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사료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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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우씨 탄원 관련자료]
등록번호 : 00511954
날짜 : 1994.00.00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요약설명 : 이대우씨 탄원서, 서병태의 회사공금 횡령과 관련한 자료,중앙산업가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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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맑은세상 1988년 11월 제4호
등록번호 : 00921143
날짜 : 1988.10.25
구분 : 문서류 > 정간물
기증자 : 김근태재단
요약설명 : 1988년 맑은세상에서 발행하고 지음. 김근태의 고문! 민주화로 풉시다가 실려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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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장[국제상사 구사대 폭행]
등록번호 : 00876615
날짜 : 1988.02.0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재)전태일 재단
요약설명 : 권영환, 이대우 임병율은 국제상사에 다녔던 근로자로 특수경비 박원우, 권영환에 ...
사진사료 1건
더 보기사료 콘텐츠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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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토끼 사냥 - 2.28민주운동
요약설명 : 있어야 하지 않을까?” “쉿.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학생 대표들이 경북고등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이대우 학생의 집에 모여 구수회의를 가졌다 카더라. 유세장에도 가지 않고 대신 일요 등교에 항의하는 집회를 가지기로 하고, 결의문까지 작성해 두었다 카더라.” “정말?” 인철의 말에 문호는 눈을 반짝 떴다. 그랬다. 그들이 학교장의 지시로 토끼 사냥에 나섰던 그날 2월 28일. 낮 12시 50분. 일요일 강제 등교에 항의하며 먼저 교문을 박차고 나온 대구 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명이 단숨에 시내 중심가를 가로질러 도청 광장 앞으로 모였다.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이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대구고등학교, 경북여고, 경북대사대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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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기록으로 보는 2·28민주의거
요약설명 : 날 손진홍과 이대우 군이 잠시 만났고 우리 3개교는 2월 27일 저녁에 만났습니다. 만나보니 경북고는 상당히 준비가 되어있었고 대구고도 그날 3,4명이 참여해서 합의를 보면서 대구고등학교도 같이하자고 결정했습니다...당시 부고는 저 혼자였습니다." 수없이 불려다녔던 관제데모의 경험으로 민주화를 위한 거리 시위를 나서다 학생들은 오후 1시경부터 “학원의 자유를 달라” 고 외치면서 대구 시내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경찰은 시위학생 약 200명을 연행했다. 대구 경찰은 오후 2시경부터 비상경계를 실시하여 도청 경찰국 주위 일대에 새끼줄을 치고 교통을 차단했다. 또한 소집된 정복 무장경찰관과 사복경찰관들을 시내 각...
구술 컬렉션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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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중/안병준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신동호)
일자/장소: 2010년 11월 11일/연세대학교 박물관
요약설명 : 주동자인 이대우는 자료를 넘겨주면서 그 점을 매우 걱정을 하였다. 두 사람은 오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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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중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6월 29일/덕수고등학교
요약설명 : 구술자 김갑중은 대전 출생으로 대전서중을 나와 덕수상고 야간을 다녔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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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철
면담자 : 채장수, 이신용
일자/장소: 2010년7월 12일/대구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
요약설명 : 2004. 이대우, 「2‧28 민주의거의 세계학생운동사에서의 위상」, 미상, 미상. 서태영,...
일지사료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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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경찰국·경북도지사, 학생시위 배후조종자설 시사
일자 : 1960.2.2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200여 명이 휴일등교령에 항의하여 학생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이대우의 선동으로 경북도청으로 모여들었으나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이정용경북경찰국장은 주모자를 제외하고 전원 석방하겠으며 학생의 신분을 감안해 관대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오후 2시부터 경찰국장실에서는 오임근경북도지사, 이정용경북경찰국장, 내무국장, 대구시장, 경북고 교장 등이 모여 대책을 협의하였다. 오임근경북도지사는 대단히 유감된 일이며 시민 여러분께 미안하다고 말하고“순진한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시키려는 무리들은 망국도배이며 공산당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시위 학생들의 배후에 조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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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요약설명 : 요소에 배치하여 시위 학생들을 발견하는 대로 연행했다. 오후 1시 30분 경부터 연행되기 시작한 학생들은 경찰국에 120여 명, 대구경찰서에 약 50명, 남대구경찰서에 80명(여학생 30명 포함)이었다. 경찰은 상부의 지시에 의하여 오후 5시 30분부터 6시 사이에 주모자로 알려진 학생 수명만을 제외하고 모두 학교 당국에 인계, 석방했다. 경북도지사는 학생시위사건 수습은 될 수 있는대로 학원 당국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후 밤 늦은 시각에 도지사 관사 앞에서 연행된 경북사대부고 학생 4명과 시위 주도자로 알려진 경북고 이대우 외 수 명의 학생도 밤 10시 경 훈계·방면하였다.『 대구일보』1960. 2. 29 ; 『동아일보』196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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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학생 800여 명, 학원의 자유 주장하며 시위
일자 : 1960.2.28
분류 : 시위 상황 > 대구
요약설명 : 50분 학교교정에 모였다. 이대우는 시위를 하더라도 운영위원회를 소집하고 결의한 다음 결의문을 정식으로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대구고 학생위원회 위원장이 경북고를 찾아와“우리는 이미 교문을 나섰다”라고 함으로써 경북고 학생들 사이에 시위에 대한 기운을 복돋았다. 이에 경북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기 시작하며“학생위원장은 뭣하는 놈이고!”를 부르짖었다. 이대우가 선두가 된 학생운영위원들은 두터운 두루마리 결의문을 갖고 조회단에 올라“일요일날 학생들을 등교시키는 폐습을 시정시키고 학원 내의 자유를 찾기 위해학원 내의 여론을 사회에 반영시키자”고 결의문을 낭독했다. 교사들의 제지와 시간이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