6명을 구속했다. 이에 반발한 농민들은 2월 25일 ‘여의도 농민집회 폭력진압 규탄과 수세 완전폐지를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전국 26개 군에서 동시에 개최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거듭되는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 속에 농민운동은 그 위세가 크게 꺾였다. 공안 당국은 여세를 몰아 “가톨릭농민회,...
구술 컬렉션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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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채
면담자 : 양라윤
일자/장소: 2010년 11월 17일/광주시 계림1동 동아이발소
요약설명 : 주로 시위대의 앞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기에 구술자도 시위대 앞으로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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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충식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10년 11월 18일/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회의실
요약설명 : 밤 학교에서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4월 19일 시위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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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식
면담자 : 이영재
일자/장소: 2010년 11월 23일/4‧19민주혁명회 복지사업단
요약설명 : 시위에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명지고에서 시위 참여를 주도한 학생들은 최인두, 장철,...
일지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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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시청 앞 정전으로 암흑 속에서 무차별 사격 감행
일자 : 1960.3.15
분류 : 시위 상황 > 마산
요약설명 : 전 시내가 암흑으로 뒤덮이자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여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날 풍향이 반대방향이어서 별 효과가 없었다. 8시 무렵에는 실탄 사격이 시작되었다. 시위대는 소방차가 들이받아 넘어진 전주를 이용해 판자 등으로 방어벽을 만들었다. 경찰은 전주 뒤쪽에 숨은 시위대의 투석을 피하면서 30미터 거리에서 무차별 발포를 감행했다. 총성이 울리는 밤하늘은 수 십 발의 조명탄으로 환했다. 총상을 입은 사상자는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긴박한 순간에도 시체를 수습하겠다고 나선 학생들이 있었으며, 부상당한 동료를 업고 도립마산병원으로 운반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시위에 참여한 군중들은 도립마산병원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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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 올린 교수단, “정·부통령 선거 다시 하라”절규
일자 : 1960.4.25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안동일·홍기범 공저,277쪽). 여기서는 교수단 시위의 주요멤버였던 이상은의 글을 존중하여 서술하였다. 이들은 전문 문구의 약간과, 제4조에서 “현 정부와 집권당”이란 표현은 “대통령을 위시한 여야 국회의원 및 대법관 등”으로 바꾸었다. 제8조 “깡패를 철저히 색출 처단하고, 그 전국적 조직을 분쇄하라”는 부분은 삭제하였다. 제12·13조는 병합하였다. 수정된 시국선언문은 임시서기인 이항녕 교수에 의해 보고되었고, 이는 박수로써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오후 5시 35분, 통금시간이 1시간 반도 남지 않게 되자 김영달 교수는 긴급동의를 요청하고 “폐회하는 대로 데모를 합시다”하고 외쳤다. 시위 제의가 나오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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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학생 석방 범국민운동 펴기로
일자 : 1964.9.11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 | 야당·재야·일반
요약설명 : 6·3시위로 아직도 옥중에 남아 있는 “동료들의 구출을 위해 범국민운동을 벌일 것”을 다짐했다. 이들은 “집권자의 시대착오적·비애국적인 행동윤리를 방관할 수 없어 거리에 나선 것”이라며, “권력인에 대한 반성과 젊은 세대에 대한 관용을 대망하면서 우리들의 목적과 취지가 관철될 때까지 다짐한다”는 요지의 선언문과 석방운동을 위한 결의문(별도 하단)을 채택했다. 이들은 첫 단계로 구속학생 석방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과 옥중 학생들에게 사식을 넣어주기 위해 가두모금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한편 11일 상오 7시부터 중앙대학교 정문 앞에 “구하자 우리 학우들”이란 표어 아래 구속학생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