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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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박용길 장로 겨레장에 보내주신 깊은 애도에 감사드립니다.
등록번호 : 00951617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봄길박용길장로겨레장장례위원회에서 장례식장에 온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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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봄길 밟고 오소서-봄길 박용길 장로 방북 경과보고
등록번호 : 00831049
날짜 : 1995.06.2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통일맞이 사무총장 인터뷰 첫인사말씀-평양에 도착하여 박용길 장로 방북일지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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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과의 추억"을 보내주세요.
등록번호 : 00951503
날짜 : 2012.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길 장로 서거 1주기를 맞이하여 추모문집 '봄길과 함께'에 담을 추모의 글을 모은다는...
영상사료 1건
더 보기박물사료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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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봄길을 따다
등록번호 : 00941700
날짜 : 미상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
요약설명 : 박용길 장로의 장례식에 쓰인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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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길 장로 장례식 추모 리본]
등록번호 : 00953947
날짜 : 2011.09.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박용길 장로 장례식때 참석인원이 착용한 추모리본. '통일의 봄길을 따라'라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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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꽃 평화꽃 박용길 장로 홍보막]
등록번호 : 00955044
날짜 : 2008.00.00
구분 : 문서류 > 박물
기증자 :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박용길 장로의 구순을 기념하여 서명한 홍보막. 학생들의 이름과 통일꽃 평화꽃이라는...
사료 콘텐츠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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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랑했던 봄
요약설명 : 늦봄과 봄길, 그들이 사랑했던 봄.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 그들이 원했던 봄. [사진 제공] 통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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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포그 연기 자욱했던 오월 속으로_ 5.3인천민주항쟁
요약설명 : 엄마의 걱정스런 말을 뒤로 하고 자옥은 집을 나섰다. 1986년 5월 3일 토요일. 한창 봄기운이 오른 날씨는 화창하다 못해 눈에 부셨다. 길거리 플라타너스 가로수에도 마악 돋아난 연둣빛 새잎들이 어린아이 손바닥처럼 하늘거리고 있었다. 청춘의 계절이라는 오월. 자옥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설레던 참이었다. 사실 엄마에게는 남이섬에 간다고 했지만 자옥이 탄 버스는 인천시민회관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같은 회사 노조 위원장인 명자 언니랑 주희랑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모르니까, 다들 복장은 간편하게 하고 와. 최루탄 쏠지 모르니까, 치약이랑 휴지도 준비하고...”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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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회복의 교육을 詩로 노래하다_ 성래운
요약설명 : 1979년 봄. 광주지방법원. 이곳에서 전 연세대 교수이자 해직교수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성래운 교수의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법정 안은 인근 광주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서울에서 내려온 동료 교수와 학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가득 차 있었다. 곱게 흰 한복을 입고 가슴에 수번을 달고 나온 성내운은 그런 그들을 뒤돌아보며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힘내세요, 선생님!” 누군가가 방청석에서 소리를 질렀다. 곧 재판이 시작되었다. “피고 성래운은 평소 유신 교육에 대한 불만을 품고 교육의 민주화, 민중화를 요구할 목적으로 전남대 교수 송기숙과 공모하여 <우리의 교육...
구술 컬렉션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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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주일공사, 돌연 귀국
일자 : 1961.9.15
분류 : 한일협정추진 > 한국정부
요약설명 : 정권과 소련 및 중공 간의 군사동맹 체결로 인하여 아국으로서는 더욱 반공체제의 강화가 필요한 바, 한일양국간의 전반적인 제휴는 한국의 반공 입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는 현안문제 해결을 전제로 하는 바, 이 경우 상당액의 변제금의 반환이 예측되는데, 동 금액은 한국의 국가경제 재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국교정상화 후는 경제협조 문제도 추진될 것이므로 국가경제 재건에 필요한 외자도입의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등으로 밝힌 바 있듯이, 한국정부에는 청구권 문제 처리를 위한 법과 자료에 기초한 충분한 실무적 토의보다는 경제건설에 필요한 자금도입의 신속한 실현만이 중요했다.(장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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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오히라 제2차 회담, 한일협상 내년 봄 조인키로, 청구권문제 이외의 평화선문제 등은...
일자 : 1962.11.12
분류 : 한일협정추진 > 한·일
요약설명 : 바 ‘내년 봄 조인과 초여름 비준’이라는 예정을 이날 회담에서 서로 확인했다면서, 일본자민당 내의 회담촉진기운이나 오히라외상의 적극적인 태도는 교섭의 제1책임자인 이케다 수상을 오히려 앞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김 부장은 오히라외상으로부터 이케다 수상이 박 의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받았다. 회담의 구체적 내용에 관해서는 일체 발표된 바 없으나, 주로 일본 측 소식통은 청구권 또는 무상공여액에 있어 한국이 3억 5천만 불의 5년 내지 7년 불을 주장했고, 일본은 3억 불의 12년 불을 고집했다고 전했다. 이것은 종래 6억 불 선과 1억 5천만 불 사이에 가로놓였던 차폭 4억 5천만불이 5천만 불로 줄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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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고려대·연대생 약 5,000명, 대일 굴욕외교에 반대하며 5·16 이후 최대 규모 ...
일자 : 1964.3.24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전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반봉건, 반외압세력, 반매판자본 위에 세워지는 민족혁명을 이룩하는 길뿐이다.’라는 구절에 ‘매판자본’이 등장하고(김삼웅 편, 『민족, 민주, 민중선언』, 일월서각, 1984, 26~27쪽), 1963년 서울대 4월혁명 제4선언문에도 매판적 정치경제질서에 저항하는 내용이 나오기는 하지만 시위구호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등의 구호를 외치며 교문을 나서 시위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루 전인 23일에는 문리대에서 민족주의비교연구회라는 학생단체 주최로 ‘한일관계 강연회’를 가진 바 있었고, 이날 하오 일부 학생들이 굴욕외교반대 데모를 하겠다는 설이 있었으나 중지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