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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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문리대 4·19선언문 필사본 사본 등록번호 : 00849714 날짜 : 1960.04.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이승만정권의 독재와 무능에 항거한 4.19 민주화 운동 관련. 서울대 문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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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 Sheet #2. [73. 10. 2 서울대 문리대 학생 시위] 등록번호 : 00913602 날짜 : 1973.10.1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Jones, Linda Huffman 요약설명 :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간부들이 서울대 4.19 기념탑 앞에 모여 유신독재체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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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스크랩]“拘束學生全員을 釋放하라 戒嚴令 풀린 後 身元報障等도” 서울大文理大敎授會議서 ... 등록번호 : 00851696 날짜 : 1960.04.2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요약설명 :
사진사료 6건
더 보기민주화운동사 컬렉션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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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의 그날, 1960년 4월 19일 요약설명 : 게 보였다. 혜화동은 서울대의 문리대 의대 사범대 등이 가까이 있었다. 은밀히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그들 대학에서 오늘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중요한 시위가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다. 그가 다니던 동성고에서도 이미 학생들 사이에 정의로운 거사에 우리가 앞장 서야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퍼져가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언제 나왔는지 벌써 50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경찰은 일찌감치 학교 앞 골목에 경찰병력을 배치해 놓고 있었다. 성급한 마음에 먼저 뛰쳐나간 일부 학생들은 체포되어 몽둥이로 엄청나게 얻어터지고 백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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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로 보는 한일회담반대운동 요약설명 :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문리대 학생들은 '제국주의자 및 민족반역자 화형집행식'을 열어 이완용과 이케다의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이른바 매국노 화형식이다. 이어 오후 2시경 문리대 학생 약 300명이 ‘사수하자 평화선’, ‘일본제국주의 말살하자’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교문을 박차고 나와 시위에 돌입하였다. 이날 시위가 한일회담반대운동의 출정식인 셈이다. 사수하자! 평화선 1964년 3월 24일 서울대 문리대 시위. 평화선 문제에 대한 반발도 컸다. 이승만대통령은 맥아더라인 폐지를 앞두고 기존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1952년 1월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에 관한 선언을 발표했다. 이때 그은 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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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문으로 본 4.19혁명 요약설명 : 괴한들은 반공청년단 종로구단 동대문 특별단부 소속 조직폭력배들이었다. 2. 서울대 문리대 4.19선언문 필사본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선언문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학의 현상을 규탄 광정(匡正)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宣明)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체주의의 표독한 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구술 컬렉션 1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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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의 면담자 : 오제연 일자/장소: 2012.9.21./삼화교역(부산) 요약설명 : 시절 경험,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 입학 당시 분위기, 4.19가 끼친 영향, 4.19 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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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형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정수, 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7월 12일/현대사기록연구원 회의실 요약설명 : 서울대 문리대에 가서 서울대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촉구했는데 서울대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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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조 면담자 : 신동호 일자/장소: 2012.10.3./현대사기록연구원 요약설명 : 문리대 학생회장 출마 배경과 당선 과정, 1965년 전반기 한일협정 반대운동의 조직과...
일지사료 363건
더 보기- 경무대 앞에서 경찰과 마지막 대치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동안 서울대의 윤일선 총장과 이양하 문리대 학장, 신태환 법대 학장을 비롯한 각대학 학장들과 교수들이 달려와 근심어린 표정으로 시위 모습을 지켜보았다. 윤 총장은 직접 시경국장과 협의하여 동대문서로 연행된 학생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시위를 중지시키려고 하였으나 이미 노도처럼 밀려드는 학생들에게 이를 전달할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대학신문』1960. 5. 2 3면)고 하여 서울대 총장이 시위대가 몰려있는 경무대앞까지 왔다는 기록은 있으나, 이때 결의문을 채택한 내용은 찾지 못하였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시위대가 진명여고 앞에서 채택한 결의문1. 최루탄, 공포, 붉은 물로써 정의의 분노를 막으려 들지 말라 2....
- 시위대, 경찰 저지망 뚫고 국회의사당까지 진출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4. 20 조1·3면, 석3면. 4·19 시위에 대한 좌담회에서 서울대남학생들은 모두 시위시 각 단과대학여학생들의 의기와 활동에 감복했다고 말하였다. 사대에서는 100여 명의 여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문리대와 법대, 미대에서도 여학생들이 하던 일을 제쳐두고 시위에 참석하였다. 여학생들은 매우 용감하고 의식이 투철해 경찰의 저지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으며, 자진해서 나서 문리대와 미대에서는 결의문 낭독에 서로 자기들 단과대학의 여학생을 내보내겠다고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대학신문』1960. 5.2 2면 좌담회 내용 참조).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선언문대학신문과 『기적과 환상』에는 이의 발췌본이 수록되어...
- 동숭동 서울대학교 학생들 시위 돌입 일자 : 1960.4.19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기록되어 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기적과 환상』, 영신문화사, 1960, 226쪽).동숭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18일 고려대의 시위에 이어 또다시 대학생들이 궐기한 것이다. 서울대는 닷새 전부터 시위를 준비하여 11개 단과대학이 함께 19일 오전 11시에 궐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전날인 18일 고려대 시위가 있어 이에고무되고, 사전에 시위계획을 탐지한 경찰이 학교에 배치되는 바람에, 또한 19일 아침 대광고 학생들의 시위를 접하며 시간이 앞당겨진 것이다.『대학신문』1960. 5. 2 2·3면. 일부 기록에서는 단과대학 운영위원장들이 4월초순부터 시위를 준비했다고 한다. 또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