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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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앞 및 서울일원 발포명령사건 판결_홍진기, 유충열, 백남규, 곽영주
등록번호 : 00850001
날짜 : 1961.12.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홍진기(전 내무부장관), 유충열(전 서울특별시경찰국장), 백남규(전 서울특별시경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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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馬山사건 發砲는 署長命令 李內務次官談
등록번호 : 00851725
날짜 : 1960.03.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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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범국민 진상조사위원회 발족에 즈음하여
등록번호 : 00116010
날짜 : 1988.06.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
요약설명 : 당시 발포명령의 당사자, 당시 미군의 역할, 사망자의 수, 암매장의 진실 등을...
사진사료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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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시위 발포명령사건 현장검증 장면
등록번호 : 00732937
날짜 : 1960.07.2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당시의 발포 명령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하였다. 이날 현장검증에는 곽영주 ‧ 조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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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밤 시민들에게 발포명령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지검 마산지청장 서득용의 기자회견
등록번호 : 00700189
날짜 : 1960.03.00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3.15의거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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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명령책임자 처벌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홍진, 최병헌 외 2명
등록번호 : 00733802
날짜 : 1960.07.23
구분 : 문서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4.19시위 발포명령자들에 대한 제2회 공판이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렸다. 서울지법 ...
사료 콘텐츠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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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은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부마민주항쟁
요약설명 : 같은 게 나면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겠어. 자유당 때는 최인규나 박영주가 발포 명령을 내려 사형을 당했지만,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내리면 대통령인 나를 누가 사형시키겠어?”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중정부장 김재규의 등짝에서 자기도 모르게 진땀이 배어났다. 그들에게 박정희의 영구적 집권을 보장하는 ‘유신(維新)’은 종교나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유신체제에 대한 도전은 곧 죽음을 뜻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멈출 수 없게 돌아가고 있었다. 10월 16일 10시 즈음. 부산대학교. 살벌한 분위기를 뚫고, 경제학과 정광민이 인문사회관 306호 강의실에서 <선언문>을 뿌리고 교단에 올라가 열변을 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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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과 대법원장 선거
요약설명 : 대법원장이 가지고 있다. 대법원장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 '6대사건'은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4.19 발포명령 사건, 정치깡패 사건, 서울·경기지역 3.15 부정선거 관련자 사건, 제3세력 제거 음모 사건, 이승만 전 대통령 저격사건이다. 1960년 10월 8일 서울지법의 6대사건 판결공판에서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발포명령 사건의 유충렬과 백남규에게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고 그 최고책임자로 지목된 홍진기 · 조인구 · 곽영주에게 '무죄', 기타 사건 피고인들에게도 법률상의 이유를 들어 유기징역 · 무죄 · 공소기각 · 형 면제 · 집행유예를 선고했다.(10.8 판결). 이날 판결로 13명이 무죄 또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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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및 5.18사건 관련자 사법 처리 과정
요약설명 : 유야무야로 끝났다. 정부 발표 공식 사망자만 160명이 넘는 피의 역사의 심판에서 발포명령자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전두환 씨가 계엄군 발포 명령 책임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 국가보훈처가 5.18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는 것을 불허했다... 다음은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 사법 처리 과정이다. ○ 1979년 3월 5일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에 임명됨 ○ 1979년 10월 26일(10.26사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궁정동 별관 만찬에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 ○ 1979년 12월 12일(12.12군사쿠데타) 전두환을 중심의 신군부, 불법 병력 동원, 군권 장악 ○...
구술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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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각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김민철)
일자/장소: 2010년 10월 28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요약설명 : 그다음, 명령이 있기 전에 쏘는 자는 엄벌한다' 이 방침은 기본적으로 불발포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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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정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김민철,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9월 16일, 9월 30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명령을 했더라도 최선을 다하라는 정도이지 직접적인 발포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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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면담자 : 민족문제연구소(이준식, 조세열, 강동민)
일자/장소: 2010년 7월 20일, 9월 27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건의를 했다. 발포 안 하면 수습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이승만은 "발포는 안 돼, 국...
일지사료 10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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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발포명령자와 관련하여 기자회견
일자 : 1960.3.17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검찰은 발포명령자에 대해 17일 오후 7시경 마산사건 발생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자진 요청했다. 기자회견에서 검찰은 발포명령자는 서득룡마산지청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검찰은 검찰지청장을 비롯하여 당일 개표장에 있었던 박영두마산시장과 손석래마산경찰서장의 3자의 심문을 끝마친 뒤에 지청장은 발포명령을 한 사실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하였다. 밤 9시 40분에 이루어진 2차 기자회견에서는 이날 밤 안으로 39명을 석방했고, 16일 구속된 방화범박세현을 포함하여 민주당원 5명, 일반인 10명, 고등학생 8명총 24명만을 정식 구속하였다고 밝혔다.『조선일보』1960. 3. 18 조3면 ;『동아일보』1960. 3. 18 석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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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마산사건 수사본부를 대검찰청에
일자 : 1960.3.1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검찰은 18일 마산사건 수사본부를 대검찰청에 두고 수사를 통괄 지휘하기로 하였다. 대검 오제도 검사는 대검은 동 사건의 수사 일원화를 기하기 위해여 이같은 결정을 내렸고, 마산 현지 수사책임자로 대검 김종수 검사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배후관계는 사찰적인 견지에서 계속 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검 소진섭차장검사는 “검찰수사의 핵심은 발포명령이 정당한 것인가, 즉 발포하지 않으면안 될 사태의 긴박성 여부, 배후조종자 문제”라고 언명하였다.『마산일보』1960. 3. 19 2면 ; 『서울신문』1960. 3. 18 석3면 ; 『조선일보』1960.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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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서장, 대한변호사협회 마산사건 진상조사단에 시청 앞 발포명령 시인
일자 : 1960.3.1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정부·여당과 친여세력
요약설명 : 손석래마산서장은 19일 오후 대한변호사협회마산사건진상조사단에 “시청 앞에서 발사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손 서장은 “당시 시청 앞에 있는 군중들에게 발포할 때 내가 자주 그곳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발포명령을 한 것으로 된다”고 표현했다. 발포명령은 경찰국장이나 내무당국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닌 단독적인 처사였으며, 기타 지역에서의 발포는 자신과 관련 없다고 진술하였다.『동아일보』1960. 3. 20 조3면 ;『조선일보』1960. 3. 20 조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