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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강원지역 4월혁명
요약설명 : 원주농업고등학교 학생들, 공명선거 요구 시위 3월 14일 오후 4시경 원주시내 원성군청 앞에서 약 100명의 원주농업고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하였다. 이날 시위는 기습적이고도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시위는 당일 등굣길에 원주농고 학생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핵심인사들이 결의를 하고 하교길에 감행되었다. 시위에서 뿌릴 삐라는 도시락에 넣어 이동하였고, 정보의 누설을 염려하여 종례 직전에야 전교생과 다른 학교에 알리고 바로 시위를 전개했다. 학생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행진하며 원주 군인극장 앞까지 약 30분 동안 “수호하자 인권”, “취소하자 3인조”, “실시하자 공명선거” 등의 구호를 외치고 삐라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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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장소, 대구지역 6.10민주항쟁
요약설명 : 학교, 경북대사대부속 고등학교가 위치했다. 경북대학교 일청담 경북대학교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거점 국립대학이다. 인혁당사건에 의해 희생된 열사들 중 몇몇도 이 학교 출신이었다. 6.10민주항쟁을 촉발시키는 집회가 1987년 1월부터 학교 안팎에서 진행되었다. 일청담은 경북대 중심에 위치한 연못으로, 대강당 앞의 민주광장과 함께 교내집회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다. 약령시 전주, 원주와 함께 조선시대 3대 약령시인 대구 약령시는 현재 약전골목으로 불리고 있다. 근처에 제일교회, 계산성당 등이 위치해 6.10민주항쟁 당시 종교인들이 행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명덕네거리 2.28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곳으로 6.10민주항쟁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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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납치사건-유신체제를 뒤흔든 뇌관
요약설명 : 번져나갔다. 전국의 각 대학들이 이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경찰들과 투석전을 벌이자 이 시위에 고등학생들까지 동참했다. 민주화운동은 서울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전국 단위로 확대되었다. 1973년 12월 24일, 윤보선 전 대통령, 장준하 등 재야인사와 야당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등 30여 명이 공화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며 개헌서명운동을 벌였다. 박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민주 회복을 위한 1백만인 개헌 청원 운동’이었다.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10일 만에 서명 참가자가 30만 명을 넘어섰다. 박 정권의 영구집권 음모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은 급류를 탔다. 1974년 1월 8일, 박 정권은 긴급조치 1...
구술 컬렉션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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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엄경식)
일자/장소: 2010년 7월 15일/원주시 자택
요약설명 : 없었다. 원주의 중‧고등학교가 연합으로 시위를 준비하여 4월 26일에 원주공설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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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균식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4./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실
요약설명 : 고등학교 인맥 중심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보였다. 민청학련과 인혁당재건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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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철
면담자 : 정호기, 양라윤
일자/장소: 2023.7.18./원주시 무위당협동조합
요약설명 : 원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업을 돕다가 1974년 춘천의 강원대 농화학과에...
일지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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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서 경찰·공무원·교직원·방장 등이 참석한 비공개 회의 개최
일자 : 1960.2.13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13일, 강원도 원주시 문화극장에서도 경찰국장과 관공서 공무원(법원·검찰 제외), 초·중·고등학교 교원 등이 참석한 ‘방지도자회의’가 비공개로 열렸다. 전날인 12일 오전에도 동일한 회의가 원주극장에서 개최된 바 있었다. 그러나 회의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것은 물론 신문기자들의 출입마저 금지되어 선거와 관련된 모종의 회의로 의심받았다. 교직원들이 전부 참석한 회의로 인해 이 두 지역의 학생 약 1만 명은 각각 하루 동안 수업을 받지 못하였다.『동아일보』1960. 2. 15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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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농업고등학교 학생들, 공명선거 요구 시위
일자 : 1960.3.14
분류 : 시위 상황 > 원주
요약설명 : 14일 오후 4시 경 원주시내 원성군청 앞에서는 약 100명의 원주농업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하였다. 학생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원주 군인극장 앞까지 약 30분동안 “수호하자 인권”, “ 취소하자 3인조”, “ 실시하자 공명선거”등의 구호를 외치고 삐라를 뿌렸으나 경찰의 제지를 받고 해산되었다.안동일·홍기범 공저, 96쪽 ; 『조선일보』1960. 3. 15 조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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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굴욕외교 반대 시위 연 사흘째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1개 도시에서 6만여 명...
일자 : 1964.3.26
분류 : 한일협정반대운동 > 학생
요약설명 : 9시 대전고등학교 전교생 1,500명은 “듣기 싫다 게다소리”, “평화선 사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한일굴욕외교를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굴욕외교 반대”, “평화선 사수하자”, “왜놈의 게다소리 듣기 싫다”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누볐다. 학생대표 신현국은 “평화적인 시위를 마친 후 곧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26일 낮 12시 20분쯤부터 약 500명의 충남대 학생들도 대일굴욕외교 규탄데모에 들어가 충남도청 광장에서 연좌하였다. 충남도지사가 “학생들 의견을 중앙에 반영시키겠다”는 약속을 받고 1시 반쯤 학교로 돌아갔다. ▶온양 26일 상오 10시 온양중고생 2,000여 명이 교문을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