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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대_농민운동사의 험로를 개척한 작은 거인
요약설명 : 기이한 광경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뜻이라며 기특해했다. 권종대는 1961년 겨울 함석헌의 시 구절에서 따온 ‘한밝회’라는 이름의 야학을 열었다. 그는 종갓집 상방을 야학 교실로 쓰면서 국어와 국사를 가르쳤다. 폭넓은 독서를 하며 인상 깊은 구절을 써놓는 기록벽이 있던 그는 안재홍의 수필 〈독서에 대하여〉, 유달영의 〈백두산 등정기〉, 함석헌의 시 〈내 사랑아〉, 정지용의 시 〈향수〉, 김진섭의 수필 〈송춘(頌春)〉을 비롯해 각종 농사기술 자료, 비료 가격표, 우리나라 신문의 발달사 등 실로 다양한 글들을 교재로 사용하면서 야학 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높여 주었다. 권종대는 1966년 봄 형해고등공민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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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사건을 딛고 우뚝 선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요약설명 : 희극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이었다. 그해 12월 13일, 제1심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이때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이자 음악가인 임원식이 윤이상을 위해 증언에 나섰다. 법정에 선 그는 열정적인 증언을 하여 방청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는 전부터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유럽 음악계에서는 나 임원식을 위시해 한국 음악가 2, 3백 명을 묶어놓은 것보다 이 한 사람의 비중이 더 큽니다.” 그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윤이상은 1심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수자는 징역 5년에서 3년으로 감형되어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이후, 독일의 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윤이상 석방운동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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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과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요약설명 :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함께 전달하면서 부상자 가족과 사망자의 유족을 위로했다. 이에 앞서 도청에서는 정시채 부지사를 중심으로 수습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으나, 총기 회수를 주장하는 등 계엄사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한 결과를 발표하자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 때문에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 동안 남동성당에서 조아라 YWCA 회장, 김성용 신부, 홍남순 변호사, 조비오 신부, 명노근 교수, 송기숙 교수, 이애신 YWCA 총무, 이성학 장로, 이기홍 변호사, 이영생 YMCA 이사, 위인백 등 민주인사들이 연달아 회합을 함으로써 정식으로 재야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도청에 모여 결의사항을 발표했다. “계엄군은 시내 진입을 하지...
구술 컬렉션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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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보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이주실)
일자/장소: 2010년 7월 23일/서울대 의대 동창회관
요약설명 : 이회백이며 전국 의대생 중에는 유일하게 총상으로 다친 사람이다. 이회백은 오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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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엄경식)
일자/장소: 2010년 7월 15일/원주시 자택
요약설명 : 회를 원주초등학교에서 개최한다. 이는 재경 대학생회와 원주의 중‧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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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주
면담자 : 현대사기록연구원(박재홍)
일자/장소: 2010년 7월 2일/구술자의 사무실
요약설명 : 이 주였다고 할 수 있다. 구술자 권오주는 당시 선거로 선출된 강문고 야간부...
일지사료 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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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변호사협회, 마산사건 관련 특별성명 발표
일자 : 1960.3.28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사회·문화
요약설명 : 대한변협에서는 인권옹호위원회위원 8명으로 현지조사단을 구성해 현지조사를 마치고 정구영 회장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특별성명서를 발표했다.•데모운동의 발생원인은 동시에서의 3·15정·부통령선거에 있어서 대다수의 유권자에 대한 투표권 행사를 불가능케 하는 사태와 기타 선거관리의 부당에 기인한 것으로서 정의감이 강하고 은인성(隱忍性)이 적은 청소년 학도가 궐기하였던 것이 진압의 부당으로 인하여 확대된 것으로 판단한다. •발포를 행하여 다수의 인명을 살상한 경찰관 전원 및 그 지휘자를 살인죄로서 엄중처단함이 가하다고 판단한다. •경찰이 수 백 명에 달하는 다수의 피의자에 대하여 공공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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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민권수호국민총연맹·공명선거추진전국위원회 주최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거행
일자 : 1960.4.6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있어 최후 발악으로 모든 불법과 극악수단을 무소불위로 구사하여 민주주의의 초석인 선거제도를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이번 선거는 선거가 아니라 바로 국민주권의 강탈행위이다. 그러므로 3·15선거는 전적으로 불법이고 무효임을 거듭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출처 :『동아일보』1960. 4. 7 조1면선언문 낭독 후 김의택 의원 선창으로 “3·15선거는불법이다, 무효다!”, “이승만정부는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오전 10시 15분 경, 곽상훈 의원의 선창으로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한 후 시위에 돌입하였다.『서울신문』1960. 4. 6 석3면 ;『동아일보』1960. 4. 7 조1·3면 ; 『조선일보』1960. 4. 6 석1·3면 ; 안동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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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공대 시위 무산
일자 : 1960.4.20
분류 : 시위 상황 > 서울
요약설명 : 백 명이 청량리 본교 운동장에 집결하여 시위를 준비하였는데,경희대는 19일 오후 3시 경 부터 법대생 300명이 중심이 되어 을지로, 미도파, 화신 앞 등에서 밤늦게 까지 산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20일에 집단시위를 감행하기로 모의하였다(이문종, 「경희대학」, 사월혁명청사편찬회, 『민주한국 사월혁명청사』, 성공사, 1960, 516쪽).군 탱크와 보병 및 경찰기동대가 한길로 빠지는 다리목을 지키고 있어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못하였다. 이들의 시위계획을 사전 입수한 군은 탱크와 2개 중대를 연대장이 직접 인솔하고 가서 학생들에게 해산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학생 대표 한 사람이 나와서“우리들을 제발 막지 말아 주세요. 모든...