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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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9일 철도 부당징계 철회 집회공고[수신:철도 부산공대위 소속단체]
등록번호 : 00452559
날짜 : 2000.05.08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주교부산교구직장노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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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부산서도 데모, 경남공고 학생들 거리로
등록번호 : 00850941
날짜 : 1960.04.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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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서울·釜山·大邱·光州·大田에 非常戒嚴令宣佈 全司法·行政事務管掌 一切의 屋外集會...
등록번호 : 00851844
날짜 : 1960.04.2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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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로 보는 한일회담반대운동
요약설명 : 밀고 나가겠다”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1개 도시에서 6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경기고생들은 화신 앞을 통과하여 의사당 앞에 집결한 다음 정부에 보내는 결의문을 다시 낭독하고, 을지로 입구 쪽으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행진했다. 학생들은 “국내매국상인을 규탄한다”, “잔악한 일본의 경제침략을 분쇄”, “이것이 민족적 민주주의이드냐”, “쪽발이는 물러나라”, “영토의 한 치도 줄 수 없다” 등의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제2의 한일합방 결사반대 1964년 3월 26일 경기고 학생시위 매국적 회담 즉각 중단하라 1964년 3월 26일 동도공고생 시위. 동도공고 학생 800여 명은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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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6월항쟁 승리의 주역
요약설명 : 부산, 광주, 대구, 인천, 대전을 비롯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6월 18일 ‘최루탄 추방의 날’을 통해 시민들의 궐기와 힘을 보여준 국본은 6월 26일 오후 6시를 기해 대규모 평화시위를 전개해 나갔다.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이라는 이름의 평화시위는 전국 33개 도시와 4개 군 ․ 읍 등에서 동시에 열렸다. 서울은 67곳에서 연인원 25만여 명이 참가했고, 전국적으로 총 150만 명이 참가했다.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인 대규모 시위는 서울, 광주, 부산, 대구, 대전, 인천 등 전국의 대도시를 흥분과 함성으로 들끓게 했다. 도심지는 최루탄 연기로 뒤덮였고, 화염병이 아스팔트에 날아들었다. 전두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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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사건 - 여공들, 민주주의의 봄을 부르다
요약설명 : 폐업공고를 붙였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여성들은 신민당사 농성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3. 야당 총재면 다야? 대부분 20대 초중반인 YH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 들어간 것은 1979년 8월 9일 아침이었다. 허울 좋은 경제개발에 도취되어 종신대통령을 꿈꾸고 있던 박정희는 즉각 진압명령을 하달했다. 노동자들이 점거에 들어간 직후부터 경찰은 1천여 병력을 동원해 신민당사를 완전 포위하고 작전개시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시각각 위협이 다가오고 있던 이튿날 밤 11시, 농성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흥분한 노동자 몇이 어깨 높이의 창틀에 올라가 천장을 잡고 서서 투신하겠다고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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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대도시에서 선거 대비 공무원 모임 활발
일자 : 1960.2.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3월 15일로 선거가 공고되자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4개 대도시의 각 행정과가 활발한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특히 공무원들의 각종 모임과 방(坊)운영 강화가 눈에 띄었다. 시민복지 사업도 조속하게 시행되었다. 각 지방의 실태는 다음과 같다.● 부산 지역 부산시는 1960년도 특수 시책으로 ①공직자의 친목회 조직, ②방 운영 강화에 대한 대회 개최, ③방장의 공공시설 현황 시찰, ④시민 복지 사업의 조속 집행, ⑤동직원 교양 훈련 실시 등의 5개 항목을 정하였다. 이는 시민들이 행정부에 고마움을 갖게 함으로써 자유당에 표가 쏟아지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다. 세부적인 항목별 계획은 다음과 같다.부산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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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학교 학생 1천여 명이 시위 감행
일자 : 1960.3.24
분류 : 시위 상황 > 부산
요약설명 : 지나 동부산 경찰서를 통과하려 했다. 이 때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학생들을 구타하고 연행하려 했다. 학생들도 이에 대항하여 경찰의 곤봉을 빼앗아 던지기도 했다. 학생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했다. 제2진인 약 300명의 학생들은 목적지인 서면으로 향했고, 제3진 300여 명의 학생은 경찰을 피해 경남여고 쪽으로 향했다. 경남여고생들의 호응을 구하기 위해 교문 앞에 이르렀을 때, 경남여고 교사들은 여학생들을 강당에 집합시키고 문을 잠갔다. 서면 쪽으로 향한 제2진은 문현동에 있는 부산공고와 전포동에 있는 경남공고 정문 앞에 머물러 “마산사살 사건에 경찰관이 책임을 지라”, “ 학원에 자유를 달라”, “ 짓밟힌 민주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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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 발포로 사상자 수 십 명 발생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부산
요약설명 : 공고와 부산상고 학생들의 평화적인 시위가 끝난 후 오후에 다시 일어난 경남공고 학생들과 데레사여고 학생들은 경찰관의 실탄발포에 격노해 수 개 처의 경찰관서를 돌팔매질로 파괴하고 방화하였다. 도중 경찰발포로 10명이 사망하고 52명이 오후 7시 반 현재 총상을 입고 시내 4개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다. 경찰에서는 시위에 가담한 학생 및 청년층 50여 명을 연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동아일보』1960. 4. 20 석3면 『서울신문』은 이날 부산에서 시위에 가담한 숫자를 5만-6만으로 보도하였다.『서울신문』1960. 4. 20 2면계엄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이날 시위로 11명의 사망자와 8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경찰관도 81명이 부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